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 개념
그림이미지: 라파엘로(1483~1520)의 1510~11년작
(출처: 다음이미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메시스(mimesis), 즉 모방에 대한 상이한 관점을 지닌다. 우선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지닌다. 왜냐하면 모방은 인간의 본능적 행위로서 인간에게 즐거움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은 모방된 것, 이를테면 사물을 모방한 미술작품 혹은 인간 행위를 모방한 연극 등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렇기에 모방은 인간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인간은 모방된 것을 통해 진리에 접근해나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은 직접 경험하지 못했거나 보이지 않는 관념에 대해서 그것을 재현한 매개를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모방은 인간에게 즐거움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반면, 플라톤은 모방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지닌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과 달리 플라톤에게 모방은 오히려 교육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모방은 청년들의 감각을 유혹함으로써 청년들을 이데아(idea), 즉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왜곡된 진리를 경험하게 한다. 이데아는 이성 활동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지성의 세계이며, 현상은 감각 활동을 통해 알 수 있는 육체의 세계로서 이데아의 세계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에 따르면 이데아를 재현한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재현한 것, 그럼으로써 이데아로부터 멀어지는 것일수록 이데아를 결핍하고 그림자에 가까워지게 된다. 즉, 플라톤에 따르면 모방된 것으로 가득한 그림자의 세계는 이데아를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이데아의 세계를 왜곡할 수 있는 세계이다.
플라톤은 ‘침대의 일화’를 통해 이를 유비적으로 설명한다. 침대는, 신의 침대, 목수의 침대, 화가의 침대라는, 이 세 가지 층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신의 침대는 침대의 이데아로서 존재하며, 목수의 침대는 그 이데아를 모방한 것으로 현상 세계에서 감각할 수 있는 사물이며, 화가의 침대는 목수가 제작한 바로 그 침대를 모방한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로 구분된 층위에 따르면, 화가의 침대는 신의 침대로부터 두 단계 멀어져 있으므로 목수의 침대보다 저열한 것이다. 목수는 신의 침대를 모방했지만, 화가는 진리로부터 한 단계 멀어진 목수의 침대를 모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예술은 제작술보다 하위의 영역에 있게 되며, 예술가의 모방은 공동체가 건전한 청년 교육을 위해 지양해야 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모방에 대한 두 철학자의 위와 같은 상이한 관점은 곧 상이한 예술관을 야기한다. 예술은 본래 관념의 이데아 세계 혹은 감각의 현상 세계를 모방한 것이므로, 모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예술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므로 예술에 대해서도 긍정적 관점을 지니는 것이 필연적이며, 플라톤은 모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므로 예술에 대해서도 부정적 관점을 지니는 것이 필연적이다. 즉, 미적으로 아름답게 그려진 ‘반고흐의 그림 속 침대’는, 플라톤에게는 감각을 자극하는 저열한 것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이데아 접근하기 위한 매개, 즉 배움의 즐거운 기회를 제공하는 매개로서의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