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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연 May 06. 2021

그릇의 이름을 불러주자
그릇은 예술이 되었다

일본의 조선자기 사랑법과 스토리텔링의 힘


조선의 도자기, 0세대 한류스타?

일본에서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도자기도 '고려다완'이라고 부른다. 투박함을 추구하는 미학, 이른바 '와비사비(侘寂)'가 16세기 일본 다도 계에서 크게 유행할 때 조선의 도자기도 '고려다완'으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일본 다인들은 기형과 색깔, 유약 등의 특징을 종합해 도자기에 그들만의 용어를 부여했다. 조선의 도자기라고 말하지 않아도 '미시마(三島)', '하케마(刷毛目)', '카타데(堅手)', '이도(井戸)', '쿠마가이(熊川)', '고혼(御本)'이라고 하면 한국에서 제작된 것이다. (당진과 한자가 같아서 '카라츠(唐津)'라고 표시된 도자기를 한국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 때문을 종종 뵙게 되는데, 이것은 규슈의 카라츠에서 생산된 자기이다.)


교토의 경매회사에 소개된 조선시대 도자기들


상기한 여섯 가지는 일본 박물관이나 경매시장 등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조선의 도자기이다. 혹시 저런 글자가 적힌 옛날 그릇을 만난다면 우리나라 것이구나 하고 반겨주시기 바란다. 흔히들 하는 오해와는 달리 이런 도자기는 약탈품보다는 조선시대에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주문한 것이 많다. 오리콘을 정복한 가수 BoA보다도 앞선, '한류 0세대' 또는 'K-도자기'라고 해두자. 똑같이 한국에서 만든 미술품이라도 고려불화의 경우 일본인들이 중국의 불화로 오인하며 애호했던 반면, 이런 도자기는 처음부터 고려다완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었으니 내 멋대로 한류 0세대라고 불러보겠다.



도자기마다 이름이 있다고?

박물관에 전시될 정도의 도자기들은 과거의 유명한 다인이나 소장가들이 도자기의 특징에 맞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도 무리 없을 도자기를 놓고 그들은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계속 윤색해 나갔다. 도자기를 감싼 수많은 직물과 상자, 그 위에 이름난 서예가나 문장가가 종이에 붓으로 휘갈겨 적은 글자들은 그렇게 붙여진 이야기를 눈으로 체감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른바 일본의 '스토리텔링' 능력. 나도 모르게 김춘수의 시 <꽃>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면, 일본의 도자기 애호가들이 그릇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조선의 그릇들은 미술관으로 가서 예술이 되었던 것이다.


'쿄우고쿠' 도자기, 나고야 도쿠가와 미술관 소장


이것은 '카키노헤타(柿の蔕)', 즉 감꼭지라는 이름을 가진 고려다완이다. 개인적으로는 확 와 닿지 않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이름 붙이고 온갖 의미를 부여하고 파고드는 모습이 섬세해서 놀랍기도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사진이나 그림을 올릴 때 태그를 잔뜩 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신 일본의 다인들은 도자기를 담은 나무상자 위에 그릇의 이름이나 멋진 시를 적어 붙였던 것이다. 그런 작업을 좀 더 유명한 '셀렙'들이 오랫동안 계속해서 섬세하고 깊이있게 해왔다는 차이는 있겠지만.


카키노헤타로 가장 유명한 도자기는 도쿄 하타케야마 기념관의 '비샤몬도(毘沙門堂)', 나고야 도쿠가와 미술관의 '쿄우고쿠(京極)', 오사카 후지타미술관의 '오오츠(大津)'이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래 사진에 보이는 도쿄 고토미술관(五島美術館) 소장의 '아오가키(青柿)'이다. 아오가키는 다 익지 않은 여름철의 감을 의미한다.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초기까지는 미쓰이(三井) 재벌의 총수를 지내기도 했던 단 타쿠마(団琢磨, 1858-1932)의 소장품이었다고 한다. 사실 내가 아오가키를 좋아하게 된 건 아오가키가 담긴 상자에 코보리 곤주로(小堀権十郎, 1626-94)가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스토리텔링의 승리이다.


 푸른 감이 떫떠름하면서도 달달해 차에 곁들여 먹을만하니 곧 서리 내릴 무렵인가
 (あをがきのしぶしぶながらおちゃうけにあまきはやがてしものころかな)



일본에는 지금도 이런 카키노헤타를 만드는 도예가들이 있다. 원형을 빚은 것은 반도의 도공이지만, 이후 4세기가량 카키노헤타는 열도에서 의미와 맥락을 부여받은 삶을 이어왔다. 나는 이것이 문화의 흥미로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장소의 변화에 따라 없던 의미가 생기기도 하고, 다른 의미가 되기도 하고, 있던 의미가 사라지기도 한다. 새로운 원형을 창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들어진 원형을 계속해서 가꾸어가는 능력에 우리가 좀 더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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