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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Jul 30. 2023

10.1 2인 3각

기거나 기대거나


1 경기청 사무실

(구영석, 화면 정지 시키고)


영석 (열받음)뭡니까, 이거? 류시환 형사 맞죠?

시환 (기가막힘) .. 예, 맞습니다.. 뉴스가 어떻게 나간거에요? 수사 다 끝났네, 벌써? 제가 여기 왔을때는, 아니, 아까 아침까지만 해도, 오 경사님이 모텔 CCTV를 확인하러 갔었는데, 청평서에서 나온 사람들이 벌써 가져가고 없다고 했었어요. 사고 당시 영상 같은 건 구경도 못했고. 그리고 저 차.. 저건 왜 저기 있어요? 어디에요, 저기?

영석 내가 할 소리야. 저 차! 국과수에 보냈다며? 오경사인가 뭐시긴가, 그 자식이 사유지에 숨겨놨다가 국과수로 보냈다면서요!

시환 오경사님 정말 연락 안됩니까? 전화기가 꺼져있어요.

영석 연락은 커녕, 조금 전에 사직서 보내고 사라졌대요 (지율 시환 예?) 내가 미친다, 아주.. 황지석이는 애당초 없는 인물이고, 오경사는 사라지고.. 저거, 저 뉴스.. 저 제보 영상 찍은 거 누굽니까? 황지석이에요, 오경사에요?  

시환 도대체 뭐가 뭔지..

영석분명히 그날 밤에, 누군가 사건 현장에 같이 있어요. 영상 중간중간 지가 말하는 건 쏙 자르고, 한성훈이 목소리만 남겨서 제보를 했는데...

지율 한성훈이요... 여기 기자라구요? 많이 알려진 사람인가요?

영석 젊은 친구인데 유명하죠. 똑똑하고, 능력있고, 집안 좋으니 돈도 많고.   

지율 원한 관계는요?

영석 많겠죠? 질투, 음해, 모략.. 아니면 지가 돈질하고 다녔을수도 있고.

시환 이건.. 너무 빨라요. 경찰 아니라 누구라도, 차 발견하고 몇시간만에 이렇게 일사천리로 다 알아낼 수는 없어요. 저 영상 제보한 사람.. 분명히, 처음부터 범인이 구인지 알고 있었어요. 대리기사로 바꿔치기 한 것도 알고 있었고, 고의적 살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술 취한거, 음주운전, 여자랑 모텔 간거, 그리고 다시 나온거... 분명히 가까이에서 지켜본거에요. 미행을 했던지, 도와주는 척, 지인인 척.. 뭔가 치밀하게 작전을 짜고 접근했어요.

지율 뜻하지않게 우리가 나타나면서, 계획이 좀 바뀌긴 했겠지만, 어쩌면 더 쉬워졌겠죠. 청평 경찰서나 경찰 간부의 개입은 아마.. 관심을 끌려고 거짓말을 한 걸 거고, 자기들이 덮어써서 억울한 척, 도움이 필요한 것 처럼 속였겠죠.

영석 누가? 오경사가? 왜? 한성훈이한테 원한진게 있나?

지율 찾아봐야죠. 한성훈인지, 푸른 건설인지.  

시환 이유가 뭐든.. 우연이든, 고의든, 교통사고가 났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피해자를 수차례 더 들이받아 사망에 이르렀다, 그리고 음주를 숨기려고 운전자를 바꿔치기하고, 피해자 시신을 갓길로 들어옮겨서 단순 교통사고로 위장했다, 차량은 화재인 척, 소화기로 흔적을 지우고.. 거기까지는, 분명한 사실이네요.

영석 소화기도 한성훈인지 아직 몰라. 저 영상에는 소화기는 안보여.

지율 한성훈이가 범인인걸 알고, 더 덮어 씌우려고 소화기를 썼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기자고 유명한 집안이면, 음주 운전에 사망 사건만으로도 큰 데, 일을 더 키우는 느낌이에요. 한방에 보내자, 그건가? 집안..까지?

영석 감정이 많이 안 좋았나보네. 뭐, 그 회사에서 일하다 부당 해고 당한 직원, 뭐 이런건가? 회사 쫄딱 망하게 하려고?

시환 아무리 악감정이 있어도 그렇지.. 정말로요. 딱 음주 사고가 날 때 맞춰서, 저 자리에 같이 있기 정말 힘들잖아요. 평소에 얼마나 따라다녔길래 저 엄청난 현장을 잡았을까요?

지율 대리운전하는 사람.. 친하다고 했죠? 오래된 사이이고, 자주 운전 해 준다고 들었어요. 사고 후유증인 척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도 그 사람이고... 가능하지않나? 친구인척 맴돌면서.. 아니면, 교통사고 신고도 안했는데 나타난 견인차도 수상하고요.

영석 아, 형사님.. 그 동인 레카도 말입니다, 거기도 유령회사에요. 사업자 등록이 말소된지는 오래고, 주소도 아예 없어.

시환 영업을 안 한다는 말씀이세요?

영석 수몰됐거든요, 동네가 다. 한참 전에 저수지 겸, 발전소 겸... 호수를 하나 개발하면서, 주위에 있던 작은 동네들을 싹 없에버렸어요. 동인 레카가 그때 그 산속에 있던 어떤 집 주소로 되어있던데...  

지율 잠깐만요.. 호수 개발이면, 혹시 아까 방송에서 얘기하던 그 호수요?

영석 아, 맞네.. 한 15-6년 전에, 산 꼭대기에 크게 인공호수를 하나 만들면서, 사람들 둘로 나뉘어져가지고 찬성하고, 반대하고, 매일 이쪽저쪽 데모하고 난리도 아니었거든요. 그게 알력이 심해가지고, 호수 이름도 이랬다저랬다 몇 번 바뀌고.. 어디보자, 호명호수 개발이... 여기있네, 2005년. 그때 그러면, 한성훈이네 할아버지가 군수였을 때 맞아요. 그거랑 관련이 있나..? 그때 쫒겨나가지고? (갸우뚱) 그건 좀 너무 억지 같은데..?  

시환 혹시 황지석은요? 아니, 황지석인 척 했던 사람.. 마지막 주소가 이 부근이죠?

