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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이웃사촌

by Yujin Kim

싱가포르의 조용한 주택가. 다른 도로로 통하지 않는 Sixth Avenue의 막다른 골목에 우리 집이 있다. 11 가구가 마주 보고 살고 있는 이 길에는 대부분 싱가포르인들이 살고 있는데, 앞 집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부부, 아만다와 마크가 살고 있었다. 우리 골목의 집들 중 딱 두 집만 외국인 가정이어서 그랬을까? 앞 집 부부와 우리는 이사하던 날 서로에게 끌리듯 인사를 했고, 집을 드나들 때 우연히 만나면 담소를 나눴다. 일정이 없는 주말에는 서로를 초대해 식사를 함께 했고, 별 일 없이도 서로에게 들러 안부를 전하는 반가운 사이가 되었다.

아만다와 마크는 아만다의 직장 때문에 싱가포르에 왔는데 개 두 마리(탄디와 졸라), 고양이 두 마리(릴리와 자주)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십 대 중반의 아들과 딸은 모두 런던에 살며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두 마리 개 중에 다섯 살짜리 졸라는 우리에게 특별했다. 자기가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는지 강아지들보다는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만나자마자 우리 가족을 좋아했고, 경계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남편은 보통 동물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동물들도 그런 남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졸라는 달랐다. 졸라의 애정공세는 남편마저 녹였고, 남편은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졸라의 앞발을 잡고 춤을 추기도 하고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어느 날 아만다가 사진을 보냈는데 사진에는 소파를 밟고 창문 앞에 서서 우리 집을 지켜보고 있는 졸라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졸라의 꼿꼿한 어깨 위의 작은 뒤통수는 앞집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품고 있었다. 우리 집 게이트가 열리거나 우리 가족이 오고 가는 소리가 나면 재빨리 집 밖으로 뛰어나와 꼬리를 흔들었다. 인사하려고 앞 집 게이트로 다가가면 하늘 높이 점프를 하며 자기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반가움을 표현했다. 마크와 아만다가 우리 집에 커피를 마시러 오면서 졸라를 데리고 온 적이 있었는데, 집에 돌아갈 시간에 졸라가 가고 싶어 하지 않아서 우리 집에서 더 놀다가 간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졸라는 하루에 한 번씩 플레이 데잇을 하듯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졸라를 위해 거실 한편에 전용 물통과 뼈다귀처럼 생긴 강아지 간식을 준비해 두었고,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졸라가 점프로 나를 반기면 우리 집 현관문을 기꺼이 열어 주었다. 우리 집은 졸라의 세컨드 하우스였고, 우리 집에 제일 많이 놀러 온 친구는 분명 졸라였다.


출장을 자주 다니는 아만다는 집에서 쉬는 주말이면 친구나 직장 동료를 초대해 식사하기를 즐겼다. 다른 손님을 초대하면서 우리를 같이 초대하기도 했는데 우리는 '앞집에 사는 사랑스러운 가족'으로 주로 소개되었다. 마크는 '브라이'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바비큐 요리를 소개해줬고, 아만다는 디저트를 기막히게 잘 만들었으며, 헬퍼 마르셀리나는 아만다에게 배운 온갖 요리를 무리 없이 차려냈다. 앞 집에서의 식사 시간은 언제나 맛있고 행복했다. 마르셀리나의 꿈은 인도네시아로 돌아가 레스토랑을 여는 것인데 마크와 아만다는 그녀의 꿈을 위해 비즈니스 과정에 등록을 해 줬다. 아만다 가족은 자식들의 파트너까지 함께 일 년에 한 번씩 가족 여행을 가는데 아만다가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해 준 적이 있다.


"유진, 우리는 아이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살아있는 한 일 년에 한 번씩 가족 여행을 선물할 거야."


