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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야, 노 땡큐다!

by Yujin Kim

싱가포르에서 산 지 2년째가 되던 해 아이들이 다니는 독일 학교에서 학비를 인상한다는 발표를 했다. 일반적으로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 학교들은 물가상승률에 따라 해마다 5% 정도 학비를 올리곤 했다.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는 독일 학교는 다른 국제 학교에 비해 학비가 좀 더 저렴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학부모들의 반발이 있었다. 회사에서 전액 지원받아 학비를 내는 사람들 이외에 추가 비용을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싱가포르의 물가는 비싼 편이기 때문에 월급이 학비와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면 이곳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건 당연했다.


학비 인상과 관련해 학교에서 설명회가 있었다. 재무 관련 일을 하는 남편에게 설명회에 가서 내용을 들어보라고 했다.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아니면 방만한 경영을 한 것인지 들어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회의에 다녀온 남편의 설명에 따르면 캠퍼스를 이전하고 시설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빌린 자금 때문에 앞으로 몇 년 간은 어쩔 수 없이 학비에서 충당을 해야 한다고 했고, 재무제표를 들여다보니 이해가 되더라고 했다. 늘어난 학비로 가계에 부담은 되지만 좋은 시설에 대한 혜택을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누리고 있으니 반대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다른 학교들보다 학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다른 대안도 없었다.


딸아이 반 학급 채팅창에서 난리가 났다. 몇몇 부모가 학비 인상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고 흥분을 멈추지 않았다. 남편의 설명을 듣고 내가 이해한 것처럼 그들도 설명을 들으면 수긍을 할 것 같아 이해를 돕게 해 주자는 차원에서 남편에게 제안을 했다.


"당신이 전문가 입장에서 설명회에서 듣고 느낀 생각을 나에게 설명한 것처럼 다른 학부모들에게도 알려주면 다른 부모들도 이해가 되지 않을까? 말이 안 되는 일이라면 학교에 불만이나 개선사항을 제안해야겠지만 합리적이라면 반대만 하고 있을 수도 없잖아?"


남편도 내 의견이 좋다는 생각에서 내용을 정리해서 학급 채팅창에 올렸다. 그러자마자 대학교 교수 부부 중 남편이 여전히 불만을 표시했고, 그 부인이 다짜고짜 이런 글을 올렸다.


"당신, 학교 이사회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야? 왜 그쪽 편을 드는 거지?"


그 문장을 읽는 순간 황당함에 머리가 멍했다. 우리는 싱가포르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학급 부모 몇몇 외에 아는 사람들도 없을뿐더러, 우리 집 역시 회사에서 학비 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학비 인상이 반갑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더니 덧붙이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학비가 오르면 우리는 두 아이를 보내야 하는데 부담이 가중돼서 헬퍼를 더 이상 쓸 수가 없어."


상주 가사 도우미(헬퍼)를 쓰면 한 달에 1, 200 싱달러 정도가 든다고 들었다. 헬퍼를 쓰지 않는 집도 많은데 본인이 헬퍼를 더 이상 못 쓴다는 이유로, 그것도 학급 채팅창에 불평을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청소 도우미만 활용하는 내가 왜 저런 투정을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에 불평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학교가 제공하는 설명회에는 잘 오지 않고, 학교에 봉사할 일에는 참여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득에 반하는 일이 있으면 득달같이 달려든다. 학교 건축에 들어간 비용을 장기간에 걸쳐 충당을 해야 한다면 학비로 조금씩 보태는 게 맞다. 성공한 졸업생이 있다면 학교를 위해 기부를 해도 좋을 것이다. 기부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 자란 사람이 저런 불평을 하고 있다니. 타인의 좋은 의도에 무례하게 막말을 하는 사람이 싱가포르의 좋은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었다. 메시지를 보고 황당하다고 나를 쳐다보는 남편에게 저런 사람은 좋은 의도를 설명해 줘도 본인이 원하는 대로 들을 테니 아무 반응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귀한 시간을 들여 대답해 봤자 또 억지를 쓸 게 뻔했다.


결국 학비는 5% 수준에서 인상이 되었고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갔다. 학급 회의가 있어 나간 자리에 무슨 일인지 그 히스테리 대학 교수 엄마가 참여를 했다. 아마도 자기 아들과 연관이 있는 문제여서 참여를 한 것 같았다. 회의가 다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미 몇 발자국 걸어간 나를 그 여자가 굳이 불러 세우더니 말을 걸었다.


"My son told me that among female classmates Luna is okay."


자기 아들이 같은 반 여자애들 중에 우리 딸이 괜찮다고 했나 보다. 그런데 okay라니. 말투도 그렇고 걔 중에 낫다더라 하는 식으로 거만하게 말하는 폼이 역시나 꼴불견이었다.

나는 아무 대답 없이 헤어짐의 표시로 손만 가볍게 올린 후 자리를 떴다.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한 자세로 의사 표시를 했다. 그러고서 생각했다.

'이 여자야, 노 땡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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