영석 이 사람은 바로 군복무중이라고 나와서, 열 받아 가지고 더 이상 보지도 않았는데... (검색) 어디보자 주소가... 맞아, 맞아.. 같은 동네 (보여주면) 이 사람은 소향길 5, 아까 그 레카차는 소향길 8. 둘이 가까웠겠네. 앞집 옆집 뭐 그런거.  

지율 오 경사는요? 거기도 같은 동네에요?

영석 (검색)... 이 사람은 ... 아닌데요? 다르긴한데, 여기는... 에이, 이것도 가짜야. 장난하나, 집이 귀목봉이랍니다. 저기 산봉우리.

시환 귀목봉...? 주소가 귀목봉이에요?

영석 ‘귀목봉’이라고 딱 써놓은 건 아니고, 보세요. 사룡리 1637. 사룡리면, 내가 여기 잘 알아. 관광지라서 가끔 술먹고 뛰어내리거나 실족하거나, 그런 사람들이 꽤 많거든. 이 사룡리가, 귀목봉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째끄만 마을인데, 지금은 다 폐허고 아무도 안 살아요. 예전에 몇명 부락처럼 모여살긴 했어도, 아무리 그래도 이 동네가 번지수가 1600까지 올라갈 이유가 없어. 꼴랑 집 몇채 있을까 말까 한 걸... 사룡리에서 1637이라니, 웃기고 있다.. 10도 안 될거다.   

시환 1637... 이면..


/INS/ 붉은 신당 (회상) 벽의 족자 클로즈업

오경사 (목소리) 선조 대왕의 손자십니다. 낭선군 이우 대감이요... 1637년에 조선 왕가에서 태어나신, 귀한 분입니다...


시환 (한숨) 선배님, 오경사가 얘기하던.. 조선의 왕...그 손자라는 사람이요. 1637이면 그 사람 출생 연도에요. 그러면 사룡리가... 그때 그 신당 있던 거기..일까요?

지율 귀목봉 아래 산 속 이라고 하셨죠? 전화 안 터지고.. 길도 없고, 아주 외진 곳.

영석 알아요? (절레절레) 두분은 이쪽 안건드리는 게 좋아요. 산이 험해서, 사이비 천지에요. 그것도 완전 또라이들만 드글드글하고.. (지율, 시환 사이비요?) 서로 지들이 누구 환생이라고, 얘는 전생에 왕, 쟤는 전생에 이순신.. 걔는 또 뭐..

시환 선조 대왕의 손자 (보면) 낭선군 이우..

영석 어? 진짜 아시네? 거기 유명했어요. 아, 옛날에는 신도 엄청 많았는데... 낭선군 전생의 부인이라고, 자기가 병자호란에 죽었다 환생을 했대. 근데, 자기가 그때 죽어서 가평을 지키고, 남편을 환생시킨거야. 그런데 사실 낭선군은, 병자호란 끝에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이 여자가 주장하는 건, 병자호란 때문에, 살아서는 부부의 연을 맺지 못했다, 그렇게 떠돌다가 마눌이 먼저 환생을 하시고, 30년을 아침저녁 열심히 지극정성으로 깨워드려서, 결국 그분이 환생을 하셨다..

지율 아침 저녁 하루 두 번 하시죠.. 문안 인사.

영석 ... 진짜 아시네..? 혹시.. (주저) 거기 믿어요? ... 홍접군부인..?

시환 홍접군 부인이요?

영석 홍접 군부인이라고... 군부인이 왕가 자손의 부인이에요. 누구누구 ‘군’의 부인이다, 군부인 마님, 뭐 그렇게 하는데, 보통 부인 되시는 분의 고향 이름을 넣어서 불러요. 한성 군부인, 성산 군부인.. 근데 그 사이비 여자는, 자기가 환생한 붉은 나비라고 '홍접' 군부인...이라고 지가 붙였지, 누가 붙여준 건 아니고. 자기가 낭선군의 원조 부인이라니까? 생과 사를 같이 하고, 환생도 같이 하고 .. 나비가 원래 한국에서는 환생, 부부, 이런 상징이에요.


/플래시/ 화려한 나비 장식, 붉은 한복.. 퉁,퉁,퉁.. 문안 두드리는 소리..


지율 다시 가봐야겠어요. 시환씨, 그 동네 가는 길 기억나요?

시환 글쎄요, 워낙 밤이었는데다가, 오경사님 차로 갔던 길이라..

영석 거길 갔었다구요? 둘이?

시환  사고 차량을 본 게 거기인것 같아요. 영상에 나오는 제 목소리가, 다 거기서 녹음됐을거구요. 오경사가, 거기가 자기 어머니 집이라고 했어요. 낭선군을 모신다는 신당에도 들어갔었고.. 근데 저 뉴스.. 제보 영상에 나오는 데는 모르는 곳이에요. 아마 제가 말하는 거 다 녹음해 놓고, 저희가 서울로 출발하니까 차를 한성훈 가족의 사유지로 옮기고, 마치 제가 현장 검증이라도 왔던 것처럼, 제보한 것 같아요

지율 (영석에게) 저 기자 연락해서, 어떻게 제보 받았는지, 제보자 한번 찾아봐주실래요? 핸드폰이나 컴퓨터면 IP 추적해보고, 오경사인게 거의 확실하지만, 어디서 찾아야 할 지... 일단 마을로 다시 가보겠습니다.  

영석 거기를 가서 뭐하시게? 찾아도 아무것도 안 달라져요. 저 사람들은 살인자가 아니라, 제보자에요. 아무 책임 못 물어요.

시환 물어는 봐야죠. 자기들이 영상을 찍었다면, 왜 그랬는지.. 왜 신고도 안하고, 영상을 만들어서 방송에 먼저 알렸는지요. 그리고, 한성훈 일가와의 감정 때문에 미키씨를 희생 시킨거라면, 살인 방조? 아니면 (한숨) 교사 까지는 힘들거고.. 최소한 오경사는 경찰 신분이니까, 증거 조작, 현장 훼손.. 그 정도라도요.. 그리고 만약에.. 혹시라도 영상 찍을 당시에, 미키씨가 살아있었다면..

영석 에유, 영상가지고는 그런거 증명 하지도 못하고, 그리고 거기가 아무나 못들어가요. 들어가도 지 발로 못 나오던가...

