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인 출판사, 나 홀로 대표>

9화. 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by 릴라

입고, 입고, 입고.
책을 만든 뒤부터 이 단어가 머릿속을 꽉 채웠다.

어제는 홍대 앞 ‘책익다’라는 술 마시는 책방에 책을 입고했다. 이곳은 저녁에만 문을 여는, 책을 읽으며 술을 마실 수 있는 서점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무렵, 다섯 권의 책과 샘플북 한 권을 들고 서점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내 책이 입고된 서점은 일곱 곳.

나만의 기준으로 하나하나 골랐기 때문에 모두 소중하다.

책 익다는 주희가 다니는 미술학원과 가장 가까운 독립 서점이다. 미술 전공하는 고3 수험생인 주희는 요즘 하루 대부분을 미술학원에서 보낸다. 입시가 다가올수록 더할 것이다. 엄마로서 곁에 있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나는 그 대신 내 책을 그곳에 두고 싶었다.

“여기에 우리 엄마 책이 있지.”
그런 작은 위로 하나가, 긴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되기를 바라며.

입고를 위해 서점을 방문하자 주인분이 와인 한 잔을 내어주셨다.

그 순간, 문득 르네상스 시대의 낭만적인 예술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난한 예술가에게 술 한 잔을 건네던 그런 시대 낭만으로 가득했던 시대말이다.
조용한 서점 한편에서, 나 혼자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으며 마치 세상 곳곳에 흩어진 낭만들을 주워 담기 위해 내가 책을 낸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낭만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처음에는 한 권만 입고해도 신이 나고 날아갈 것 같았는데 문득, 입고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조건 더 많은 곳에 퍼뜨리는 것이 맞는 것인가.
많이 보낼수록 내 책을 소개할 기회도 늘어나겠지만, 그만큼 부담도 크다.
기껏해야 다섯 권을 위탁으로 공급하는데,, 서점마다 샘플북 한 권을 따로 넣어야 한다는 사실이 꽤나 큰 부담이다. 그리고 그 다섯 권이 모두 팔린다는 보장도 없다. 사실, 많은 책들이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물다가 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책을 낸다는 건 단지 출간이라는 이벤트가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과정이라는 걸 실감한다.
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숙제다.

개인 입고는 이제 마지막 한 곳, 영화와 연극 전문 서점 ‘인스크립트’를 남겨두고 있다.
그곳까지 입고를 마치면, 한숨 돌리고 싶다.
그리고 그다음을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어쩌면 이제는, 조금 다른 방식의 유통과 만남을 연구해봐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책익다에서의 조용한 한 잔을 기억하며,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내 책이 닿은 공간들이 누군가에게도 작은 위로와 낭만이길 바란다고.
그리고, 그 낭만이 다시 현실을 살아가게해 줄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일인 출판사, 나 홀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