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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영 Jan 23. 2024

2. 마늘을 만난 족발의 온기

두 가지 맛이 만나면 그 조합이 기가 막힐 때가 있다. 새로운 미식의 세계가 열린다. 따로 떨어져 살던 두 주체가 마주한 장소에서 제 3자인 내가 취향을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요리란 응당 다양한 소재들의 협음이겠지만, 가끔은 동등한 지위를 갖는 두 가지 맛이 존재한다. 일대일의 대결이 아닌 시너지를 내는 만남은 소중하다. 고유의 맛이 각각 살아있는데도 조화로운 것이다.     


신촌에서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 포함 동기 다섯 명이 조명이 아늑하고 큼직한 소파가 있는 술집에서 모였다. 내부에서는 와인을 포함한 다양한 술을 골라 마시고, 외부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사올 수 있는 장소였다. 한 동기는 노량진에서 모둠회를 포장해오고, 다른 동기는 새우칩 과자와 매운 새우깡 과자를 사왔다. 배달음식도 시켜볼까 해서 우리는 핸드폰으로 배달어플을 켰다. 수많은 메뉴 중에서 고민하다가, 나에게 치킨과 족발 중에 선택하라는 권한과 의무가 주어졌다.     


족발, “그래, 족발을 먹자.” 자신 있게 말하고 난 뒤, 오늘은 족발을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이유를 논리 있게 설명하고 싶었다. 나는 1인 가구라 혼자 족발을 시켜 먹으면 양이 많아서 다 못 먹고 남기는 편인데, 식은 족발은 데워서 먹으면 영 처음의 그 맛이 안 나서 선뜻 못 시켜 먹고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 함께 있을 때 따뜻한 족발을 맛있게 남김없이 먹고 싶다고 선언했다. 결혼한 오빠 두 명과,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생 한 명, 자취하는 오빠 한 명 모두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결혼을 한 오빠 1명과 동생 1명이 주도적으로 척척 족발집을 선택해서 주문하고 배달도 받아왔다. 오늘의 족발은 평소 내가 보던 비주얼과 달랐다. 꿀을 바른듯한 소스와 함께 노란 꽃가루인 듯 금가루인 듯한 것들이 잔뜩 뿌려져 있었다.


마늘족발이였다. 마늘족발은 이 네 글자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다진 마늘은 존재감이 눈에 보일 만큼 알알이 살아서, 윤기 있는 족발 위에 수놓아져 있었다. 가장 가운데 봉긋하게 올라와 있는 제일 먹음직한 마늘족발을 접시에 담았다. 별같이 반짝이는 마늘 조각들을 잔뜩 끌어모아 따뜻한 족발과 함께 앙 입에 넣었다. 마늘은 아싹맵싹하게 씹히지는 않지만, 설탕과 겨자 베이스의 소스가 함께 들어가 상큼달큰했다. 족발의 고기는 어찌나 부드러운지, 구릿빛 껍질 부분은 콜라겐이 살아있는 듯이 탱글하면서도 야들야들했다. 이건 내가 먹어본 족발 중에 단연코 1순위다.   

   

얼마 지나지 않은 토요일 밤 10시, 나는 딜레마에 빠져있었다. “지금 마늘족발이 먹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었다. 11시가 다 돼갈 때까지 초조하게 고민했다. 저녁을 먹은 지 1시간밖에 지나지 않아서 지금 시켜도 많이 먹지도 못할 텐데. 그렇지만 내일은 식사 약속이 없는 일요일이니까 내일도 집에서 남은 족발을 다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루 정도는 밀폐 용기에 담아서 선선한 실내 베란다에 보관하면 맛과 식감이 유지될지도 몰라. 하지만 다 못 먹고 식어서 맛없어진 고기! 그것만큼은 참을 수 없다. 내가 남겨놓음으로써 창조해낸 퍼석해진 고기는 은근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아, 게다가 지금 먹으면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은데. 나는 이미 주문한 후를 걱정하고 있구나. 그럼 일단 주문하자. 나의 마늘 족발은 저녁 11시 30분에 도착했다.     


 두 번째 만남이지만 역시 감탄의 맛이다. 마늘과 족발은 왜 이렇게까지 잘 어울리는 것일까? 어쩌다 마늘족발이 탄생한 것일까? 한국인은 마늘로 왜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마늘을 향신료만 보지 않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 신화 속 곰은 무려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통마늘, 썬 마늘, 다진 마늘 등 마늘은 부피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쓰임새가 멋지다. 마늘의 고유 맛은 앞으로 맛이 아니라 멋이라 부르겠다. 


마늘족발은 족발의 맛과 마늘의 멋이 만난 셈이다. 잔존의 두려움은 냉동실에 남겨둔 채, 둘이 되어 이 상황을 타개해나가야 할지, 존재의 방식을 바꾸어야 할지 고뇌한다. 모든 경우의 수에서 필요한 것은 온기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온기는 마늘족발과 내가 맞닿은 온기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해당 식당은 맛있는 마늘족발 1인분을 판매하는 온정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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