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찾아보고 들여다보는 다음 해 전망 보고서가 있는데 올해는 제가 좀 늦었습니다. 보통 10월 중순이면 보고서들이 심포지엄이나 책을 통해 대중에 소개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온갖 경제연구소들에서 내년도 경제전망을 쏟아냅니다. 대표적으로 KDI 한국개발연구원은 내년도에는 내수부진은 완화되나 수출증가세 둔화로 대한민국 경제성장률이 2% 정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경제연구소에서 내놓은 전망보고서보다는 다른 관점의 전망 보고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가트너(Gartner)사에서 매년 개최하는 심포지엄에서 발표하는 '다음 해에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10대 전략 기술 트렌드' 자료이고, 또 하나는 국내에서 서울대 김난도 교수 및 여러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여 매년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여 발행하는 '트렌드 코리아'라는 책입니다.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1년을 연구하고 자료를 종합 분석하여 내놓는 결과물들이니, 비전문가인 범인들은 소중한 자료를 잘 해석하고 내년에는 이렇게들 움직이겠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듯싶습니다. 그런데 키워드들이 무척 낯설고 어렵습니다. 그래도 한번 들여다면, 이렇게 세상을 보고, 이렇게 세상이 변해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니마 눈치챌 수 있습니다.
먼저 가트너에서 내놓은 2025년 전략기술 트렌드 10가지 키워드를 보겠습니다. 미국 회사이니 용어가 생소하거나 어렵더라도 일단 대충 넘어가 보겠습니다. 1. 에이전틱 AI(Agentic AI) 2.AI 거버넌스 플랫폼(AI Governance platforms) 3. 허위 정보 보안(Disinformation Security) 4. 양자내성암호(Postquantum Crytography) 5. 앰비언트 인비저블 인텔리전스(Ambient Invisible Intelligence) 6. 에너지 효율적 컴퓨팅(Energy-Efficient Computing) 7. 하이브리드 컴퓨팅(Hybrid Computing) 8.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 9. 다기능 로봇(Polyfunctional Robots) 10. 신경학적 향상(Neurological Enhancement)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인이 알아야 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듯합니다. 하지만 범인들은 분위기만 알면 됩니다. AI 기술이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기업들의 필수 비즈니스 영역으로 들어가 있고 이를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이 맹렬히 작동하고 있음을 간파하면 됩니다. 키워드 10개 놓고 봐도 웬만한 IT전문 기업에서도 관심 갖고 덤벼들기 어려운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어 있음을 눈치챕니다. 일반인은 10개의 키워드 중에 하나만 잡을 수 있으면 됩니다. 저는 1번에 있는 에이전틱 AI에 주목할 것 같습니다. OpenAI를 써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미 AI가 개인비서 역할을 하는 단계를 넘어서 있습니다. 정보를 취합해 자료를 만들고 고난도 전문지식의 종합이 필요한 작업은 탁월하게 수행해 냅니다. 전문가에 버금가는 능력지원으로 업무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영역에서도 AI의 에이전트화는 이미 시작되어 있습니다.
AI 및 기술 관련 분야는 항상 그렇듯이 최고만이 살아남습니다. 최고로 덩치 크고 돈 많은 놈이 살아남는 구조이기에 그렇습니다. 최고가 되면 블랙홀처럼 주변을 빨아들입니다. 엔디비아가 그렇고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렇습니다.
트렌드 코리아 2025를 살펴볼까요. 트렌드 코리아에서 제시하는 키워드는 'SNAKE SENSE'입니다. 내년이 뱀의 해이기에 키워드의 머릿자를 땄습니다. 용의 해인 올해의 키워드가 'DRAGON EYES'였던 것과 같습니다.
1, Savoring a Bit of Everything : Omnivores(옴니보어, 잡식성 소비) 2. Nothing Out of the Ordinary : Very Ordinary Day(아주 보통의 하루) 3. All about the Toppings(토핑경제) 4. Keeping it Human : Face Tech(페이스 테크) 5. Embracing Hamlessness(무해력) 6. Shifting Gradation of Korean Culture(그러데이션 K) 7. Experiencing the Physical : The Appeal of Materiality(물성매력) 8. Need for Climate Sensitivity(기후감수성) 9. Strategy of Coevolution(공진화 전략) 10. Everyone has Their Own Strengths : One-Point-Up(원포인트업)
트렌드 코리아의 내년 소비전망 키워드는 그나마 이해가 되는 수준이지요? 영어로 엮어내느라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키워드들은 한해만 반짝 사용되고 사라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억지로 만들어져서 사회에 통용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회용 키워드로 만들어져서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으면 다행이겠으나 그렇지도 못하다는 게 한계입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범인을 당혹게 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키워드를 만들어내는 고충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나, 결과물의 결론을 내놓고 짜 맞추기로 하다 보니 말을 만들어내는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영어로 키워드를 쓰면 뭐 좀 있어 보일까요? 키워드를 추출하는데 한 단어로 끌어올 수 없는 한계가 분명 있고 한글이 가진 소리글의 특성상, 뜻을 담고 있는 한 단어로의 압축이 어렵다는 난제가 있기에 그나마 해결책이 영어적 표현을 전용하는 방법을 쓰고 있음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용어의 창작에 얽매인 창의력의 비극이 되어 일반인의 가슴과 머리에는 거의 와닿지 않는 외계어가 되어버리고 마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가트너와 같은 컨설팅회사의 경우야 미국회사니 그렇다고 쳐도 국내 소비 동향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자료에 굳이 영어 키워드를 만들어 내놓는다는 것은 매년 보고 느끼는 거지만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비전문가의 넋두리였습니다.
출처 : 데일리아트 Daily Art(https://www.d-a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