(시환 지율 얼음)


/INS/

오경사 (목소리) 여기는 아무나 못 들어와요.. 지도에 표시  수 있는 이 아니라서요, 여기다 숨겨 놓아야 아무도 못 찾을 것 같아서요..

 

시환 오경사도, 그렇게 얘기했어요.

영석 그 일대가, 다 무슨 자연 치료하네 어쩌네.. 요즘 세상에 기지국도 못들어가고, 전기도 못 놓게 해요. 땅 파먹고 암 고치고, 죄다 그런 사람들이야.  

시환 주소가 뭐였죠? 다시 좀 보여주세요 (구 형사 노트북 화면 돌리고) 여기에요? (사진 찍고) 황지석 것도.. (옆에 열린 창 황지석 서류.. 클릭하고.. 사진 찍으려다 멈칫?!)... 선배, 잠깐..! 여기 이 사람...??

영석 왜? 아는 사람이야?

시환 (화면속 스캔된 서류, 경찰복 입은 증명 사진 확대하면..) 맞죠? 거기 있던 족자..

지율 (가까이 와서 보고 멍..)


/플래쉬/ 붉은 신당

아침상에 둘러 앉고, 벽에 걸린 족자, 짙은 눈썹, 커다란 눈, 흐릿한 미소

시환 저 사람은요? 실존 인물?

오경사 예, 조선 시대 선조 임금의 손자에요, 낭선군 이우..


CUT TO

지율 그럼 여지껏... 황지석이 낭선군..?

영석 예?

시환 그러니까, 군대 가 있는 진짜 황지석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도용한 이 남자가, 이우의 환생.. 이에요. 선조 대왕의 손자... 그 여자 무속인이 이우의 부인 - 홍접군부인이고, (갸우뚱) 오경사가 아들..이랬는데..? 잠깐.. 그 견인차가.. '동인'이랬죠? 동인 레카.. ‘동인’이면, 선조 임금때의 그 동인, 서인 파벌 중 하나잖아요? 동인은, 퇴계 이황 선생 쪽 이고, 낭선군은 글을 좋아했으니까, 그 쪽 영향을 많이 받았을거에요. 전쟁 후에 병자호란으로 이득을 본 건 서인들이었고, 본인들은 병자호란때 억울하게 죽었다 환생했으니까, 당연히 서인보다는 동인..편 이겠죠...?

영준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레카차도 다 한패다? 같은 사이비?

지율 수입원이었겠죠. 사이비래도 누군가는 돈을 벌어와야 하잖아요. 그 돈줄이, 아마 오경사의 경찰 월급하고, 누군가가 운영했을 동인 레카였을 거에요.


/INS/ 한복 입은 사람들 데모, 경찰차 오면, 마을 입구 진입로를 막아선 레카차 – <동인 레카>


시환 호수 개발로 마을이 없어지고, 다수의 신도들이 떠나고... 더 깊은 산속으로 쫒겨들어갔는데, 이번에는 바로 뒤 귀목봉에 카지노 건설 부지가 들어서요. 또 쫒겨나가야 되잖아요. 그게 싫었겠죠? 그러면 사고 현장에도, 레카차 운전자가 따로 있었던게 아니라, 어쩌면 황순경이나 오경사.. 아니면 정말 그 대리기사 일 가능성도 있어요. 오랜기간 한성훈 주위에 어슬렁거렸으니까..


/INS/ 사고 현장, 어둠 속에 레카차 운전자 등장, 차 견인차에 연결하고 돌아서지만, 역광으로 얼굴 안 보이고


영준 그래서 119에 신고도 안했는데 레카차가 혼자 도착했고, 사고 차량을 자기네 사유지로 끌고 가서 숨겼다... 운행은 안 했어도, 차만 남아있다면 가능하겠네.    

지율 (골치아픔, 기억 더듬고) 하아...


/플래쉬백/ 오경사 목소리, 울림통처럼 크다작다 환청 들리듯

변사체가 나오면... 백프로 종교..니까요... 내부였느냐, 아니면 ... 타종교와의 갈등... 서로 사이비다... 조상신께 재나 올리는... 토종 무속인들은 핍박... 쫒겨난 사람들도 많아요 ... 부동산... 산업시설 ... 카지노... 사실은 종교간의 땅 전쟁...숙종께서 시작... 왕들이.... 재를 올리죠. 낭선군...도 ... 재에 참석하시고.... 어머니는, 낭선군의... 이 곳..을... 떠나실 수가 없으십니...


영준 형사님, 괜찮아요?

지율 (정신 차리고) .. 오경사에요. 처음부터..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고, 우리는..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어요.. 생각나요? 그 명품 구두 얘기 할 때..


/INS/

오경사 /목소리/ 에이, 돈 많은 양반이 그런 거 중고로 얼마나 받겠다고..


지율 이미 한성훈이 범인인 걸 알고 있었어요.. 아아, 그런데.. 오 경사를.. 잡아넣을 방법이 없어.. 미키씨가 살아있었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살인 교사나 방조도 증명할 수가 없고.. 영상 속에서도 한성훈은 미키씨가 이미 죽었다고 했어요. 어느 시점부터 오 경사가 목격자였는지 분명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걸 밝힌다고 해도, 살인에 직접 가담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제보를 했어요. 기껏해야 공문서 위조, 증거 조작.. (생각난 듯) 머리카락....! 미키씨 머리카락이요. 그것도 오경사가 조작했을거에요. 그래서 그날 밤에 자꾸, 모닥불을 피우자고..


/INS/ 시환 일하고, 오경사 차 앞쪽에 왔다갔다

오경사 (목소리) 어두우시면 모닥불이라도 피울까요? 일하시기 힘들죠?


지율 아마 미키씨 확인한다고 같이 영안실에 들어갔을 때, 시신에서 머리카락을 뽑았을거에요.


/INS/ 오경사 손. 시신 머리카락 툭


지율 그리고 그걸 차에 심어놓고, 우리가 발견하길 바랬던거죠.


/INS/ 오경사 손, 차량 앞 소화기 분사물에 머리카락 쑤욱 밀어넣고

 

지율 시환씨가 하나하나 위증의 증거들을 찾아낼때마다, 이미 답을 다 아는 사람처럼, 흐뭇하게 즐기고 있었어요... 아주 대견해 하면서...


