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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의 노블 테라피 Jun 27. 2024

"당신들은 우리요, 우리가 당신들이요!"

[굿바이, 콜럼버스], 필립 로스

_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은 자신을 벗어날 수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작가들은 자신에게서, 정확히는 자신을 둘러싼 어떤 물음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은 그것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집요하고 끈질기게 파고들고 그것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모든 것에 천착해, 기어이 끝장(?)을 보려고 한다. 이러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음'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묻고 또 묻고, 이를 통해 얻었거나 얻지 못했거나 얻을 수 없음이 분명한 것을 쓰고 또 써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이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묻고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과 화해하고 자신을 둘러싼 삶, 나아가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일에 있어서 이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음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진리인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상 존재해온 모든 작가들과 책들이 명백히 증거하는 진리말이다.


이런 점에서 필립 로스만큼 확실하고 믿음직한 증인(?)은 없을 것이다. 유대인으로서 유대인 이야기 - 미국에 사는 유대인 이야기를 끈질기고도 고집스럽게 써왔으니까. 하지만 유대인과는 접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일개 독자 나부랭이인 내가 그의 소설을 읽고 나와 화해하고 나를 둘러싼 삶을 받아들이려 애쓰게 되었다면, 타인과 타인의 삶과 세상을 눈곱 만큼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면, 마침내 나는 "결국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면, 유대인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인 셈이다. 다시 말해 "당신들은 우리요, 우리가 당신들"(p.421)인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이 소름끼치도록 경이롭고 또 두렵다. 


_필립 로스의 작품을 발표시기와 상관없이 읽다 보니 초창기 소설, 그것도 단편집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굿바이, 콜럼버스]는 필립 로스의 팬임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색다른 재미를 느꼈던 책이다. 작가의 단편소설은 처음이었고, 게다가 데뷔작이 수록되어 있으니까. 수록작 중 <앱스타인>은 작가 특유의 위트와 유머를 새삼 즐길 수 있었던 작품이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위트와 유머 안에 깃든 인간과 삶에 관한 예리한 통찰력은 물론 말할 것도 없다.


_"너는 아직 애야. 너는 이해 못해. 사람들이 자기 걸 빼앗아가기 시작하면 누구나 손을  뻗게 돼. 움켜쥐게 돼. 어쩌면 돼지처럼 보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도 움켜쥐게 돼.....그때 옳고 그른 걸 어떻게 알겠어! 눈에 눈물이 고였는데 그 차이를 누가 제대로 볼 수나 있겠어!"

(...)

"뭐 다른지 너는 알지 못해. 아내를 얻고, 아버지가 되고, 두 번 아버지가 되었는데.....그런데 나한테서 다 빼앗아가기 시작했어....."(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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