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러 가는 중
가끔 삶 전체를 관통하는 영화를 보면 뭐랄까, 또다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하다. 영화 [사울의 아들]이 그랬고 얼마 전 보았던 [잘리카투]가 그랬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는 심장을 뛰게 하기도 하고 그와 반대로 차분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은 찬사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어딘가 내 마음속 허무함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영화 [그린 나이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영화 [그린 나이트]는 주인공 가웨인이 겪는 모험담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 초반 가웨인은 인생을 되는대로 막사는, 술에 취해 휘청거리고 좋아하는 여자와 한바탕 뒹구는 탕아로 그려진다. 아서왕의 조카인 그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불현듯 나타난 그린 나이트에 목을 치게 되고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명예와 재물을 누리는 대신, 1년이 되는 바로 그날 녹색 예배당에 스스로 찾아가 똑같이 그린 나이트에게 목을 내어주게 된다.
대체 그린 나이트는 왜 그의 목을 원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혹시 그는 악마가 아닐까? 인간의 한낱 어리석음과 욕망을 조롱하며 잠시 행복을 맛보게 해 준 뒤 영혼을 빼앗아 가는 서사는 여느 악마들의 장난거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가웨인에게 목이 잘린 뒤에도 죽지 않고 몸체와 얼굴이 분리되어 버젓이 말을 하며 자신의 머리통을 챙겨 말을 타고 유유히 사라지기까지 한다. 그가 잃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가웨인은 고작 1년도 안 되는 (그중에서 몇 개월은 녹색 예배당을 찾아가야 하는 여정의 길을 떠나야 했으므로) 시간에 부와 명예를 누리고 모가지를 썰려야 하다니. 이것은 너무나도 불합리적이며 합당한 처사가 아니다.
심지어 가웨인은 녹색 예배당을 찾아가는 도중 도적떼의 사기도 당하고 유혹도 당하고 추위와 배고픔도 당한다. 목숨을 내어주기에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찰나의 부와 명예를 누리며 고난까지 겪는 것이다.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가웨인은 그린 나이트의 모가지를 내려쳤지만, 그가 잠시 어리석었다 한들 무용담을 가지고 싶은 보잘것없는 탕아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음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가웨인의 어머니는 가웨인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굳이 녹색 예배당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그린 나이트와의 약속은 무시하고 지금 손아귀에 있는 부와 명예를 지킨 채 살아가도 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가웨인의 모험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열광은 식을 줄 모른다. 끝끝내 모험 길에 오르는 가웨인에게 가웨인의 어머니는 마법의 녹색 허리띠를 주며 말한다. 이것이 너를 지켜줄 것이란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웨인의 모험들을 보며 이다지도 가엾은 인간이라니 이다지도 멍청한 인간이라니 한숨에 한숨을 내 쉬었다. 하지만 나 또한 마찬가지로 이 인생에 빛나는 선택에 흥분하며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린 나이트의 모가지에 칼날을 들이밀었으리라.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튼, 그는 비로소 녹색 예배당에 도착하였다. 그간의 여정들이 무색할 만치 그린 나이트는 왕좌와도 같은 곳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마치 그를 처음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한다. 그리고 그의 목을 내리치려 칼을 높이 치켜세운다, 그 찰나.
가웨인은 그 찰나에 자신이 녹색 예배당에 굳이 찾아가지 않고 약간의 창피함은 무시한 채 살아갈 수도 있었던 또 다른 선택의 나날들을 목격한다. 또 다른 선택 속 가웨인은 내내 녹색 허리띠를 차고 있다. 왕이 되었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버리고 자신의 아이가 죽는다. 명예와 부는 지속됐지만 전쟁은 실패하고 왕좌에 혼자 남겨진다. 쓸쓸한 왕좌에 앉아 이미 한 몸이 되어버린 녹색 허리띠를 창자를 꺼내 듯 떼어낸다. 비로소 그의 목이 뎅강 잘린다.
다시 정신이 든다. 그린 나이트가 그의 목을 자르기 일보 직전이다. 다시 잠깐만을 외치고 허리에서 녹색 허리띠를 풀어낸다. 이번에는 저항하지 않는다. 받아들인다. 목이 잘려 죽는다!
가웨인은 죽어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린라이트는 죽음 그 자체였으니. 고등학교 시절 한문 선생님이 불현듯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칠판에 긴 선을 그리며 우리는 다 죽으러 가는 중인 거라고 이렇게 살고 있지만 사실 다 죽으러 가는 중인 거야. 100년도 못 사는 중생들의 삶. 인생을 롤러코스터에 비유하든, 바다나 파도에 비유하든 결국 다 죽을 목숨들. 영원히 사는 건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슬픈 운명.
이 운명을 벗어 날 수 있는 인간이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린 나이트는 가웨인에게 있어 우리에게 있어 필연의 존재이며 장난이든 조롱이든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자연은 그 자리 그대로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이 순환의 고리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나약히 따를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마음속 어딘가 일렁이는 인생의 허무함이 나를 휑하게 만들었음을.
우리는 죽는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 순간마저도 나는 분명 죽으러 가는 중이다. 이 인생의 길의 끝은 죽음뿐이다.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는 인생사지만 오로지 죽음 만이 명료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마법의 허리띠로 나 자신을 속이려고도, 쾌락과 향유에 젖어 먼발치에서 기다리는 죽음을 잠시 가려보는 것도 모두 얄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가만히 앉아 가웨인처럼 발악도 못한 채 멍하니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분명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너무 낙담만은 하지 말자. 나훈아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세월의 모가지를 딱 잡고 살아야 한다고. 세월에 끌려다는 일은 죽음을 기다리는 일 밖에는 되지 않으니 우리는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사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고 싶은 일도 하고 꿈도 꾸고 아프기도 하고 약도 먹고 고통도 받아보자. 어차피 기다리는 게 죽음이라면 우리가 겪는 경험과 감정들은 더욱 소중해지는 자신의 것이 된다.
죽음을 두려워 하기에 인간이다. 모가지가 잘려나가면 그대로 끝이기에 인간이다. 우리의 본연이 이러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두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죽으러 가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