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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Mar 13. 2024

인사는 잠깐인데 우리는 오래 헤어진다


'인사는 잠깐인데 우리는 오래 헤어진다'를 읽고 있다. 장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관계와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또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나는 이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상하게도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속의 나레이션이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 떠올랐다.


 헤어지는 일에 대해서, 특정 성격 구조를 알아보기 위해 질문한다. 헤어지는 것이 두려운지 혹은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운지. 그로 인해 어떤 대인관계에서 특정 행동을 반복하기도 하는지. 그런데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나 싶다. 나 역시 떠나거나 헤어지는 것이 어려운데. 나는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개원을 하면서 거리상의 문제로 집을 이사했다. 이사한 지 이제 보름이 되었는데 아직도 좀처럼 집이 정리되지 않았다. 새로 주문한 책장, 옷장, 침대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고 이사 과정에서 세탁기마저 고장이 나서 세탁기 없는 일주일을 보냈다. 이사를 하면서는 늘 다시는 이사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이사를 다니게 된다. 


 어느 순간 문득 어떤 장소가 사진처럼 문득 떠오르는 때가 있다. 전혀 평소에 생각하지 않던 장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분명히 아는 곳인데 어디지 한참을 고민하다 그 장소가 어딘지 알아차리고 기억이 떠오른다. 어떻게 이 공간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는 것일까. 분명 별생각 없이 지나가던 한 장면이었는데. 


 수원을 떠나면서는 처음 수원을 집을 구하던 때가 떠올랐다. 근무지가 갑작스럽게 정해진 터라 당장 3일 뒤 연고가 없는 곳에서 일을 시작해야 했고 나와 아내, 그리고 100일 된 주호와 살 집을 구해야 했다. 지도로 들여다봐도 어디가 살기 적당한 곳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근무지를 중심으로 두고 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수상한 지하차도를 지나(알고 보니 1호선 전철 지하차도였다) 아파트 단지가 나왔는데 마침 벚꽃 필 무렵이라 하천을 따라 벚꽃이 가득 핀 풍경을 만났다. 그때 직감적으로 이곳이 우리가 지낼 곳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주호가 일곱 살이니 어쩌다 보니 꽤 오랜 시간 살게 되었는데 또 떠나게 되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정신분석가 과정 지원이 시작되었다. 지원 안내 메일을 받았고, 올해 지원해서 합격하게 되면 내년부터 4년간의 수련과정이 있다고 한다. 지원 서류를 훑어보니 개인력을 작성해야 한다. 늘 환자분들 대하면서 물어보는 것이 성장과정, 배경, 그리고 어린 시절 가족 이야기인데.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학생 시절부터 나 자신의 개인력을 작성할 기회가 많았지만 개인력은 아무리 반복해서 작성해도 익숙해지지 않고 나를 긴장하게 한다. 


 양선생님은 농담처럼, 내가 성격장애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입학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스갯소리였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쓸수록, 나의 역동이 드러나는 것이 혹시나 선발이나, 혹은 나중에 있을 졸업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를 한껏 방어해서 괜찮은 사람인 양 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런데 그건 또 사실상 거짓말인 것 같아서 고민이 된다. 


  주 2회의 정신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이제 4년이 되어간다. 정신 치료 과정은, 내가 때로는 힘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과 갈등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했다. 나는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처럼 잘 알지 못했다. 나는 괜찮아야만 하는 줄 알고 있다가. 아 내게도 이런 갈등이 있구나, 그런데 이런 갈등이 있어도 괜찮구나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굳이 분석가 과정 지원 서류를 작성하면서 굳이 적당히 숨길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또, 등선생님은 적당히 보기 좋게 포장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나를 말릴 것 같다. 아니면, 고집부리는 나를 두고 아, 저 사람은 참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진료 중의 일이었다. 몇 차례 방문해서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분이다. 문득 병원을 어떻게 방문하게 되셨는지 말씀하시는데. 강남에 멋진 병원은 많지만 정신과 의사가 자신도 때때로 우울하다고 고백하는 글을 쓰는 병원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그게 인상적이라고 하셨다. 뭔가 어쩌면 내 마음도 뭔가 크게 잘못된 게 아니지 않을까. 여기서는 편하게 이야기해 볼 만하다는 마음이 드셨다고 했다.  병원 그리고 진료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인테리어나 뷰가 너무 좋다는 이야기보다 그 이야기가 나는 특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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