메뉴
brunch
실행
신고
라이킷
11
댓글
4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예진
Aug 02. 2024
심리학의 오점.
반려견을 하늘나라로 보내며.
며칠 전 파파가 하늘나라로 갔다.
자식을 잃은 느낌이다.
(파파는 제가 키웠던 반려견으로, 6살 때 데리고 와서 원 주인이 지어준 이름을 그대로 썼어요.)
마지막
2년 동안은 파파를 키우느라, 1년은 병간호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파파 키우느라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자유롭게 다니지도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마디로, 내 삶도 제대로 못 살고 있는데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이 버거웠다.
내 삶도 제대로 못 산다는 것은 내게 사랑과 겸손과 같은 덕목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내게도 부족한 사랑을 많이 줄 수가 없었기에,
나는
파파에게
한 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파파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내가 파파에게 얼마나 부족한 보호자였는지 새삼 느끼며, 파파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고 더 소중해졌다.
더 큰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를 무너지게 하고 슬프게 만든다.
항상 시간이 지나고 하는 후회는,
'
왜 그때 더 사랑하고 이해하지 못했을까?' 이면서도
내 몸과 마음이 먼저고, 내 힘듦이 먼저인 나였다.
지금 나의 상태는 한없이 파파가 그립고,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 같다. 아프다.
두
가지 위안이 되는 건, 더 이상 파파가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예수님과 성모님이 얼마나 아프고 힘드셨을지
다시 한번 조금이나마 느끼게 됐다는 것.
되돌아갈 수 있다면,
파파랑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온다면
내 자유 보다도 파파가 더 행복할 수 있도록
내 작은 힘듦쯤이야 괜찮다.
파파와의 마지막 날들에서
기저귀 갈아주느라 거의 1년은 잠을 제대로 못 자고
한두 시간, 혹은 두세 시간마다 깼지만
그래도 좋았다.
김형석 교수님은 자녀를 키울 때가 몸은 힘드셨지만,
'
사랑으로 하는 고생이 가장 행복하다.'라고 하셨다.
맞다.
사랑으로 하는 고생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가장 불행한 것이다.
더 가져야 하고, 내가 더 높아져야 하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도 없고,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도 없다.
(반려동물과도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의 오점이라고 생각되는
한 가지는,
심리학에서는 나를 계속 보라고 한다.
신앙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고통받으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보게 한다.
나를 보게 함은,
나를
성찰하면 좋은데
그 기준이 애매하다.
그런데 완전한 신의 빛 속에서는
내가 잘 보이게 된다.
환한 빛이 나를 비추면 나의 어두움이 환히 보이는데
나에겐 이것이 성찰인듯하다.
완전한 빛이 없이, 내 기준에서 인간적인 눈으로
나를 보았을 때 나의 상처들이 보이는 것 같다. 그러면
나에게 잘못한 주변사람, 그들의 말과 행동들이 떠오르고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상대방은 나를 존중해줘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그렇지 못했을 땐 화가 나게 되더라.
결국 관계가 망가진다.
모두가
다
'
내'가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신앙은 나를 버리고 낮추고, 신을 보게 한다.
나를 낮추고, 당신을 높여주면 서로가 서로에게 높아지면서 참 관계가 맺어지는데
말이 쉽지, 너무나도 어렵다.
하지만 이게 답이다.
내가 완전한 빛 앞에 작은 존재로 넙죽 엎드리면,
완전한
사랑의
빛을 받게 된다.
내가 진짜로 채워지는 순간이다.
진리의
계명들은 우리를 속박하는 듯 보이지만,
내가 나를 버리고 파파를 돌보는 것을 더 우선했을 때
훨씬 더 충만했듯이,
삶이 주는 것을 밀어내지 않고,
모든 것을 감사히 받아들여야
행복
함을
파파는 나에게 깊이 깨우쳐주었다.
나에게 오는 상황의
좋고 싫음을
내 작은 생각으로 판단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이라고.
그것이 신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처음엔 파파가 선물이었다가
내가 힘들 땐 부담이었다가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다 감사한 거라고.
눈물로
후회해 봤자 지금은 소용도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할 것을
나약한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파파를 통해 알게 된
사랑은 철저한 희생이다.
내 것을 내어 놓는 것이다.
심리학에서의 사랑이 계속 나를 채우고, 결핍을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 또한 오류가 아닐까?
나의 편함, 시공간적 자유, 물질.. 그리고 나 자신 전체는 아니더라도 나의 많은 부분을 내어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살과 피를 모두 내어주신 예수님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래서 참이다.
앞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
keyword
심리학
이별
반려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