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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Dec 26. 2024

[저항하는 예술 ⑪]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우리들의 새벽을 노래한 이름 없는 시인 박노해 

박노해, 『노동의 새벽』초판본의 표지


노동의 새벽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 또 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줏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27살 청년이 쓴 시집 한 권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이 시집은 금서로 지정되었음에도 100만 부 가까이 팔리며, 새벽을 갈망하는 사람을 거리로 끌어냈다. 패기 넘치는 청년 한 사람의 꿈이 대한민국의 새벽을 깨운 것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새벽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박노해 시인을 소개한다.

박노해 사진전, '아이들은 놀라워라' 작품 中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난 박기평은 16살에 상경하여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 노동 현장에서 그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 두 달째 임금이 막히고 /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 번 짓지 않은 우리를 / 감옥소에 집어넣는다는 경찰관님은 /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하늘」 中)


“올 어린이날만은 /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 어린이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 손목이 날아갔다 / 작업복을 입었다고 /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 주지 않아 / 한참 피를 흘린 후에 /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손 무덤」 中)


손목이 날아가 피를 흘려도, 차가 더러워질까 걱정하는 상사들 때문들에 짐칸에 실려 병원으로 향해야 했던 노동자.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사장을 ‘하늘’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현실. 임금을 받지 못해 노조를 만들어 투쟁하자 감옥에 끌려가는 부조리함. 이런 노동 현장의 참혹함은 젊은 시인의 가슴을 불타게 했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노동 현장을 시로 담았다. 쓰러져간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고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참을 수 없는 분노로, 한 편 한 편을 써 내려갔다. ‘박노해’라는 필명도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뜻한다.


『노동의 새벽』이 출간되자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던, 피로 쓰인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그 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집은 노동자와 청년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박노해의 시를 읽은 대학생들이 먼저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이들을 본 사람들이 함께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들은 박노해의 시에서 목격한 참혹한 노동 현장을 고발하며 노동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그렇게 『노동의 새벽』은 시집을 넘어, 저항과 연대의 상징이 되었다.

거리로 뛰쳐나온 학생들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서 / 생각도 못 하고 사는 놈은 죽은 송장이여 / 말도 못 하는 놈은 썩은 괴기여 / 테리비만 좋아라 믿는 놈은 얼빠진 놈 / 이빨만 까는 놈은 좆도 헛물 / 실천하는 사람, / 동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노동자만이 / 진실로 인간이제 / 진짜 노동자이제” (「진짜 노동자」 中)


 책이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자, 전두환 정부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박노해 시인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다. 그런데도 이 시집은 입에서 입으로, 선배에서 후배에게로 전해지며 10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갔다. 이는 ‘새벽’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박노해, '노래하는 다리'


박노해는 정부의 수배령 속에서도 계속 ‘이름 없는 시인’으로 활동하며 1989년 비공개 지하 조직인 ‘서울노동운동연합’과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해 투쟁을 이어갔다. 이때까지도 사람들은 박노해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의 정체를 둘러싼 소문만 무성했다. “노동자가 이런 수준 높은 시를 쓸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있었고, 박노해는 그저 노동자들이 쓴 시를 묶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노동 운동가 박기평이 박노해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흥미롭게도 『잎 속의 검은 입』으로 알려진 기형도 시인은 중앙일보 기자 시절 “노동자 시인 박노해는 누구인가”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이 ‘이름 없는 시인’에 대한 관심은 결국 『노동의 새벽』에서 발화된 목소리가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임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7년 간의 수배 생활 끝에 박노해는 붙잡히고 사형을 구형받는다. 최후 진술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사형 현장에서 사라지더라도 더 많은 박노해가 나타나 노동자 민중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건설해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박노해는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믿었는지 환하게 웃으며 법정을 나왔다.

사형을 구형받고도 환하게 웃는 박노해 시인.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 서로를 받쳐 주는 /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 그런 세상이고 싶다” (「하늘」 中)


그는 시에서 하늘이 되길 원한다고 썼다. 계급을 무기 삼아 이웃을 짓누르는 하늘이 아닌, 서로서로 받쳐주는 ‘모두의 하늘’이 되길 원했다. 그래서 자신이 본 참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세상과 싸우는 ‘진짜’ 노동자로 살아갔다.


박노해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7년 6개월 간의 독방 생활 끝에 김대중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제 그는 사진가이자 평화 활동가로 지구 곳곳을 다니며, 아직 한밤중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새벽을 찾아주려 하고 있다. 과거에는 시를 통해 이웃의 목소리를 담았다면, 이제는 카메라로 아픈 이웃의 모습을 기록한다. 그리고 2000년에는 ‘나눔문화’를 설립하여 반전 평화운동을 전개했으며, 2010년에는 중동 평화 활동을 모은 《라 광야》, 아프리카 사진을 모은 《나 거기에 그들처럼》이라는 사진전을 열었다. 최근에는 서촌의 ‘라 카페 갤러리’에서 《올리브나무 아래》라는 전시도 했다.

박노해 사진전 "올리브 나무 아래" 포스터


박노해의 예술은 현실을 담아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예술은 아픈 이웃들과 연대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예술이다. 그리고 그의 예술에는 언제나 응답하는 청년들이, 함께 연대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노동의 새벽』이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흘렀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거리로 나와 새벽을 목놓아 외치고 있다. 박노해의 예술은 오늘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박노해, "올리브 나무 아래"


양을 치던 아이들이 올리브나무 아래 책을 읽는다.


첫 나들이 하던 날도, 첫 등교 날도, 첫사랑을 고백한 날도,


피난 가는 친구에게 우리 꼭 살아서 다시 만나자 언약한 날도,


전사한 형을 떠나보낸 날도, 이 나무 아래 울고 웃고 기도했다.


아이들의 엄마와 아빠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그러했다.


이 땅에서는 올리브나무 아래 모든 일이 시작된다.


삶의 중요한 사건이 탄생하고, 고귀한 무언가가 맺어지고,


내가 성장해온 기억의 층들과 내면의 나이테가 새겨진다.


내 인생의 목적지를 비춰주는 한 점 빛의 자리.


한 그루의 나무는, 하나의 유일무이한 장소이다.


박노해, 「올리브나무 아래」 


[저항하는 예술 ⑪]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 박노해 < 문화일반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출처 : 데일리아트 Daily Art(https://www.d-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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