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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Kim Dec 30. 2023

유럽 시누이


내가 남편의 여동생, 나의 시누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시누이가 열세 살이었을 때다. 말수가 적고 표정이 없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웠던 사춘기의 어린 소녀였다. 그때는 그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남편의 어린 동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열네 살, 열두 살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 되짚어 생각해 보면, 그때 어린 시누이는 감정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변화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햇살이 눈부셨던 로마의 어느 일요일. 남자친구의 여동생을 데리고 주말 장 구경을 나섰다. 이태리말로 시끄럽게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벅적대는 길거리를 걸으며 길 양쪽으로 쭉 늘어선 가게들의 물건을 구경했다. 마침 예쁜 귀걸이가 있어 여동생에게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라 했다. 처음 만난 오빠의 여자친구에게 뭔가를 받는 게 불편했던지 괜찮다고 사양을 하던 사춘기 소녀. 설득을 해서 귀여운 귀걸이를 한 세트를 사주었다. 어색한 표정 사이에 피어났던 소녀의 웃음이 참 예뻤다.


우리가 두 번째로 만났을 때는 그 때로부터 2년 뒤 나와 남편이 한국에서 결혼하던 때였다. 커트머리였던 시누이는 긴 생머리에 키도 많이 자랐고 외모도 여성스럽게 변해있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시댁 가족들과 경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불국사에도 가고, 첨성대에도 가고, 밤에는 야경이 아름다운 안압지에도 갔다. 아시아에 처음 와 본 시댁 식구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 당시 우리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는데 첫 만남보다는 가족으로서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남편과 나는 독일에 정착했고, 시어머니와 시동생들은 프랑스에 살았다. 대부분 일 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 때 우리가 프랑스로 가면서 시댁식구들을 만났기 때문에 나는 시누이와 아주 가깝게 소통하지는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만났던 낯을 많이 가리던 꼬마 소녀는 프랑스로 이주하여 중, 고등학교를 다녔고, 엄마에게 반항하는 모습도 보여줬고, 한국 아이들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대학생이 되어 점점 더 예뻐지고 남자친구도 사귀고, 현재는 컨설턴트가 되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다. 시누이가 서서히 단단하게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 한 사람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경이롭다.


시누이가 대학생 때 노르웨이에서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으로 공부를 했던 때, 물가가 비싸서 아껴먹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밴쿠버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돈을 아껴 생활하던 것이 생각 나 독일의 각종 간식과 한국 라면을 시누이에게 소포로 보낸 적이 있었다. 시누이가 그 이후에도 종종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소포가 따뜻하게 전달이 되었던 것 같다.


사춘기 소녀에서 발랄한 대학생으로, 이제는 세계를 누비는 커리어 우먼이 된 시누이가 조카들에게 크리스마스 소포를 보냈다. 젤리와 쿠기들 사이에 보이는 노트 한 권. 누구에게 보낸 것일까 생각하다 바로 문자를 썼다.


"소포 잘 도착했어. 고마워.

노트는 누구한테 보낸 거니?

나한테 보낸 거라고 말해줘!"


"Mama Yujin한테 보낸 거지! 쓰는 거 좋아하는 거 잘 아니까."


"YEAH, Jackpot!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은 모두 잭팟이다.


맛있는 유럽의 크리스마스 스낵을 보낸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나에게는 특별히 노트 한 권을 보냈다.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일부러 챙겨서 넣었나 보다.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선물을 받기만 하던 어린 소녀에서 조카 선물을 챙기는 고모이자 시누이가 되었다.


나는 시누이보다 열다섯 살이 많다. 가끔 이렇게 하면 어떻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하고 충고를 해주고 싶은 경우도 많지만 말을 아낀다. 시누이는 대부분 내 이름을 부르고 가끔 große Schwester(큰 언니)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유럽 사람들에게 언니라는 개념도 별로 없거니와, 남이 자기의 삶에 의견을 보태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도 시누이가 의견을 물어보지 않는 한 내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다. 적당한 관심과 건강한 거리가 시댁식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최고의 비결이다.


나는 시누이가 나비처럼 훨훨 날았으면 좋겠다. 능력을 마음껏 펼쳤으면 좋겠다. 적당한 때가 되면 아이도 가지면 좋겠다. 남들 하는 거 다 해보고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 행복을 기꺼이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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