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를 자유롭게 달리던 스케이트보드. 누군가의 발 아래에서 속도를 즐기던 그 보드는 시간이 흐르면 흠집나고 부서져, 결국 버려지고 만다. 정준혁 작가는 보드샵 한켠에 쌓여 있는 폐보드들을 마주한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거리 위를 가로지르며 뛰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러운 병으로 인해 몸이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작은 소망 하나, 다시 걷고 다시 움직이는 것이었다. 가장 쉬운 행위가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움직임’에 대한 갈망은 작가에게 소망이 되어 예술로 승화되었다. 이제는 주인에게 버려져 쓸모없는 스케이트보드는 작가에게 희망이 되어 하나의 자유를 부여하는 예술로 확장되었다.
폐보드를 해체하고 재구성해 오브제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작업. 정준혁 작가는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선다. 자신이 품었던 ‘바람(Wish)’을 보드에 투영해서 독특한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이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그의 작업실, 사용하는 도구들, 그리고 작업을 이루는 감정과 기술의 층위들을 함께 들여다본다.
청년작가 정준혁
-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폐스케이트보드로 재활용 하여 조각을 하고 있는 정준혁입니다.
- 작업노트에서 유년기의 경험이 작업에 깊이 영향을 준 것을 알 수 있다. 폐스케이트보드를 재료로 삼게 된 결정적인 순간에 대해 좀 더 들려줄 수 있나?
보드샵에 갔다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보드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사장님께 쌓여있는 보드에 대해 여쭤보니 사람들이 고장나 버리고 간 폐데크(보드 판)라고 했습니다. 보드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폐데크를 보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주인의 발 아래서 멋지게 달리던 보드들이었겠죠? 버려진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멈춰있는 보드들을 보니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문득 아파서 누워있던 제 모습과 같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가감없는 나의 모습인데 작품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작은 소망을 담아 이 보드들을 오브제로 승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폐보드 /사진: 정준혁
- '움직이지 못하는 보드에 숨을 불어넣고 싶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자유’란 어떤 의미인가?
저에게 자유란,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참 소박하죠. 누구에게는 가장 쉬운 일이 저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된 것입니다. 어릴 적 병으로 인해 오랫동안 누워 지내며 가장 간절하게 바랐던 것은 단순히 걷는 일이었습니다. 그 바람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처음 실현되었고, 그 순간부터 자유는 제게 ‘움직임’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멈춰버린 폐보드에 다시 숨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과거의 저처럼, 다시 움직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 지는거죠. 그래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WISH , 2025, skateboard deck, 6.6ⅹ10ⅹ33cm
WISH , 2025, Skateboard deck, 20ⅹ20ⅹ33cm
wish rebirt of motion, 2025, skateboard deck, 6.6ⅹ10ⅹ31cm
wish rebirt of motion, 2025, skateboard deck, 6.6ⅹ10ⅹ31cm
- 폐스케이트보드는 어떤 경로로 수집하나? 재료 선별 기준이나 보드가 지닌 ‘기억’을 어떻게 느끼나?
처음엔 전국에 있는 보드샵을 수소문해서 사장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가져왔습니다. 선별기준은 따로 없습니다. 보드가 지닌 기억은 보드의 바닥면을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보드를 손질을 하기 전 바닥을 쓱 만져보면 셀 수 없는 스크래치가 많이 있습니다. 이 스크래치는 보드로 트릭(가술)을 할 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상처입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영광의 상처죠. 사용하지 않은 보드는 상처가 없습니다. 보드를 타고 질주하고 그 모습을 사람들이 보고 경탄하고, 그러면서 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반복하는 것이죠. 제가 생각했을 땐 스크래치가 많으면 많을수록 이 보드는 현란하고 멋지게 질주를 했구나 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그 생각에서 영감을 받기도 합니다.
작업식 전경 /사진: 정준혁
-보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 가공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재탄생한 보드들은 형태적으로도 매우 다채로운데, 조형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나?
