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하시나요? 전지현, 이민호 주연의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푸른 바다의 전설>은 유난히 클로즈업이 많은 드라마입니다. 워낙 남녀 주인공의 비주얼이 뛰어나기도 하고, 둘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내려는 흔치 않은 연출, 특히 카메라 기술 덕분이죠. 자잘하고 디테일 한 그야말로 '잔재주'의 숨은 가치입니다. 덕분에 유난히 맑은, 이민호라는 배우의 눈동자 저 깊은 속까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으니까요.
날씨나 조명, 반사판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같은 장면 속 다른 배우들의 눈동자와 많이 다릅니다. 배우 이유영씨 역시 남들과 조금 다른, 편안하고 느긋하게 (!) 잔잔한 연갈색을 머금은 착한 눈동자를 가졌지만, 이민호의 눈동자는 그것과는 또 다릅니다. 그에게서는 잔잔한 파장이 보입니다. 물결이라 해도 좋고, 옅은 파도도 괜찮고.. 봄바람 느껴지는 미미한 터치도 좋습니다. 그의 눈동자에는 그렇게 크지 않은, 아주 작고 은근한, 생명력이 있습니다.
눈이 큰 사람들의 장점이겠지요. 모든 감정이 눈으로 드러납니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눈이라는 것, 동의 하시나요? 소리만 빽빽 지르는 악역보다 바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백배 더 많은 거 이야기를 하죠. 온 몸을 흔들며 흐느껴 울어도 아무 공감없던 주인공의 사연이, 눈물 없어도 시뻘겋게 충혈된 흰자위를 보면 백프로 공감되기도 하구요.
저에게 눈 연기의 장인은, 감히 이미숙님과 원미경님입니다.
장근석 주연의 <사랑비>에서 윤아의 어머니 역으로 나왔던 분이 이미숙님인데요, 수목원 벤치에 딸과 둘이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큰 비중 아니고 잠깐 쉬어가는 짧은 컷이지만, 수다 떠는 딸을 가만히 바라보는 두 눈 속에, 정말 친딸을 대하는 듯한 사랑이 가득가득 했더랬습니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원미경님 역시, 모든 희로애락을 눈으로 보여주셨더랬죠. 역시는 역시라고, 연기 장인은 눈빛부터 다릅니다.
이민호의 눈동자는 아직 이분들께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많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제 생각). 나쁜 사람, 껄렁대는 사람, 화내는 사람, 비열한 사람... 그런 역할은 차라리 개성이 강해서 표현하기 쉽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실한, 편안한, 진실한 캐릭터는 배테랑 배우들도 훨씬 어렵다고 해요. 제가 보는 이민호의 눈동자에는, 그 어려운 '진심'이 살고 있습니다. 사랑이건 미움이건, 따뜻하건 차갑건 상관없이, 어떤 배역에서도 그는 눈동자로 마음을 전하죠.
김희선과 함께 했던 <신의>에서도 그의 눈동자는 대사보다, 표정보다 많은 걸 이야기 합니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가 되었을때는 가볍고, 오만하고, 냉정하면서도 연민이 서린, 가슴 쓰라린 슬픔을 깔고 있구요. 불행하게도 작품에 함께 출연한 또래의 다른 배우들, 김현중, 김범... 특히 김우빈은 심리적 변화가 가장 많은 역할이었음에도 거기에 상응하는 다양한 눈빛을 보유(!)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저 김우빈 좋아합니다. 오해 없으시길).
사슴 눈망울이라고 다 감정 표현이 되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동그란 눈에만 힘주느라 몰입을 방해하는 배우들도 많으니까요. 상대 배우의 대사를 기다리며 자기 차례 들어가기만을 준비하는, 아직도 온 신경이 대본에 갇혀있는 그런 연기를 보면 참 갑갑합니다. 흐름을 타지 못하고, 자기 스타일도 없이 작가가 써 준 글자대로만 버티는 모습도 불안하구요. 대사, 표정, 몸짓... 그리고 눈빛마저 연기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인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어린 (?) 모습이 담긴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풍경도 좋고, 한복도 예쁘고..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한 스토리인데 매 회마다 새로운 볼거리가 생기는, 진부하지 않은 어른 동화입니다. 남은 몇 회 동안, 몇번이나 더 이민호의 눈동자 연기를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이번 한주동안 봄방학입니다. 대청소도 하고 티비도 보고.. 마음도 한바탕 비워내렵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