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ODM, OEM , 벤더, 그래서 그게 뭔데?
당신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선뜻 디자이너라고 얘기하는 게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 입사 후 첫해 동안은 일을 하면서도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을 때가 많았는데 수출회사에서 디자인을 한다는 것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었기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메신저로 회사의 일들을 설명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해외 브랜드 하청 업체인 거야? 그래서 넌 거기서 무슨 디자인을 하는데?”
“음, 바이어가 보내준 시트가 정확하게 주얼리로 만들어질 수 있게 하기도 하고, 내가 디자인을 제안하기도 하고…”
“아, 그러니까 어시스턴트 같은 거네?”
“그런가…?”
홍콩에서 열리는 주얼리 전시회의 신청서를 쓰다가 회사 분류 구분에 ODM과 OEM을 선택하는 것이 헷갈려 팀장님께 여쭤봤던 적이 있었다. 나의 첫 회사는 자체적으로 디자인을 준비해 전시회에 나가 바이어에게 직접 판매하는 ODM (Original Design Manufacturing) 제조자 주도 방식의 수출회사이고, 그로 협력관계가 생긴 바이어 브랜드에 한해서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주문자 위탁 생산 방식으로 수출을 한다는 정보를 들었을 때, 나는 조금이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완전 하청업체는 아니구나’
순간 든 생각이다. 친구들에게 듣던 협력업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내심 마음에 걸렸었던 모양이다. 나는 새로운 회사에서 재밌게 일을 하는데 왜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어떤 사소한 사건으로 해결되었는데,
“00아, 네가 디자인한 주얼리 스페인 매거진에 실렸데!”
“네? 정말요..? “
“바이어한테 사진이 왔네~ 한번 볼래?
바이어가 자신이 주문했던 디자인이 꽤 큰 매거진에 실리자 회사에 감사하다는 메일을 보냈고, 그 후에도 비슷한 일들이 종종 있었다. 바이어들은 종종 파트너십에 대한 존중과 감사를 표하는데, 마치 초등학생들의 과학상상화를 SF 판타지물로 완성시킨 느낌이 들어 구름 위에 며칠씩 떠다니곤 했다. 이 느낌은 나의 지극히 주관적 감상이다.
“내가 만든 디자인이 스페인 매거진에 실렸어~”
“들어간 지 얼마 안 됐는데, 신기하다..”
“넌 요즘 어때?”
“본사 매장에서 판매를 하고 있어. 내가 디자이너로 취업한 게 맞는지 모르겠다..”
“우리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힘내자!”
힘내자, 유명 브랜드에 취업한 친구도 고충은 있다. 더 이상 보이는 것에 대해 연연하지 않기를 바라자. 나에게 필요한 것은 타이틀이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