/플래쉬/ 회상 밤, 신당 앞 마당

오경사 대단하십니다, 벌써 그걸 다...

오늘이 많이 기대됩니다. 또 어떤 멋진 모습을 보여주실지

차량만 딱 보고 어떻게, 정말 현장에 같이 있던 사람처럼 그렇게 잘 아십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지율 오경사는, 이미 우리에 대해서 그 무당에게 다 이야기를 했고, 아니면 무당도 그 날,  어디선가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다 지켜봤을거에요. 그래서 새벽에 마주쳤을 때, 저를 알고 있었어요. 저한테 그랬어요, 책임지지 못할 건,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내가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건, 내 탓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 탓이다.. 우연은 없고, 누군가의 계획이거나 신의 계획이다... 제가 신을 믿지 않아서, 그의 계획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늘 굶주려서 찾으러 다닐거다...     

시환 그 신의 계획이, 자기 계획이었네요. 우리는 그걸 찾지 못할거고..?

지율 지금 보면 그 말인것 같아요. 너는 살아는 있는데, 살아지지 않는다.. 아마, 내 마음대로,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런 뜻 아닐까요? 이미 자기가 다 손에 쥐고 컨트롤 하고 있다는?  

영준 아, 어렵다.. 사이비는 알수록 신비해요, 그죠? 거기까지만 하고, 그렇게 자꾸 생각하다가 빠지는 거야. 그러니까, 그만들 하시고.. 알겠습니다, 저는... 두 분이, 사라진 오 경사와 있지도 있지도 않은 황 순경에 속아서 놀아났다, 뭐 그정도로 보고서 올리고.. 됐죠?

시환 잠깐만요. 그 사람들이 사건의 배후가 될 수도 있지 않나요? 직접 시킨 건 아니지만, 사람이 죽어가 걸 보고도 른 척 하고 증거 영상에만 몰두했다는 건, 간접적이지만 뒤에서 조종을 했다고 볼 수도..

영준 형사님, 지금 말씀하시는 그 사람들, 존재 자체가 없잖아요. 존재가 없는데 누가 누굴 어떻게 조종합니까? 그냥 누가, 꼬투리 잡을라고 한성훈이를 따라다니다가, 음주운전을 목격했고, 밤길 지나는 여자한테 껄떡거려! 조금 더 보고 있자니 차로 밀어! 야, 너 딱 걸렸다, 막 헤롱해롱하는 한성훈이가 그걸 덮으려고 했는데, 그나마 그 사람이, 착한 양의 탈을 쓰고, 다 찍어서 제보 영상을 넘겼어요. 거기다가 서울에서 오신 현직 경찰관님이 뼈에 콕콕 박히는 사고차량 감식까지 일사천리로 다 해줬고. 한성훈이 잡아넣는 완벽한 증거야. 이미 온 천하에 공개됐다고. 그러면 그걸로 사건 끝!

영준 (시환 한마디 하려는데 막고) 서울에서 오신 두 형사님은, 같은 편인 척 아쉬운 소리하는 사이비한테 당하신거에요. 지금 정신없죠? 원래 사기 당하면 그래요. 다 물어봐요, 보이스 피싱, 곗돈.. 본인이 요만큼만 뭐 이렇게 저렇게 하면 잡을 수 있을거 같지? 아니야. 못 잡아. 이미 끝났다고. 사기도 못 잡는데 사이비를 무슨 수로 잡나? (시환 멍) 가요. 그만 정신차리시고... 나는 이거 마무리 하고 영장 치면, 그때 중간 보고 한번은 드릴께 (지율 시환 마지못해 일어서고) 조 팀장님한테는 내가 전화 한번 할게요. 궁금하셔가지고 아까 전화를 몇번이나 하시더라고. 두 막내 형사님들 아직 숨 잘 쉬고 있나..

시환 조 팀장님이요? 이석호 팀장님이 아니고?

영준 이석호 팀장 같은 사람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조 팀장님이 좀 도우라 그래가지고, 아까 전화 통화 한번 한 게 다인데. 그런 사람들하고는 안 친해. 목소리가 벌써 급이 다르더라고. 무슨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화 한 줄 알았어... 나 바뻐서 배웅 못 갑니다. 알아서 길 찾아 가세요 (서류 들고 돌아서고).   

시환 (뒷모습 보고) 역시 느글느글한게 조 팀장님 라인이었어.. 난 또 우리 팀장님 지인인줄 알고.. 아, 별거 아닌데 왜 이런거까지 괘씸하지? 사기 여러번 당하는 기분이야..

영준 (다시 돌아와서 툭) 아, 그리고 내가.. 형사님들보다 이 바닥에 오래 있었던 사람이라 하는 말인데, 류 형사님 그 증거들 맘대로 채취하면서 목소리 녹음해서 뉴스에 몽창 나온 거. 그거, 생각보다 문제 커요. 올라가서 한바탕 난리 날 거 각오해야 할 거야. 어디 남의 구역에 와서 사건이네, 사고네.. 그러면 안돼지. 그것도 아직 종결도 안 된 사건을.. 거기다가 증거물까지 빼돌려서 일로 갔다 절로 갔다, 경찰이 사이비한테 놀아나기나 하고.. 그러다 큰일난다, 이 사람들아. 조심해.    

시환 (고개 푹, 자리에 맥없이 앉고) 하아.. 미친거야..

영준 홀렸지.. 홀리니까 사이비지. 그래도, 일 열심히 하다 그런거니까, 아니, 누군 알았나, 자기가 녹음 되고 있는거? 뒤통수 친다 그러고 치는 놈은 없어. 안그래? 힘 내요, 내가 조팀장님한테는 잘 말해 놓을께 (시환 어깨 툭툭치고) 근데, 제법이야? 우리도 과수대 불러서 해보겠지만, 어유, 잘하더라, 응? 그 밤중에.. 쌩 고생을.. (나가고 시환 한숨)


2 경찰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로비, 카메라, 핸드폰


찬호 (사람들 일일이 응대) 지금 자리에 안 계십니다. 메모 남기시면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진우 (들어오다가 멈칫) 무슨 일 이야?


(웅성웅성 이석호 경감님 위에 계시죠..)


민규 선배님 개발바닥 때문인 것 같은데요? 이석호 팀장님 만날려고?