조각을 하기 위해 보드 한 장 한 장을 한 덩어리로 집성합니다. 하기 전에 사포나 페인트, 오염된 것들을 말끔히 제거해줍니다. 한 덩어리를 만들고 하나하나 깎아 조각을 시작합니다. 중요한 점이라고 딱 정해놓지 않습니다. 정해진 틀이 있다기 보단 자유롭게 여기 만졌다 저기 만졌다 작업합니다. 조형 아이디어는 주로 과거의 기억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저의 작품엔 돌탑형상이 많습니다. 유년시절 저의 부모님은 저와 동생을 데리고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항상 집에 오기 전에 소원을 빌며 돌탑을 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WISH〉는 여기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조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그리고 조각의 매력은 무엇인가?
미대를 진학하고 과제를 하는데 나의 아이디어가 입체물로 구연되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하고있는 것 같습니다. 조각은 참 매력이 있습니다. 저의 심상에 있는 따듯한 기억, 때로는 불가능한 바램 같은 것을 나만의 조각 언어로 시각화하여 완성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남들과 나의 작품을 주제로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그 매력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요.
공구 연장 /사진: 정준혁
- 작가의 작업실이 궁금하다. 어떤 분위기 속에서 작업하나?
저는 '잇다스튜디오'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있습니다. 여러 작가들과 한 건물에서 작업을 합니다. 1층은 유리작업, 목공작업을 하고 2층은 평면작업, 3층은 철조나 폴리같은 조형작업으로 나뉘어있어요. 저는 1층에서 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작업을 하고 서로 작업 관련해서 조언을 주고 받으며 지냅니다.
- 폐보드를 다루기 위해 특별히 사용하는 공구나 장비가 있나? 특히 자주 쓰는 도구를 소개해 달라.
목공에 쓰이는 공구들을 사용하는데 주로 많이 쓰는 공구는 샌딩기입니다. 마감을 깔끔히 하는 성격이라 마지막까지 항상 저와 붙어있습니다.
- 몸이 불편했던 시절이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지금의 몸 상태는 어떤지도 궁금하다.
저는 지금도 강직성척추염을 앓고 있습니다. 완치가 없는 불치병입니다. 뛰노는 것을 좋아하던 어린 기억이 있어 이 병은 저에게 암흑같았습니다. 한없이 부정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정상적으로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회복을 위해 노력을 했었죠. 걷고 싶다부터 병상에서 한 긍정적인 소망들, 그때의 작은 소망들이 지금의 작업으로 승화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나아졌고 열심히 치료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작업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저는 어쩔수 없이 버려져 못 달리는 보드들에게도 달리고 싶다는 소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걷고 싶다 라는 바람이 있었고 현재에도 여러 가지 소망이 있죠.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작업을 합니다. 저의 작품을 보는 관객들도 분명 마음 한 켠에 바램과 소망이 있을 겁니다. 저의 오브제가 매개가 되어 작은 소망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공감하며 소통하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언젠가는, 무엇이든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용기를 제 작품으로 선물하고 싶습니다.
-주요 경력-
개인전
2024년 11월 정준혁 개인전 《응어리, 우리의 꿈들》
단체전
2022년
12월 - 양주시 공공미술프로젝트 단체전
2025년
2월 - STO 한국 현대미술전 2025 미술관 프로젝트 (인천 작은미술관)
3월 - STO 한국 현대미술전 2025 미술관 프로젝트 (금보성아트센터)
3월 - 화동 Blossom Art 2025년 라이징스타 8인 전시 (롯데백화점 노원점)
4월 - STO 한국 현대미술전 2025 미술관 프로젝트 (거제 해금강 테마 박물관 & 유경 미술관
5월 - STO 한국 현대미술전 2025 미술관 프로젝트 (여수 미술관 & 미르마루 갤러리)
5월 - 충북 청주 김복진 조각페스타 참여
6월 - 서울 문래 아트필드 아트페어 참여
6월 - STO 한국 현대미술전 2025 미술관 프로젝트(정읍 생활문화센터)
7월 - STO 한국 현대미술전 2025 미술관 프로젝트(속초 피노디아 아트갤러리 마키아올리)
프로젝트
2023
Let's Forest 2023, 서울 Ash to Art 기획전 - 어시스트
2023 월드컵공원 재활용 문화전 산불피해목 재해석, 작품 상설전시 (애쉬베어, 숲의 정령) - 어시스트
2025년
4월 - 인천문화예술회관 전시실 재개관 기념전 – 어시스트
수상
2025 STO 현대미술 작가상
[망치든 조각가 ⑥]보드를 타고 하늘로 점프하고 싶다- 정준혁 < 청년예술인 < 영아트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