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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프랑스어

by Yujin Kim

우리 가정의 공통 언어는 독일어와 한국어다. 프랑스계 독일인 남편은 아이들과 독일어로 소통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한국어로 얘기하지만 온 가족이 모여 있을 때는 독일어로 대화한다. 프랑스인 시어머니는 섭섭해하셨지만 아이들이 독일에서 태어났고, 독일 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정에는 프랑스어보다 독일어와 한국어가 중요했다. 6학년이 되어 제2 외국어를 선택해야 했을 때 우리 집 아이들은 당연히 스페인어와 라틴어 대신에 프랑스어를 선택했다. 아이들의 자유 의지보다 부모의 권유로 이루어진 결과였지만 프랑스 국적도 보유한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아이들 학교에서는 8학년 2학기에 신청자에 한 해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2주간 어학연수를 받을 수 있는 과정이 있다. 2주간의 어학연수가 프랑스어 실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아이들을 연수에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행히 아들은 8학년이었을 때 프랑스어 연수를 가지 않겠다고 했고, 딸은 곧 독일로 돌아갈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어학연수 겸 마지막 여행으로 꼭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본인이 간절히 원했기에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딸아이를 올해 5월 초 2주간 프랑스어 연수를 보냈다. 간절함은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 간절히 원해서 갔던 나의 6개월간의 캐나다 어학연수와 원하지 않았는데 갔던 남동생의 1년 미국 어학연수는 결과는 꽤나 달랐었다.


5월 말, 프랑스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프랑스어 공인 인증시험인 DELF를 치르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8학년인 딸은 A2레벨, 10학년인 아들은 한 단계 높은 B1레벨을 봐야 했다. DELF 시험일이 가까이 다가오는데 딸은 딸은 어학연수를 통해 시험 준비를 열심히 했고, 아들은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리암, 곧 DELF 시험인데 프랑스어 공부 좀 하지 그러니?"

"엄마, 그거 50점만 맞으면 통과야."

"루나는 100점 맞고 싶다던데. 100점을 목표로 공부해야 좋은 점수로 통과될 텐데, 50점을 목표로 했다가 통과도 못하면 어쩌려고 그래?"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 매번 놀라게 된다. 아들, 딸의 차이인지 성격의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시험을 본다면 학교에서 배우는 교재뿐 아니라 DELF 시험 준비를 할 수 있는 모의고사를 찾아서 연습을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아들이 이번 시험을 위해 책을 들여다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하라고 해도 안 할 게 뻔하기 때문에 잔소리도 별로 하지 않았다. 간절함은 내가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험날 딸아이는 몸이 안 좋아 두 번이나 토를 하고 시험을 치렀고, 아들은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며 편안한 얼굴로 돌아왔다.


며칠 전 학교에 데려다주는 길 아들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엄마, 나 DELF 시험에 통과했어."

"그래? 몇 점인데?"

"..."

"왜 말을 안 해? 설마 51점?"


통과를 했다니 50점은 넘었을 테니 51점은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최악의 점수였다.


"몇 점 받았어? 얘기해 봐."

"흐흐 50.5점"


턱걸이도 이런 턱걸이가 있을까? 내가 생각한 최악의 점수보다 0.5점이나 낮은 점수를 받았단다. 아무리 B1이 A2보다 한 단계 높은 레벨이라고 해도 학교에서 5년을 배웠는데 50.5점이라니. 두 아이 모두 프랑스어 과목을 잘하는 편이라 아무리 못 해도 70점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었는데 믿음은 저버리라고 있는 것 같았다.


"루나, 너는 몇 점 맞았니?"

"나는 93점."


100점을 목표로 한 아이와 50점을 목표로 한 아이의 시험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낄낄대고 웃는 아들, 천하태평이다. 프랑스어를 사랑해서 불어불문학과를 나온 엄마를 둔 내 아들은 프랑스 국적이 있는데도 프랑스어를 소홀히 하다니.


"엄마, 시험에 통과 못하는 애들도 많아."

"아들, 나 지금 자랑스러워해야 하니?"


23년 전 한국 독일문화원에서 행사가 있었을 때 나와 내 대학 친구가 프랑스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한 독일인 친구가 우리를 남편에게 소개를 해 줬었다. 그게 우리 부부의 첫 만남이었다. 프랑스어라는 매개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지금 부부가 아닐 수도 있다. 자기 출생에 프랑스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아들이 안다면 프랑스어에 애정이 좀 생길까? 100점을 맞고 싶었던 아이는 93점을 맞았고, 50점 이상으로 통과가 목표였던 아이는 50.5점으로 통과했으니 목표 점수와 아주 근소한 오차를 만들어 낸 아들이 대단하지 않다고 말할 순 없다. 마음을 다스려본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니까 말이다.




8AF2EDC7-CC69-4BFA-BAEF-92652AF5CF17.JPG 아들이 8학년 때 그린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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