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 되었다. 기분이 묘하다. 버거운 듯 자유롭다. 한 살 더 먹었을 뿐인데, 십의 자리 수가 5로 변하니 무게감이 달랐다. 아침에 일어날 때 나를 맞이하는 손가락 통증과 현격히 떨어진 수면의 질은 나이 듦을 실감하게 했다. 열심히 살아온 나의 시간이 고단한 몸으로 표현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바빴던 육아의 시기가 지나고 청소년이 된 두 아이는 스스로 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내가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늘었다. 그렇게 보면 나이 드는 것은 나름 멋진 일이었다. 나를 더 잘 알게 되었고,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면서 하루하루를 나답게 살아갈 수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독일인 남편이 내 50세 생일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다. 유럽 사람들은 십 년마다 돌아오는 생일을 크게 축하하는 편이다. ‘나이 한 살 더 먹은 게 뭐 대수라고 파티를 하나’ 싶었는데 좋은 추억으로 남은 40세 생일 파티를 생각하며 마음을 바꿨다. 가족을 위해 준비하는 파티 말고 나를 대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조연이 주연이 되는 시간도 필요했다. 보통 집에서 홈파티를 하면 식재료를 다듬는 일은 당연히 내 몫이었고, 모두가 식탁에 앉아 있는 시간에도 나는 요리를 해서 나르느라 부엌과 다이닝 룸을 들락거리기에 바빴다.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손님이 다 도착한 후에 요리를 했기 때문이다. 50세 생일만큼은 아등바등거리며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 날은 나를 위한 날이니까 말이다. 파티 당일 가족들이 음식 준비를 도왔고, 요리와 주방 정리를 도울 파트타임 헬퍼도 불렀다. 예전에는 ‘내가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되는데 굳이 돈을 들여 일하는 사람을 불러?’라고 했을 일이 이번에는 ‘가족들도 돕게 하고 파트타임 헬퍼도 부르면 되는데 굳이 혼자서 수고를 해?’가 되었다. 스스로를 귀하게 대하니 문제의 접근 방식부터 달라졌다.
아이들 없이 어른 11명이 집에 모였다. 특별한 날을 위해 손님들에게 선 보일 와인을 종류별로 준비해 놓은 남편은 내 파티인데 자기 파티인양 신이 나 있었다. 축배를 위한 샴페인을 비롯해 우리가 만난 2002년, 결혼했던 2005년, 아들이 태어난 2009년, 딸이 태어난 2011년 산 와인을 모두 준비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로맨틱의 끝판왕이라는 칭찬을 듣고 뿌듯해했지만, 정작 주인공인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준비였을까를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사려 깊음을 가장한 사심 채우기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그 덕에 함께 나눌 이야깃거리가 있었고, 모두가 즐거웠으니 칭찬이 아깝지는 않았다.
식탁에 모여 않아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행복한 얼굴로 손님들에게 와인을 따르는 남편, 새언니의 특별한 생일이라고 프랑스에서 날라 온 시누이 커플,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친구들의 환한 얼굴을 보니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눈부신 태양이 할 일을 마친 저녁 어스름의 하늘은 어쩌면 나와 닮아 있었다. 나의 에이징은 금빛의 노을처럼 여유 있고 아름답기를 기대하며 근사한 오십을 싱가포르에서 맞이한다. 소소하지만 유쾌한 일상이 가득 찬 앞 날을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