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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강 Nov 13. 2020

왜 변호사가 되셨어요?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제법 많은 사람들로부터 왜 이 직업을 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주 질문을 듣게 됩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매스컴에도 자주 노출되고, 왠지 모르게 무게가 있어 보이고, 사람들이 선망하는 전문직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직업을 선택한 계기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 듯합니다.      


아마 가장 시니컬하게 농담조로 할 수 있는 답변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판사나 검사를 지망하지 못했다는 것인데(보통 이 대목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가장 좋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답변은 결국 본인이 법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한 계기에 대한 설명으로 귀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을 굳이 문과형 인간과 이과형 인간으로 나눈다면, 저는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입니다. 수학과 과학 과목을 무척 싫어하고, 언어와 사회 과목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인문계열을 선택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작문과 독서를 좋아했고, 소위 ‘역덕’이라고 불릴 정도로 역사 공부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원래는 인문학, 세부적으로는 사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하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었습니다. 또한, 현재까지 이어지는 취미이긴 하지만,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신문방송학과 진학도 고려해 보았고요. 하지만, 국내 상황 상 학부에서 순수 인문학만을 전공해서는 학계에 진출하거나 전공에 부합하는 직업을 선택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주변의 얘기를 듣고는 문과 내에서 실용적이면서도 수학(산수)과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는 학문을 고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본인의 적성에는 법학이 어울린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법학은 정의를 구현하는 학문이고, 어렵고 억울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고, 수학이랑 관계가 없고, 열심히 공부하면 법조인이라는 그럴듯해 보이는 멋진 직업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거든요. 법대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과 선생님이 기뻐하면서 잘 생각했다며 격려를 해 준 것도 한 몫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저는 진로에 대한 어떠한 추가적인 고민도 없이 법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006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그 당시 법대생들은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로스쿨 제도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사법시험이 언제까지 존속할 것인지, 로스쿨의 경우 어떠한 방식으로 입학이 이루어지는지 여부가 불투명하고, 궁극적으로는 사법시험 공부와 로스쿨 입시준비 중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학생들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입학할 당시만 하더라도 로스쿨 제도 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가 대세였는데, 로스쿨 설치 법안이 통과되어 08학번 이후로 법학과에 후배가 들어오지 않게 되고, 학교가 로스쿨 개설준비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법학과 내에서도 사법시험을 계속 준비하는 학생들과 로스쿨 입시를 위해 학점 등 스펙관리에 전념하는 학생들이 두 부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저 역시도 대학교 재학 중에는 마치 바람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갈대처럼 갈피를 못 잡는 상태에서 진로를 고민한 것 같습니다. 재학기간 내내 고시생 신분으로 학점관리에 그다지 신경을 안 쓰지 않은 채 사법시험 공부에 몰두하다가, 졸업학년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였거든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로스쿨 준비를 한 저였지만 그래도 운이 좋게도 입시를 준비한 그 해에 합격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로스쿨에 입학한 직후는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먹구름처럼 불투명하고 공기 속을 부유하는 것만 같았던 불안한 대학생 신분이 아니라 적어도 수년 전부터 꿈에도 그리던 법조인이라는 직업에 본격적으로 한걸음 다가간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시험 준비도 했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고요. 그런데 역시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로스쿨 안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다양한 전공분야에서 학업적인 부면에서 훌륭한 성취를 얻은 분들, 사회경험이 풍부한 분들, 예비 법조인으로서 본인의 포부와 목표가 명확히 존재하는 인생선배들과 함께 공부하다 보니 비록 좋은 성적을 얻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치열한 로스쿨 생활을 함께 버티면서 많은 점들을 공유하고 서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로스쿨에서 공부하면서 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이론공부와 함께 실제로 서면을 쓰는 훈련, 즉, 실무훈련을 함께 병행하게 되면서 법학에 대한 흥미와 이해도가 더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실용적인 학문의 매력을 이때 새삼스럽게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요? 특히, 로스쿨 3학년이 되면 기록형 수업을 통해 교과서에 기재되어 있는 이론을 원고와 피고의 입장이 되어서 실제 사건에 적용하여 각자의 지위에 맞게 주장과 항변 사항으로 구성하는 연습을 하게 되는데, 아마 이 때가 제가 법학을 전공하면서 가장 재미있게 수업을 들은 순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정된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한국식 교육의 정점에서도 모의기록을 읽고 서면을 쓰는 그 순간만큼은 우등생, 열등생이라는 구분 없이 의뢰인을 위해 열심을 다해 변론을 준비하는 한 사람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교수님이 지정해주는 대로 원고나 피고를 골라서 상대방의 주장을 열심히 반박하는 장문의 글을 쓰는 수업이 재미있다고 느꼈다는 점에서 어쩌면 변호사는 정말로 천직일지도 모르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저는 로스쿨을 졸업한 후 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변호사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왜 변호사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정작 두서없이 얘기를 늘어놓은 것 같지만, 분명하게 제가 이 직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본인에게는 매우 의미가 있고 또 재미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일을 하다보면 지치고 힘들어서 누군가에게 이 일을 추천하기는커녕 본인 스스로도 이 직업을 택한 사실을 후회한 적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의뢰인을 위해 열심히 준비서면을 쓸 때, 무거운 서류가방을 들고 법원을 들어갈 때, 옆방 변호사님과 사건의 진행방향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을 때, 소송결과가 난 후 의뢰인으로부터 작은 감사의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본인의 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비록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해, 변호사란 직업이 학생 때 동경했던 그것과는 많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저는 과거의 본인에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법학에 대해 전혀 모르고 또 변호사가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겠지만, 직접 해보니 이 일은 제법 재미있다고, 그리고 덕분에 고맙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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