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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 출판사, 나 홀로 대표>

8화. 무엇이든 으랏차차!

by 릴라


지난 주말, 압도 코퍼레이션 갤러리에서 열린 독립출판 문화제 **‘Make Me a Book’**에 다녀왔다.
독립서점 **‘독서관’**이 주관한 전시였고, 독립출판을 꾸준히 해온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며
“우리는 왜 끊임없이 책을 만들까?”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과연, 독립출판이란 무엇일까?”
“왜 우리는 이렇게도 책을 만들고 싶어 할까?”

사실 독립출판은, 모두 알다시피 돈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의 책을 바탕으로 강의나 세미나 같은 2차 활동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책을 만드는 이유는 하나다.
이 이야기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삶 속에 스며 있는 아름다움, 아픔, 슬픔은 결국 나만이 아는 것이고,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이니까.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길, 재미난 기획이 떠올랐다.

<우리 주희의 책을 만들어야겠다.>


우리 집 첫째 아이, 주희는 지금 고3.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중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정말 좋아했다. 종이가 없으면 손이나 발, 심지어 발바닥에도 그림을 그렸다. 자기 방 벽면에 마음껏 그렸고, 우리는 몇 번이고 그 방을 하얗게 다시 칠해주었다. 주희는 그 방을 ‘갤러리’라고 불렀다. 자신만의 전시장이었다. 하지만 ‘미술 입시’는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과는 완전히 달랐다. 첫 해는 많이 힘들어했다.

“왜 이렇게도 알 수 없는 그림을, 공식처럼 그려야 하지?”

정답이 없는 예술에 정답이 있다고 말하는 시스템 앞에서 주희는 자주 벽에 부딪혔다.

그래서 더더욱,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시가 끝나고, 대학 입학까지의 약 한 달. 그 시간 동안 우리는 함께 책을 만들기로 했다. 가볍게, 그러나 진심을 담아서.

중철 제본.
종이는 무조건 주희가 고른 것으로.

내 책을 만들 때 제작비 때문에 꼭 쓰고 싶던 수입지를 포기하고 비슷한 국산 지를 골랐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기로 했다.
주희 책은, 주희가 원하는 종이로. 그림이 예쁘게 인쇄되는 문켄지로 하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입시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원하는 결과가 아니어도 괜찮다.
틀린 것이 아니라, 길이 조금 달라지는 것뿐이니까.

우리는 이 모든 이야기를 책에 담기로 했다.
그리고 완성된 책을 들고, 내년 봄 제주 북페어에 꼭 함께 참가하기로 했다. 지겹게 느껴지는 입시 막바지가 내년 봄을 기다니는 마음으로 조금은 덜 지루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출판사 대표이니, 뭐든 할 수 있다. 그러려고 출판사를 등록한 거니까.

밥을 먹으며 계획을 이야기하던 중, 주희는 말했다.

“엄마, 힘이 막 솟는 것 같아요.”
“이 모든 시간이, 내 이름이 붙은 책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까 지겨운 입시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요.”

일인 출판사, 나 홀로 대표이자 유일한 작가였던 내가 드디어 두 번째 작가 영입에 성공했다.
무엇이든, 으랏차차.
은혜북스 두 번째 작가와 책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번에 합격하자. 으랏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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