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루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_알 수 없다. 모르겠다. 생각할수록 알 수가 없고 아무리 곱씹어도 모르겠다. 인간이라는 것은. 삶이라는 것은. 세상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더 알 수 없는 것은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다는 거다. 다들 어떻게든 살아내려 애쓰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더 알 수가 없다. 생각할수록 모르겠다. 말장난 같은 이 생각은 언제나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어"(p.364)
-그래서 소설을 읽는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소설책을 펼친다. 소설이 명쾌한 답을 내어주어서? 소설을 읽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있어서? 아니다. 소설은 어떤 답도 해주지 않는다. 소설을 읽으면 오히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다. 더 모르겠다. 대신 소설에는 내가 있다. 나처럼 모르겠다고, 알 수 없다고,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냐"(p.223)고, "아무런 답이 없다"(p.62)고 고백하는 '루시'가 있다. '루시'는 '나'이고 '우리'이다.
그 어떤 답도 듣지 못했고 오히려 생각이 더 많아졌지만, 소설을 읽고 나면 어쩐지 살아갈 힘이 조금 나는 것 같다. 무턱대고 희망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포기하지는 못할 만큼의 힘이 생긴다. 어쩌면 딱 그 만큼의 힘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운이 좋다면 매일 주어지는 하루치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는 '루시'를 떠올린다. 그리고 나도 '루시'처럼 작게 중얼거려본다.
_ "오, 루시, 이따금 이 넓고 넓은 세상 속의 모두가 안타깝게 느껴지지 않아요?(p.290)"
"윌리엄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아주 다행스러웠지만, 슬퍼하는 것은 고독한 일이었다.(...)그저 내가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라고 느꼈다."(p.305)
"그래서 내가 말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는 것 같지만, 정말 모르겠어.(...)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어."(p.364)
"우리는 모두 늘 록다운 상태에 있다는 생각. 단지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 그저 그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우리 대부분은 그저 헤쳐나가려고 애쓸 뿐이다."(p.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