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연희랑입니다. 저는 경희대 옆 외대에서 스페인어와 AI를 공부하는 대학생이고요. 경희의료원에는 궤양성 대장염과 돌발성 운동유발 이상운동증(PKD) 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내원하고 있습니다. 이름이 참 어렵네요. 설명을 한다고 덧붙이는 원인불명, 중증난치, 극희귀, 완치 불가 등의 어구는 한순간에 제 삶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런데요. 희귀질환 환우들의 인생이 그렇게 희귀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당장 생명이 위험한 질환들도 있지만, 정말 다행히도 꾸준히 관리해가며 살아가면 된다고 희망을 얻는 희귀질환 환자들도 꽤 많이 있거든요. 오늘 제 글이, 멀고 무섭게만 느껴지는 희귀 난치성 질환들이 그다지 두렵지 않을 수도 있더라는 생존기로 읽히길 바라며 적어봅니다.
초등학생, 고등학생 때 지금의 두 질환과 처음 만났습니다. 3~4개월마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는 일, 피를 뽑고 내시경 검사를 하는 일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구체적인 병명과 위력을 알게 되었을 때는 전신에 힘이 빠지듯 낙심했던 기억도 납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지요.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작은 일들에 감사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갔습니다. 미약하게 나마 운동을 지속하고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며 어려운 순간들을 넘어왔습니다.
가장 근래에는 PKD가 유전될 가능성이 있지는 않을까 마음 졸이며 유전자 검사를 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유전성 원인으로 판명되어 이후 자녀 계획에도 영향이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래의 자녀에 이상이 없는 것, 그리고 지금의 제가 하루 하루를 잘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질환으로 겪었던 어려운 시간들이 숱하게 있었지만, 그 시간을 잘 견뎌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신 의료진 선생님들과 가족들께 감사했습니다. 산정특례로 치유를 지원해준 우리나라의 의료 정책에도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심각하고 어려운 시기가 오더라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지금 이 순간에도 제게 놓인 질환들을 하나씩 생각하다 보면 마음이 심란합니다. 중증 난치성 질환, 극희귀 질환, 현 시점 의료 기술로 완치 불가 등등을 듣고 있다 보면 마음에도 질환이 찾아올지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앞선 언급처럼 희귀질환이 일상에 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관리만 하면 되는 상황으로 치유되는 분들도 상당합니다. 감사하게도 저 역시 그러한 부류에 속하고 이제는 완치를 꿈꾸고 있습니다. 제가 앓고 있는 질환에 대해 공부하고 자가면역질환 치료를 위해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들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함께하는 질환들을 동행인으로 인정하되 ‘희귀’ 질환으로 특별하게 대하지 말고 그저 가벼운 질병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발병률과 완치율을 두고 복잡하게 수싸움하기보다, 하루하루 일상에 되지 않는 수준까지 관리되는 두 질환을 감기나 비염 같은 존재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일상에서 굳이 난치, 희귀로 높여주지 않기로 하니 마음의 부담이 한결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환자입니다.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제 안의 질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치유에 있어서도 많은 수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질환의 강도도 다른 환우 분들에 비해 경미한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런 제가 희귀질환 환자를 대변하는 것처럼 글을 적어도 될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희귀질환 환자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의 표본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희귀질환의 무게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전해지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