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변호사시험을 합격한 후 수습과정을 거치자마자 28살의 나이에 변호사 개업을 했습니다. 법조계에서 ‘개업’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첫 번째는 대한변호사협회에 가입하여 소송대리인으로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정식으로 보유하게 된 것을 의미하고, 두 번째는 사업자로서 본인 명의의 사무실을 운영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본인의 변호사 개업은 전자와 후자를 모두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로스쿨 체제 하에서 변호사는 6개월간의 수습기간을 거친 후, 로펌 내지는 법률사무소에서 수년간 소위 ‘어쏘변호사’로 불리는 고용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파트너 변호사 내지는 대표가 되어 자기 사업을 하게 되는 것이 통상적인 루트입니다. 그런데, 저는 대부분의 송무변호사가 거치게 되는 어쏘변호사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채 바로 개인 법률사무소 대표가 되어 버린 것이죠.
제가 이처럼 파격적인 선택을 하게 된 계기는 로스쿨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로스쿨 2학년 겨울방학 때 저는 지인을 통해 개인 법률사무소의 인턴 자리를 소개받았습니다. 본래 자문이 아니라 송무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었기에 변호사들이 어떻게 사건을 수임하고, 실제로 재판을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는지가 몹시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겨울방학 기간 내내 공부만 하는 것이 매우 따분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저는 흔쾌히 인턴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제가 신세를 진 곳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 위치한 개인 법률사무소였는데, 연수원 15기를 수료하신 원로 변호사님이 운영하는 사무실이었습니다. 면접을 보러가니, 어머니 나이 또래의 성격 좋으신 사무장님이 저를 반겨주셨고, 사무실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다 듣고 나니, 이어서 변호사실에 계신 백발에 카리스마와 연륜이 넘치는 변호사님(이하 본문에서는 성씨를 따라서 ‘송변호사님’이라 칭하겠습니다)이 저를 맞이하여 주셨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나니 송변호사님은 흥미가 있는 사건이 있으면 자유롭게 사건기록을 꺼내서 읽어도 좋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재판이 있으면 사무실 근처이니 함께 재판에 출석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고, 면접 당일부터 인턴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개월간의 인턴기간은 짧지만 매우 유익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사무실에서 수행했거나 수행 중인 사건기록을 읽어보고, 점심에는 사무실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송변호사님이 사건과 관련해서 검토해 보도록 하신 쟁점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재판에 따라가는 일정을 소화한 후 6시에는 퇴근하는 것이 대체적인 하루 일정이었습니다. 송변호사님과 함께 재판에 출석했던 게 특히나 기억에 남는데, 재판 전에 이미 사건기록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했기 때문에 재판의 진행과정에 대해 흥미가 생겼고, 송변호사님이나 상대방이 가장 최근에 제출한 준비서면을 토대로 사건의 쟁점이 변론기일에서 어떻게 정리가 되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조정절차 출석이나 의뢰인 상담을 진행할 때도 송변호사님은 제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는데, 그 때마다 사람들에게 저를 예비 법조인으로 소개하시면서 정중하게 대우해 주셨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송변호사님께서 당시 법조경력이 30년에 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변호사도 되지 않은 저를 항상 정중하게 대해주셨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분의 훌륭하고 겸손한 인품에 대해 감탄하게 되곤 합니다. 시장악화로 인해 경쟁이 심화되면서 변호사 간의 예의가 점차 사라지고, 얄팍한 지식 그리고 얼마 차이나지 않는 법조경력만으로 서로를 깎아내리는 현 세태를 돌아보면 더더욱 그렇고요.
인턴기간 동안 열심히 업무를 배우는 모습이 인상에 남고 귀여우셨는지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송변호사님은 축하와 함께 변호사 개업과 관련해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기와 상의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6개월간의 변호사 수습기간이 종료될 무렵 다시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송변호사님은 혹시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본인 사무실 일부를 전차하여 개인 사무실을 운영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당시의 저는 젊은 패기도 있었고, 집필활동, 유학준비 등 계획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한 개인시간을 확보하면서 송무를 시작할 수 있는 사무실 개업이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였고, 인턴생활을 한 사무실이라 애착도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변호사님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2014년 11월부터 송변호사님과 저의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설레는 감정에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들이 발생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모두 벌써 아련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지만 말이죠. 이어지는 글에서는 송변호사님 사무실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만들었던 몇몇 추억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