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스스로 작가가 되었다.
7월 7일, 인쇄소에서 처음 책을 받아 들었다.
이제 3주.
그동안은 초심자의 행운, 이른바 ‘지안찬스’를 아낌없이 끌어다 썼다.
그래서 지난 3주간은 조금은 들뜨고, 어느 정도 무모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이제부터가 진짜다.
마음이 답답해지면서, 정신은 번쩍 들었다.
아직 책은 다섯 상자, 약 270권 정도 남아 있다.
내 목표는 분명하다 — 책을 다 팔고, 중쇄에 들어가는 것.
단 열 권이라도 좋다. ‘2쇄’라고 찍힌 책을 들고 내년 제주 북페어에 서는 것, 그것이 지금 내 마음속 가장 선명한 그림이다.
지난 주말엔 해방촌의 한 독립서점에서'여성 작가의 밤'이라는 작은 모임에 다녀왔다.
거창한 이름이라 손끝이 오그라들었지만, 너무 멋진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방송작가, 공모전 모든 것이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난 혼자 책을 만들어 내고 스스로 작가가 되기로 결정을 했다. 물론, 책 한 권이 나왔다고 내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쇄소, 서점등에서는 나를 은혜작가라고 불러주기 시작했다. 내가 스스로 만든 내 이름이라는 생각에 나는 부끄럽지만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모임은 민제이 작가님의 진행으로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나는 요즘 이런 자리에 부지런히 나간다. 사실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날 만난 여성 창작자들은 저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설계하고 있었다.
사진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사람,
진짜 여성들의 서사를 기록하고 싶다는 사람,
명상을 일상에 녹여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
뜨개질의 새로운 패턴을 디자인하며 일상을 다시 짜는 사람.
글, 이미지, 오브제, 경험.
매체는 다르지만 모두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창작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는 것.
나도 처음으로 ‘이 길을 계속 걸어가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두운 밤 속에서 아주 작지만 분명한 등불을 발견한 기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적어도 한 치 앞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제야 비로소,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다.
영화는, 유명한 사람들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인터뷰나 대담 자리에 앉는 건 늘 감독이나 배우처럼 이름 있는 사람들이지만, 현장을 움직이는 건 그 이면의 사람들이다. 이름 없이 일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끝내 이 일을 놓지 않는 스태프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었다.
출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지금, 그 시작을 조금 더 단단히 밟아보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