할아버지 (민규 밀치며) 아 좀 나와봐요. 내가 아주 중요한 사람을 만나러 왔는데.. (사람들 때문에 앞으로 가지 못하고)

진우 (민원 할아버지 알아보고)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할아버지 (돌아보고, 진우 배지 확인) 아, 경찰이셔? 내가 이석호 경감을 좀 만나러 왔어요. 아직 퇴근 안 했지요?

진우 지금 아마 여기저기 회의 때문에 바쁘신 것 같습니다. 연락처 주시면, 제가 전해 드릴께요.

할아버지 아니아니. 그렇게 해가지고는 답이 안 오더라고. 내가 서장한테도 하고, 여기저기 높은 사람들한테 다 연락해봤는데, 맨날 끄트머리 순경들이나 전화해서 무슨 일이냐고 묻고.. 아무도 전화를 안 해줘.

진우 민원 있으세요? 민원 창구는 저쪽이잖아요.

할아버지 오늘은 민원이 아니고, 이석호 경감을 만나러 왔어요. 걔가 내 중학교 제자에요.  

민규 아, 은사님이세요? 그럼 아까 방송 보시고..

할아버지 그럼, 내가 한번에 탁! 알아봤지. 이목구비가 또렷한게, 관상 좋고, 인물 좋고.. 내가 아주 아끼는 놈이였어. 그런데 이거.. 왠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진우 다들 경감님 보러 온거에요, 아까 그 뉴스 때문에.  

할아버지 이게 다 기자들이야?

민규 기자도 있고, 유튜버도 있고.. 그냥 동네 분들도 있구요.

할아버지 쓰잘데기들 없이, 아 일하느라 바쁜 사람을 왜 찾아 다녀? 쯧쯧쯧..

진우 (민규 마주보고 웃음 꾹) 저기, 선생님, 제가 이석호 경감하고 아주 친한 후배거든요. 오늘 만나시기는 힘들 것 같은데, 저랑 요 앞에 가셔서 시원한 거 한 잔 하실래요? 찻집도 잘 아는데.   

할아버지 (사람들 보고) 에이.. 이렇게들 사람을 귀찮게 해서야 어디..

진우 (팔짱끼고) 그러니까 저랑 가세요. 괜히 여기 있다가 누가 밀치면 다쳐요 (민규에 눈짓하고 나감).


3 디졸브, 경찰서 앞 카페    


진우 (음료 들고 와 마주 앉고, 과자 포장 열어 권하며) 이거랑 같이 드셔보세요. 많이 안 달아요.

할아버지 젊은 형사님이 드셔야지, 나이 먹으면 밥 세끼 소화시키기도 버거워.

진우 (미소) 경감님 중학교 때 스승님이시라구요? 어땠어요, 그때는? 지금은 엄청 꼬장꼬장하고, 예민하고, 사람이 좀 꽉 막혀가지고.. 아휴, 말도 못해요.

할아버지 석호가? 에이그, 원래는 그런 애가 아니었는데.. 예의바르고, 친절하고, 싱글벙글 웃고, 아주 까불락까불락 인기도 많아서, 애들이 무슨 팬클럽처럼 뒤따라 다녔어. 노래는 또 얼마나 잘 했는데?

진우 진짜요? 노래도 했어요?

할아버지 걔가 우리 학교에 록밴드를 처음 만들었는걸? 할아버지가 목사님이셔서 큰 교회를 하셨는데, 거기서는 맨날 찬송가만 부른다고 지겨워했거든. 일종의 반항이었겠지.

진우 오, 범생이가 반항도 하고... 공부만 했을 것 같은데.

할아버지 공부야 항상 잘 했고. 다들 부모님 닮아서 서울 법대는 맡아 놨다 그랬었지.

진우 그렇죠, 두 분 다 법관이시니까. 형은 경찰대 나왔어요. 저보다 2년 선배이고, 계속 수석하다가, 지금도 동기들 중에서 승진 제일 빠를 걸요? 경감 달은지도 꽤 됐구요.

할아버지 경찰이 될 줄은 몰랐어. 판검사 아니면 아나운서가 꿈이었는데.

진우 아나운서요? 그것도 처음 들어요.

할아버지 그게 진짜로 지가 하고 싶었던 거 겠지? 판검사는 집안에서 바랬던 거고..

진우 아, 그랬겠네요. 그래도, 형이 그런 거 좋아하는 줄 몰랐어요. 요즘은 혼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해요.

할아버지 많이 바뀌었겠지. 나도 사실 그게 걱정되서 찾아 온 건데.. 어떻게 지냈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중학교 졸업 전에 보고 못 봤거든 (씁쓸) 나쁜 녀석이, 졸업식에도 안 왔어. 인사도 없이.   

진우 (문득) 졸업식이면.. 중 3 때 담임 선생님..이셨어요?

할아버지 그렇지. 내가 2학년, 3학년 연속으로 2년을 담임했는데.. 잘 지내다가 무슨 일이 하나 생기면서, 그때부터 아마 석호를 잃었지 싶어.

진우 ... 그 사건이요? 송시율... 선생님 반이었어요?

할아버지 후배 형사님도 알아? 아이고, 석호가 아직 그 친구 이야기를 하나?

진우 아니요, 형은 안 하는데.. 미제 사건이라서요. 제가 강력반입니다, 이것저것 옛날 사건 뒤지다가 얼마전에 알았어요. 그런데, (떠보기) 형이 그 친구하고 많이 친했나봐요. 어렸을때라 충격도 크고..  

할아버지 그럼, 말도 말아. 둘이 아주 그림자처럼 딱 붙어 다녔어. 석호 부모님이 검사잖아. 지방으로 자꾸 돌아다니니까, 할머니가 키워주셨거든. 그 교회 옆에 사택에서 살았는데 좁고, 사람들은 자꾸 왔다갔다 하고... 그게 싫었는지, 맨날 시율이네 가서 먹고 자고, 진짜 그 집 아들처럼 그렇게 지냈어. 시율이 부모님이 참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진우 사건 있고 나서, 석호 형이 갑자기 부산으로 가잖아요. 원래 학교를 거기로 갈 예정이었나요? 외고를 갔던데.

