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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랑 Mar 26. 2024

의료 공백, 파국은 피해야합니다.

희귀질환 환자로서 정부와 의사 선생님께 호소합니다.

안녕하세요?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해봅니다.


의사와 정부 사이, 환자 '나'




저는 두 가지 난치병과 함께 살아가는 희귀질환 환자입니다.


첫째는 궤양성 대장염으로 중증 난치성 질환에 속하고 2017년부터 약 7년 정도 함께 해왔어요.


둘째는 돌발성 운동유발 이상운동으로 극희귀질환에 속하고 2010년경부터 14년 정도 함께 해왔네요.


둘다 원인불명에 완치가 불가하고 평생 약을 복용해야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행인건 둘다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이에요.


정기적으로 대학병원에 나가 현황을 체크하고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일상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먼저 적은건


대립이 시작된 2월부터 그간 보아온 풍경을 환자 입장에서 적어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에요.


우선 짧게나마 현 상황을 요약해 적어봅니다.





정부가 올해 대입에서부터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하겠다 발표한 이후


대학 병원에서 일하던 전공의 선생님들 거의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전국의 의과대학에서는 의대생들이 동맹휴학을 결의했고


대학병원을 지키던 의과대학 교수 선생님들도 근시일 내에 사직서를 제출하실 예정입니다.



정부는 의료현장에서 이탈한 전공의들의 면허를 정지하겠다 선언한 한편,


의대정원 증원을 차질없이 수행하겠다 공표했습니다.






사태의 기저에는 지방소멸과 함께 발생하는 지방의료 공백


생명과 직결된 필수 바이탈과 희망 인력이 부족한 필수의료 공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간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은 미국과 비교해도 우수하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의료접근성이 뛰어나고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의료비 부담을 절감해주고


원한다면 전문의 선생님께 빠른 시간 안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금의 체계가 유지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구감소, 지방소멸의 여파로 지방 의료인프라가 점차 줄어들고 있고


의료계내 필수의료 기피로 수도권 병원에조차 필수과 지망 의사들이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당면한 문제에 대해 정부와 의사 단체 모두 공감하고 있으나 양자의 해결 구상이 많이 다릅니다.


그 결과, 양자가 치열하게 충돌했고 3월 말 현재, 갈등은 최고로 고조된 상황입니다.






정부와 의사 단체간의 첨예한 갈등과 의견대립을 짚어보며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는 환자로서 2, 3월 병원에 빈번하게 방문하며 보아온 풍경을 적어볼까 합니다.




2월 초,



정부의 증원 발표와 전공의들의 사직이 이어질 때 많이 당황했습니다.


조만간 극희귀질환 확진을 위한 검사와 진단일이 예정되어있었기 때문이었어요.


14년간 이름도 모르고 살았던 질환이 무엇인지, 그 원인이 무엇일지 알아볼 수 있을텐데


혹시나 더 많이 기다려야하는걸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물론 검사가 미뤄지진 않았습니다.


당시만해도 진료가 실제 미뤄지는 경우는 손에 꼽았고


진료 대기 인원이 조금 많아지는 정도였지요.



다만 병원은 확실히 한산해졌습니다.


한산한 병원에 남은건 그럼에도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봐야하는 분들이다보니


분위기는 다소 무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희귀질환 환자들 중에는 한국의 의료시스템 덕분에 생존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 시스템은 의료진들의 장시간 근로와 뼈를 깎는 수련, 정부가 고심해 구축한 의료보험 덕분에 유지됩니다.


때문에 병원에 올 때마다 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나곤 했습니다.



긴 기간 통원해 치료하다보니 의료진 선생님과 자연스레 신뢰와 유대관계가 생겨 감사하게 되고


정부에서는 산정특례를 통해 희귀질환 환자들의 치유를 금전적으로 지지해주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의료진과 정부 사이의 의견 차이에 어느 편의 주장이 더 타당한지 두고 고민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양측 모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 믿기에


 이번 사태를 두고도 당장 심각하게 걱정하기보다는


양자의 입장을 차분히 정리해보며 어떻게 절충해나갈지 고민하는 분들이 다수였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씩 바뀌었어요.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진분들은 증원조치가 완전 철회되어야만 돌아올 수 있다 하고


정부에선 2000명의 증원에서 감원은 불가하다고만 되풀이합니다.



오히려 의대생들의 동참, 대학병원 교수진들의 사직까지 사태는 더욱 커지고


정부에선 2000명의 증원도 부족하다며 오히려 더 늘릴 수 있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3월



그래도 병원 예약이 취소되지는 않아 다행이구나 하고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한산하지만 여전히 붐비는 병원 속에서 여전히 심각한 대치 상황을 보며 걱정합니다.



대학병원이 전공의들이 지탱하고 전문의 선생님들께서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구조임을 감안하면


두 축이 떠나는 순간 대한민국의 상급 의료는 공백이 되는 셈입니다.



몇 개월 뒤 신경과와 소화기내과의 정기검진 예약을 잡아두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희귀질환 환자, 중증난치성질환 환자로서 제 일상은 진료와 약 복용 덕분에 지탱해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체계를 만들고 유지해온 것은 의사 선생님들과 과거 대한민국 정부들이었지요.



그분들의 노고와 희귀질환 환자들을 위해 힘써주신 모습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 같은 사람도 꿋꿋이 살아가며 사회에서의 역할을 상상하고 꿈꿔나가고 있어요.



감사와 더불어서 호소를 한마디 더할까 합니다.


중증 난치성 질환, 희귀질환 환자 중 한 사람으로서


지긍의 의료대란을 두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야 진료가 조금 늦어지고 기다리는 정도지만


저보다도 예후가 심각하여 의료 지원이 없다면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의료진 선생님들께선 부디 병원을 떠나지 말아주세요.


선생님들의 헌신 덕분에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희귀질환 환자 및 환우회도 선생님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에 대해 정부에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부디 의료현장에서 조금 더 수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정부에 호소합니다.


증원은 앞서 열거한 지방의료붕괴, 필수의료붕괴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 한가지에 불과합니다.


지금 작은 방법 한 가지에 매여 모든 건설적인 논의가 소멸해가는 중입니다.


문제해결을 위해 병행해야할 다른 방법들도 논의해야하니


지금 현장을 떠난 의료진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절충안을 제시해주세요.


양측 모두 전면 수용과 전면 철회만을 외치며 극한의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실제 피해는 환자라는 이름의 유권자들이 입고 있습니다.



의료가 절실하게 필요한 환자들이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떠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어쩌면 미래에 벌어질 일을 지금 미리 보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정부와 의사 모두 저마다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이 다르기에 이렇게 강경한 모습인 것이겠지요.


하지만 동상이몽 속이더라도 대화와 타협, 절충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부디 당장의 파국을 피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진 선생님들께서 힘을 모아주세요.



[어느 복합 희귀질환 환자의 호소]







(물론 정부의 주장, 전공의, 교수진 선생님들의 주장 및 상황도 이해합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상황 이해 및 정확한 판단을 위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끌어모으며 공부하고 상황을 주시 중입니다. 대치가 사실상 선거와도 연동된 만큼 4월 총선을 의견 개진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라는 막강한 스피커와 이익집단으로서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온 의료진 선생님들과 달리 희귀질환 환자들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담겨 멀리 전파되는 경우가 부족한 것 같아 부족한 생각과 기억을 엮어 글로 적어보았습니다. 부디 슬기로운 해결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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