가난한 인도네시아 헬퍼의 미래를 위해 교육을 지원하고, 자식들에게는 해마다 새로운 여행지에서 추억을 선물하는 사람. 아만다는 꽤나 높은 지위의 커리어 우먼이었지만 허세를 부리는 일이 없었고, 언제나 행동으로 돈을 가치 있게 쓰는 법을 보여줬다. 아만다를 보면서 돈을 바르게 쓰는 방법과 어른다운 어른이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해외에서의 삶이 나에게 주는 가장 큰 혜택은 나와 전혀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을 만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마주하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집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남의 집 파티에 따라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앞 집만은 예외였다. 아이들의 루틴은 보통 이랬다. 파티가 시작될 때 앞 집에 와서 손님들과 인사를 하고 동물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저녁이 준비되었다고 알려주면 아이들은 다시 앞집으로 건너와 저녁을 먹고 어른들과 대화를 하다가 지루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자유로운 분위기는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고, 아이들도 이웃과의 대화를 즐겼다.


외출에서 돌아와 집 앞으로 지나가던 어는 날 마크가 날 불렀다.

"유진, 리암은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야. 며칠 전에 리암이 나한테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요?"

"리암이 여자 친구가 생겼는데, 그 애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이라고 하더라고.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면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더라. 너무 귀여웠어."


부끄러움을 타는 아이가 앞 집 아저씨에게 여자친구 얘기를 했다는 게 신기했다. 친척들과 멀리 떨어져서 사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 부모 이외에 대화를 할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게 감사했다.


옆집에 살던 로렌스 아저씨가 무릎 관절 때문에 콘도로 이사를 가면서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공사가 시작되었다. 거실에 앉아서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웠고, 공사의 소음은 유럽이나 미국의 동료와 미팅하느라 밤에 일하고 새벽이 되어서야 자는 남편의 아침잠을 제대로 방해했다. 우리 집 소음이 얼마나 큰 지를 알게 된 마크와 아만다는 잠이 부족한 남편이 언제든지 건너와서 자기 집에서 잠을 잘 수 있도록 손님방을 준비해 줬다. 고맙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울컥하는 감동을 주는 이웃이었다.


가족 같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웃이 2025년 1월 미국 LA로 이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살면서 겪은 수많은 이별로 이제는 헤어짐이 좀 쉬워질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나의 동물 절친인 졸라를 더 이상 못 본다고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났다. 2년 반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아만다는 일 때문에 먼저 LA로 떠나고 마크가 혼자 이사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이사를 앞둔 마지막 달에 커피를 좋아하는 마크의 커피 기계가 고장 났고 나는 기꺼이 그의 커피 공급책이 되기로 자청했다.


"마크, 한국어에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어요. 서로 이웃에 살면서 정이 들어서 사촌 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는 사이를 말하거든요. 딱 우리 같은 사이죠. 커피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우리 집에 들러요. 저한테 메시지를 보내시던지요."

"아니, 괜찮아. 카페 가서 사면 되는데 뭘.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잠이 부족한 제 남편에게 손님방을 내어 주셨잖아요. 아무나 그런 일을 해 주지는 않잖아요. 이웃사촌인 제가 떠나시기 전까지 모닝커피 책임질게요."


모든 살림살이를 옮기는 해외 이사가 얼마나 힘든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마크는 이사를 준비하며 우리 집 커피로 환한 아침을 맞았고, 내가 갖다 준 메이드 인 코리아 매직폼의 성능에 감탄하며 골칫거리 얼룩을 지웠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떠나고, 청소 전문 업체가 비워진 집을 말끔히 청소했을 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골목으로 나갔다. 마침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에게 마크가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유진은 제 사촌이에요. 이웃사촌."


마음이 끌리는 사람들이 있다. 알면 알수록 곁에 두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앞 집 이웃이 나에겐 그랬다. 우리는 서로에게 싱가포르였고, 서로가 있어 싱가포르가 마냥 덥지 만은 않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써니베일에 살 때, 캘리포니아 주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도 LA를 가보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모든 일에 이유가 있는 것처럼 우주의 에너지가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남아프리가 공화국에서 온 나의 이웃사촌들, LA에서 새로운 시작 응원할게요. 우리의 인연이 교차하는 어느 날,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든 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에 우리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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