할아버지 아니야, 우리가 중학교랑 고등학교랑 붙어있다고. 같은 고등학교 가는 거였지. 아니 석호가, 맨날 전교 1등에, 모의고사 만점에.. 내신 떨어지게 왜 외고를 가? 갈거였으면 서울에서 갔겠지, 그 실력에... 바로 그 앞에 서울에 있는 외고들 스쿨 버스도 왔다갔다 했는데.. 그래서 나도 이상한게, 외고 입학 시험도 본 적이 없는 애가, 갑자기 거길 간다고 부산으로 이사를 가더라고. 그러고 나서 마음에 안 들었는지, 속이 상해서.. 그 방학동안, 두 번이나 나를 찾아왔어. 아직도 기억해. 첫 번째는 어디서 며칠 노숙을 했는지, 추워 죽겠는데 바들바들 떨면서 거지 꼴로 온거야.


/회상/ 어린 석호, 선생님 따라 들어오고

젊은 할아버지 얼른 들어가서 따뜻한 물로 씻어. 난 갈아입을 옷 좀 꺼내 올게


그런데, 옷을 챙겨서 화장실로 가보니, 이 녀석이 욕실 안에서 아주 서럽게 울고 있더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엉엉 통곡을 하는데... 그 녀석이 우는 걸 처음 봤어. 그것도 그렇게 하늘이 무너지도록.. 이거 뭔가 잘못되었구나 싶어서, 몰래 방에 들어가서 석호 할아버지네 교회로 전화를 했는데,  


석호 할아버지 석호가 서울에 왔다구요?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제가 지금 데리러 가겠습니다.

젊은 할아버지 아닙니다, 걱정하실까봐 전화 드렸구요, 제가 여기서 밥 먹이고 좀 쉬게 하겠습니다. 늦었으니까 푹 자고나면, 내일 제가 교회로 데려가겠습니다...

석호 할아버지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요즘 쓸데없이 고민이 많아요.


CUT TO

진우 무슨 고민인지 물어 보셨어요?

할아버지 아니. 가족들도 모르게 집 나와서 헤메다가, 갈곳이 없어서 나한테 왔어. 그러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가족들하고의 문제일수도 있는거니까, 물어본다고 시원하게 답이 나오겠냐고. 그냥 애나 쉬게 하는게 맞는 것 같아서, 많이 자게 하고, 먹이고.. 약속대로 아침에 할아버지네 교회로 데리고 가는데, 내내 입을 꾹 닫고 아무 말 안 하더라고. 또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라, 그 말만 하고 내려줬어. 그런데, 그 교회에서 돌아나오는 길에 말이야, 요렇게 모퉁이를 돌면 바로 시율이가 살던 집이더라고. 그제서야 아이고, 이 녀석이 이제야 시율이 생각이 나서 그러나 보다.. 했어. 사건 났을 때, 석호는 서울에 없었거든.  

진우 서울에.. 없었... 다구요?

할아버지 응. 걔는 사건 난 것도 몰랐어. 석호 어머니가 갑자기 아파가지고, 교회도 문 닫고, 온 가족이 다 부산에 내려가 있었대. 어쩐지 여기 있던 사람들은 애고 어른이고 다 돌아가면서 경찰 조사받고, 온 동네가 난리가 났는데, 제일 친하던 석호가 안 보이는거야. 이 녀석이 혹시 충격으로 어떻게 되었나 걱정도 되고 해서 여기저기 물어봤더니, 그때 하필 걔 어머니가 쓰러져 가지고 며칠을 병원에 있었다네?


/INS/ 진우 생각, 지율의 부적

지율 목소리 오빠가 써 준거야, 사고 나던 날 밤에.. 다락방에서 늦게까지 같이 놀았어..

/강장동물, 불 키지 마 경찰 올때까지 기다려../


할아버지 그러니 그 어린 녀석이, 혼자 얼마나 놀랐을거야? 엄마는 죽을 뻔 했지, 제일 친한 친구는 죽었다지..    

진우 다음에는요? 두 번 왔었다고 하셨죠?

할아버지 그랬지. 두 번째 봤을때는 (갸우뚱) 애가 많이 달라 보였어. 화가 났다 그래야 되나.. 사춘기가 시작됐는지, 말도 툭툭 뱉고, 짧게 예, 아니오만 하고, 뭔가 냉.. 한게, 많이 차가워졌더라고. 부산이 싫었는지, 부모님 안부를 묻는데 갑자기 턱 일어나더니 가야된다고, 훌쩍 나가버리는거야. 아, 부모하고 오랫동안 안 살다보니까, 갑자기 합치고 나서 갈등이 좀 생겼나보구나, 했어.

진우 다른 말은 없었구요?

할아버지 뭐 특별한 거는.. 죽은 지 친구, 걔가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어디 있는지 아냐고 묻더라고. 아니, 지도 아직 어리고, 충격으로 힘들텐데, 정말로 그게 궁금해서 혼자 서울까지 왔을까? 그런데도 시율이네 가족, 친척, 부모님 고향, 어디 동생 있을만한 곳을 꼬치꼬치 묻더라고. 내가 알 리가 있나. 그래도 그렇게 걔 동생을 찾아야 된다고.. 지 핸드폰 번호를 주면서, 어디 있는지 찾으면 자기한테 연락을 달라더라고.. 아마 그날은 그 동생 얘기만 계속 했던 것 같은데..?  

진우 그 이후로는 두 분이 연락을 안 하신거에요?

할아버지 ... (한숨) .. 못 한거지. 그 날 지나고 하루이틀 되었나. 석호 어머니가 찾아왔어. 석호가 혹시 무슨 이상한 얘기 없었냐, 부산에 적응하느라 힘든 것 같다, 애하고 옛날 얘기 안 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더 이상 연락하지 말아달라.. 그렇게 부탁을 하더라고 ... 많이 서운했지만, 이해는 하지. 큰 일 겪고, 그럴 수도 있으니까.

진우 (혼잣말)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

할아버지 언젠가 한번, 한참 지나고 나서 전화를 해봤는데, 애 전화번호가 바뀌었더라고.  

진우 보통은, 사춘기 아이가 고민 상담하러 찾아갈 선생님이라도 계시면, 부모 입장에서는 고마운 거 아닌가요?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 그리고 전화 번호까지 바꿔버리는 건 좀 드문 일인데.

