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와 함께 떠난 이탈리아 여행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모두 나락으로 떨어진듯한 그런 겨울날이었다. 남편과도 회사와도 사이가 안 좋았던 어느 계절, 변함없이 아이들의 기나긴 겨울방학이 찾아왔고 워킹맘인 나는 대책 없이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작은아이는 이제 10살, 큰 아이는 13살 되는 해가 되어 두 아이 모두 이제 좀 컸다 싶었다. 한 마디로 내 모든 상황이 여행 가기 딱 좋은 시기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적어도 내가 여행은 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그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모든 것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게 주어진 축복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이들이 더 커서 엄마와의 여행이 더 이상 재미없어지기 전에 충분히 열심히 구석구석 다니자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고 인생은 짧지만 추억은 길게 가야 하니까.
우리는 서양인들처럼 한 달씩 휴가를 다니는 나라가 아니다. 더군다나 아이를 동행하는 여행은 더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또한 세계 문화 유적지를 다니며 곳곳의 역사적 설명을 들을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더없이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난 아이들과의 첫 유럽여행은 패키지가 좋다고 생각한다. 사실 열흘 남짓 여행을 간다고 해도 이탈리아 같은 유고한 역사와 문화의 고장을 다 보려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짧은 시간 동안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가며 중요한 곳을 찾아다닐 수 있는 여행은 패캐지 만한 것이 없다. 비용도 시간도 경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행, 엄마 혼자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나서도 위험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이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패키지여행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1. 중요한 장소 곳곳을 효율적으로 이동하며 볼 수 있다.
2. 문화 유적지를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보면서 자연스럽게 인문학적 소양 넓힐 수 있다.
- 각자 자기의 나이만큼 보고 느낀다.
3. 짧은 시간에 비교적 안전하고 경제적인 여행이 가능하다.
4. 정해진 이동시간 스케줄을 따르며 단체생활의 규율, 약속을 익힌다.
모든 엄마에게 마찬가지겠지만 워킹맘에게 아이들의 방학은 큰 숙제다. 하지만 언제나 동전의 양면 같이 위기는 곧 기회이다. 바꿔 생각해 보면 내 품에서 보낼 수 있는 이쁜 시절을 이 핑계로 아이들과 같이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다시 안 올 엄마와 아이의 시간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인생이 내게 레몬을 던질지라도 그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심정으로 여행을 떠났다.
돈이 있을 때는 시간이 없고 시간이 많을 때는 돈이 없지만 시간은 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다시 못 올 그 시간은 충분히 누리는 것이 옳다. 여행은 언제나 옳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어여쁜 것들과 떠나는 여행이 하루하루가 모험이고 체력적을 힘들 때도 있겠지만 추억의 마일리지를 쌓고 온다면 그것 또한 기쁜 일이다.
금전적 계획을 세울 때 학자금이나 경조사비, 자기 계발비만큼이나 가족여행비용 계획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일 하루하루가 빠듯하여 미쳐 준비를 못했다면 학자금 대출을 받듯 할부로라도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와서 그 비용을 갚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다시 일하는 것이 결코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물론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가야 하겠지만.
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빗속에서 어떻게 춤을 추는가이다.
류시화 < 좋은지 나쁜지 어떻게 아는가> 중에서
만일 우리의 일상에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친다면 폭풍우를 피해 살아남을 구상을 하지 말고 빗속에서 어떻게 춤출까 구상하는 것이 나을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늘 춤출 생각만 할 수는 없겠지만 아주 가끔은 발상의 전환이 큰 도움이 된다. 폭우가 몰아 치는 순간, 이 빗속에서 춤이나 한 판 춰야 할 때가 온 것이라 생각해 보자. 그 해 겨울 나에게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패키지여행이 일종의 '빗 속에서 추는 한 바탕의 춤‘이었다.
이따금 궂은날이 찾아오면 나는 나에게 조용히 속삭여 본다. "Shall we d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