할아버지 예전에 허락없이 하루 재워준 일도 있고 그래서, 아, 이 집은 그때 애를 바로 돌려보내지 않아서 화가 났나보다.. 그랬지 뭐. 아니면 어쩔거야? 학부형한테 따질 것도 아니고. 힘들때는, 적당히 놔둘때도 있어야돼. 대신 지가 또 찾아오면, 그때 또 받아주고.. 그게 어른이 할 일이야. 기다려주는 거 (차 마시고).

진우 (할아버지에 미소, 과자 앞에 놓아 드리고)


4 병원 입원실

H 혈압 급격히 떨어지고, 기계음. 의료진 바빠지고, 산소 호흡기


간호사1 몇시간째 소변이 나오지 않습니다. 신장에 문제 있어보입니다.

의사 의식 없은지는?

간호사2 한시간 15분이요

의사 체온 안 내려가요?

간호사2 40분전에 해열제 주사했는데, 효과 없습니다.

의사  수술실로 옮겨요. 원무과 전화하고.

간호사1 예..

의사 (빠른 걸음가며 전화)... 안미영입니다. 원장님 통화 가능할까요..?


5 사무실

전화기 만지작 거리는 석호, 망설일 뿐 차마 걸지 못하고


석호 (지이잉) 여보세요?

직원 새소망 병원입니다. 이석호 팀장님 되시죠?

석호 예. 무슨 일 입니까?

직원 저희 환자분,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지셔서요, 주치의 선생님께서 응급 수술 들어가시기로 결정 하셨습니다.

석호 (시계보고) 지금 바로요?

직원 예, 지금 막 수술실로 옮겼고, 준비 중이십니다. 팀장님께 알려드리라고 하셔서요.  

석호 알겠습니다. 곧 출발하겠습니다. 그리고, 경비실에 연락해서, 가능한 한, 기자들 출입 좀 막아주세요. 저희도 인원 보내겠습니다.

직원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끊고)

석호 (서둘러 문자 보내고, 가방 챙겨 일어나는데 전화 지지징) 예, 형님.

창률 (목소리) 어, 이 팀장. 미안해, 뉴스를 지금 봤어. 지금 밖에 있어서.. 사무실 들어가서 결과 나왔나 확인하고, 다시 연락 줄께.

석호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6 CUT TO 요양병원


창률 그래, 수고해... (끊고, 사람들 발소리 돌아보면)

간호사 (지친 얼굴) 많이 놀라셨죠? 저희도 십년 감수 했어요.

창률 그러게요, 가끔씩 이렇게 놀래키시네요.

간호사 (기계 체크) 심장 박동수는 다시 돌아오셨구요, 혈압도 평소보다는 아주 조금 높은데, 걱정 하실 정도는 아니에요. 조금 쉬시고 나면 천천히 내려갈 거에요.

창률 고생하셨습니다.

간호사 이번에는 정말 큰일 나시는 줄 알았어요. 박사님도 잠깐 쉬세요. 식사 못 하셨죠? 대기 하시느라..

창률 (아버지 한 번 보고) 잠깐 사무실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급한 일이 있어서.. 죄송한데, 아버지 좀, 다시 부탁 드립니다.

간호사 맞다, 오늘 출근을 아예 못하신거죠? 아침부터 여기 계셔서... 걱정말고 다녀오세요. 바이탈 좋아보여요.   

창률 예, 그럼.. (인사, 아버지 손 꼭 잡았다 놓고, 간호사 물끄러미 보며 미소,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7 석호 운전, 전화 지이잉


석호 예, 서장님. 이제 막 출발했습니다.

서장 그래, 응급이라니 잘 됐고, 안그래도 지금 온라인이고 오프 라인이고, 난리다. 가해자의 수술 동의서가 말이 되냐고 사람들 막 항의하고, 욕하고.. 타이밍 딱 좋아.

석호 다행입니다. 병원 측에서도 더 이상 고집 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서장 (서장실) 유전자 대조는? 아직이야?

석호 지금 막 통화했습니다. 확인해보시고 연락 주신답니다.


CUT TO 서장실  

서장 검찰에서 전화왔다. 언론에는 다 터뜨려 놓고, 왜 아직도 자료도 안 넘기냐고.


CUT TO 차 안

석호 조금만 더 끌어주십시오. 유전자 결과도 나와야하고, 지금 수술 들어가서 개복하면, 폭행 수위가 어땠는지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수술 결과도 첨부할거니까요.

서장 (서장실) 알았어. 잊지 않았지? 검거 후 48시간 이내 사후 영장 신청. 자백이 나오질 않으니까 더 단단히 준비하자고. 병원에서 혹시 기자들 만나면, 못이기는 척 인터뷰 응하고, 좋은 말 좀 던져. 방송 나가고 나니까 증거 부족에 뻥카까지.. 이거, 엄청 신경 쓰인다.  

석호 걱정 마십시오. 다녀오겠습니다.


씬 8 CUT TO 서장실

서장 아냐, 들어오지 마. 오늘은 거기 있어. 큰 수술 받는데 보호자 없이 혼자 있는거 보기 안좋아. 누구 교대 할 사람 하나 보낼테니까, 그때까지만 붙어 있어. 지금, 이 팀장이 우리 간판이야. 이미지 관리 잘 해. 카메라가 보고 있어 (전화 지지징) 아휴, 전화 또 왔다.. 그래, 수고! (끊고, 숨 고르고) 예, 부원장님, 왠일이십니까, 이 시간에..? ... 예, 그럼요. 잘 알지요.. 아이고, 그러셨어요?... 예, 예..


(문 똑똑, 시환 빼꼼)


서장 (들어오라 손짓) ... 예,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시환 눈치보며 앉고)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들어가십시오.. (끊고, 시환 찌릿) 왜 왔어?

시환 사무실 갔는데, 팀장님이 안 계셔서..

서장 (한번 더 숨 고르기) 피해자 수술 들어가서 병원 갔다

시환 봤어요. 긴급 체포 하셨다고..

서장 그랬지, 새벽에 다들 우르르 몰려가서.. 너는 뭐하고 있었냐?

시환 저는... (눈치) 가평에서..

서장 남의 구역, 남의 사건에 가서, 코 박고 제사 지냈냐? 굿이라도 보고 오지?

시환 죄송합니다

서장 결과도 안 나온 사건을, 네가 뭘 믿고 거기서 살인이네 어쩌네, 썰을 풀어? 그쪽에도 몇십년씩 된 베테랑들 있을건데, 어디서 새파란 놈이.. 그 꼴이 뭐가 돼?  그리고. 너 아직도 과수대 놀이야? 너 인제 형사야, 임마. 사건이나 똑바로 파!

시환 (꾹 참고) 죄송합니다

서장 맨날 죄송해, 맨날. 너, 네가 한번 손가락으로 세어봐라, 죄송합니다를 하루에 몇 번을 하는지.

시환 (죄송..하려다 멈추고) ... 주의하겠습니다.

서장 알았으면 됐어. 가봐.

시환 .... 왜요?

서장 뭐?

시환 이게 다 에요? 더 혼 안 나요?

서장 다 큰 놈을 뭘 혼내? 잘못한 거 다 알잖아.

시환 화, 진짜 많이 났어요? 말하기 싫어요?

서장 뭐래... 가! 나 오늘 바빠.

시환 나 보기 싫구나? 말 안 들어서? 위에서 욕 먹었어요, 나 때문에?

서장 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 가평까지 왔다갔다 그만큼 했으면 들어가서 잠이나 자.

시환 아, 삼촌, 진짜 왜에에? 뭐? 반성문이라도 쓸까? 시말서?

서장 시말서 같은 소리하고 있다.. 얘는 가라는데 말이 많아?

시환 그러니까 왜 그냥 가냐고? 잘못했는데? 증거품 옮겨, 현장 훼손해, 사건 조작하는 거에 속아서, 좋다고 이리저리 끌려다녀, 경찰 망신 다 시키고, 방송 나와서 남의 사건 떠들고..  

서장 알면 됐어. 가서 지율이 퇴근 시켜. 병원 안 간대?

시환 출혈 멈췄고, 열 내렸고, 약간 메스꺼운데, 사이다 먹으면 괜찮대.

서장 그놈의 사이다... 야 이자식아, 그러니까 아픈 애 끌고 다니지 말고, 고생 좀 시키지 마. 걔가 전화해서 너 야단치지 말라 그러더라. 지가 시킨거라고, 그러니까 지 잘못이라고.

시환 선배가?

서장 그래. 선배라고 꼴에 감싸기는... 니들은, 쌍으로 더 사고치기 전에, 둘 다 확 잘라버렸어야돼... (시환 표정 안 좋고) 왜? 챙피하냐? 아직도 여기저기서 우쭈쭈 도움이나 받고?  

시환 안그래도 올라오면서 확 사표를 써버릴까.. 난 진짜 경찰하고 안 맞아.

서장 사내 자식이 그딴 걸로 때려 쳐? 안 풀릴때도 있는 거지. 그러니까 팀이 있는거고, 파트너가 있는 거고.. 너같이 실수하는 놈들 서로 도우라고.

시환 실수를 왜 맨날 나만 하냐고. 지율 선배는 안 하잖아. 진우 형도.

서장 걔네가 이상한 거지. 걔네랑 비교하는 너도 이상하고.

시환 (소파에 벌렁) 삼촌, 나는.. 아, 되게 잘 하고 싶은데,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가평에서 쫌 자신있는 거, 그거 증거 찾는 거, 판 딱 벌려주길래 왠 떡이냐 신나서 떠들었더니.. 그거 다 녹음해서 이상한데 써먹을려고 그 놈이 수작 부린 거였고... 어떻게 음성 변조도 하나 안하고 생목 그대로 다 내보내? 와, 사기를 당하는 게 이런 거구나.. 경찰이, 경찰한테.

서장 시끄럽고, 가서 지율이 쉬게 해. 한 놈 아프면 여럿 고생한다. 아, 그만 일어나, 꼴보기 싫어!

시환 (억지로 낑) 예..... (힘 없이 90도 꾸뻑) 서장님, 안녕히 계세요..

서장 (눈 질끈) 널 보면 내가 정말... 얼씨구다, 정말... 에휴..


9 계단

터덜터덜 자판기 음료수 뽑으려 돈 찾는 시환, 계단 아래에 두 사람 앉아있고, 귀에 익은 목소리. 내려다보면


진우 너 솔직히 말해. 아팠지?

지율 조금..?

진우 (어깨 내어주고) 기대 (지율 머리 툭 기대면) 바보야.. 시환이만 보내도 될 걸, 왜 사서 고생이야? 걔한테 말은 했어, 아직 통증 있다고? (시환 듣고 있다 아차)

지율 아니. 일하는데 신경쓰이잖아. 시환씨가 혼자 다 했어. 난 옆에서 구경만 하고.

진우 너네는 진짜, 똑같은 것들끼리.. 야,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던가, 말을 안해도 눈치로 팍팍 알아듣던가. 시환이는 원래 애가 눈치가 없어. 하나씩 다 얘기 해줘야 안다고... (걱정) 지금은? 진짜 괜찮은 거야?

지율 (배 꾹꾹 누르고) 몰라, 느낌이 없어. 다 나았나봐.

진우 감각이 없는거 겠지, 봐봐.. (지율 배에 손) 뭐냐? 방검복 입었냐?  

지율 (풉) 방검복을 왜 입어? 복대야. 허리 서포트하는 거.

진우 (웃음) 나도 직업병이야. 방검복인 줄 알았어... (지율 웃음) 그래도 복대가 있었네. 병원에서 준거야?

지율 전에 차 형사님이 사준거.. 허리 아프다 그럴때.

진우 가자. 집에 가서 자. 쉴수있을 때 쉬어야지.

지율 됐어. 사무실 갈래. 소파에서 자는 게 편해.

진우 안돼. 기껏 수술 해 놓고, 너 이렇게 관리하면 더 망가져.  


(시환 못들은 척 종종종 내려오고)


시환  뭐해? 저녁 안 먹어?

진우 배 안 고프대. 퇴근 하려고.

시환 사무실 소파 내 꺼다. 뺏기 없어. 나 지금 반성문 쓰고 자야 되거든?

진우 그래, 많이 쉬어. 여기도 오늘 난리였어. 내일도 정신 없을 거야.

시환 오케이. 선배 내일 봐요. 형 빠이.

지율 가요.. (시환 금세 사라지고)..?

진우 우리도 가자. 너 여기 잘 데 없대 (지율 그제서야 따라 일어나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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