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함께새로움찾기_15
꽁꽁 언 땅 속에 매미 찾기
연초에 찾아온 최강 한파에
생활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일어났다.
많은 눈과 거침없는 바람으로
온 세상이 꽁꽁 얼었다.
잠을 자면서 이불과 같은
걸리적거리는 것을 싫어하는 승후 역시
맹추위에 따뜻한 엄마 품을 파고든다.
승후와의 아침은 부비적, 엄마를 찾는
칭얼거림을 품에 안은 채
안부인사로 시작한다.
매번 그렇듯
“아빠는 승후 꿈을 꾸었는데 승후는 무슨 꿈을 꾸었니?”
전 날 엄마와 함께 읽고 잔 책에 나온
공룡들을 생각하며
“꿈속에서 공룡과 함께 놀았어?”
보통은 비몽사몽에 피식 웃고는 하루를 시작하는데
오늘은 영 기분이 좋지 않다.
평소 아빠 방 침대로 가서는
비스듬히 보이는 TV를 보며
아침밥을 기다리는데 오늘은 한파 속에
안방의 이불을 쏘옥 뒤집어쓰고는
거실에 털썩 눕는다.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다.
아침에 만나는 TV 속 호기심들을 뒤로한 채
오늘은 자꾸만 밖을 쳐다본다.
아직은 잠결에 물든
따뜻한 체온 담은 몸을 쓰다듬어주고
몸의 온기가 쉬이 사그라들지 못하도록
서둘러 따뜻한 양말을 신겨준다.
보통보다 조금 늦은 기상 시간에 맞추어
분주히 밥을 준비하니 입에도 대지 않는다.
사과주스를 겨우 몇 모금하고선
갑자기 매미를 찾기 시작한다.
아마도 창문을 보며
곰곰이 생각하던 것이 매미였던 듯 싶다.
얼마 전 엄마와 함께 휴지심을 이용해
색종이로 매미를 만들었는데
그 매미를 말하는 것이냐고 물어보자
그 매미는 아빠 매미이고
펑펑 울면서 엄마 매미를 찾는다.
촉박한 등원 시간에 맘 속이 불이 난다.
아침밥 또한 잘 먹지 않아 더욱 맘이 좋지 않아
결국 아이에게 화를 내고야 말았다.
온 세상에 불만을 표시하듯 터져버린 울음에
그래 아빠가 졌다.
서둘러 휴지심을 마련하고
거실에 둘러앉는다.
딱풀을 들고서는 금세 기분이 하늘을 향한다.
“무슨 색깔 색종이를 쓸 거야?”
이미 늦어버린 시간에 마음을 다 잡고
아침부터 목소리를 높인 나를 질책하며
승후가 색종이를 고르길 기다린다.
“빨간색”
울다가 볼에 남긴 닭똥 같은 눈물이
색종이에 뚝 하고 떨어져 번지니
내 마음에 더욱 큰 파장으로 울려온다.
승후가 원하는 놀이를 함께 해주는데
10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몇 분이면 후딱 매미를 함께 만들 수 있는 것을....
아침부터 승후의 눈에 눈물을 나게 한 자신이
승후에게 작은 상처를 주었다.
몇 분의 차이를 인고한다면
함께 도란이 앉아
종이를 접을 수도 있고, 책 한 권을 읽어 줄 수 있고
승후가 좋아하는 숨바꼭질도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정해진 등원 시간, 출근시간이라는 강박관념
8시가 넘어서면 1분 단위로
시계를 보곤 하던 나의 모습은
승후를 위한 행동이었을까?
단지 나의 출근시간을 위한 행동이었을까?
생각해보건대
단지 몇 분 차이로 회사에 늦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
그 순간을 아이와 소통하며
승후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다면
훗 날 승후 또한 나의 마음을 기억해주지 않을까 ?
수많은 생각이 거실을 가득 채울 무렵
그렇게 휴지심을 빨간 색종이로 덥고서
검은색 날개와 노란색 눈을 만들어
승후와 함께 매미를 완성했다.
“승후가 만든 매미가 정말 멋있다!”
“엄마 매미”, “엄마 매미”,“엄마 매미”
귀엽게도 말하는 승후와 함께
창문에 걸어둔 아빠 매미 옆에
엄마 매미를 걸어놓았다.
색깔이 앙증 맞은게 창밖 풍경과 잘 어울린다.
“예쁘다 승후야 정말 멋져”
“이제 선생님 만나러 가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승후의 눈에 다시금 슬픔이 찾아온다.
“왜 승후야 또 매미가 만들고 싶어?”
“할미 매미!”“할미 매미!”“할미 매미!”
스윽 승후의 애절한 눈빛에
가족을 살뜰히 챙기는
승후의 마음을 기특하다.
“그래 승후야 그럼 아빠랑 다시 만들어보자”
“무슨 색깔 색종이를 쓸까?”
그렇게 할미 매미까지 완성하고
손에 뭍은 딱풀을 씻겨주고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한다.
오늘따라 유난히 승후의 떼가 절정이다.
거실에 형형색색 배를 깔고 누워
이리 와 놀자는 색종이에 눈을 떼지 못한다.
아침부터 진행한 놀이가
연속되지 못함에 슬퍼하는 것 같았다.
결국에는 울고 마는 승후를 앞에 세워두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이어 나가본다.
“승후야 그럼 우리 밖에 있는 매미를 보러 갈까?”
“매미 없어 엉엉엉”
눈치 빠르게 ‘추운 날에는
매미가 나무에 매달려 있지 않다’는 것 을
승후는 이미 알다.
“승후야 그럼 땅속에 있는 매미를 찾아볼까?”
신기한 듯 관심을 갖는다.
“승후도 알고 있지? 매미는 겨울에는 땅속에서 코를 하고 있어! 우리 땅을 파볼까?”
새로움에 살아난 눈빛이 벌써 신발을 찾는다.
‘나가자! 나가자! 아빠 어서 가서 땅을 파서 매미를 찾아보자!’
꽁꽁 목도리에 장갑까지 씌워 서둘러 밖에 나간다.
신이 난 승후가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노래를부른다.
"매앰 매앰 매앰"
그렇게 어렵사리 집 밖을 나와보니
한파가 발 끝에 서려온다.
길 옆 화단에 눈을 치우고 흙 앞에 나란히 앉아
땅 속
보일 리 없는 매미를 찾아본다.
“엇! 승후야 땅이 꽁꽁 얼었다!”
사실 매미를 찾아 땅을 파보겠다는 말은 승후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하려는 유인책으로
바로 안아 어린이집으로 달려갈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사내끼리의 약속을 지키려
땅을 파 볼 요량으로 화단을 살펴보니
한파에 너무나도 꽁꽁 얼어버렸다.
당황하는 내 옆에
뽀얀 입김 가득한 승후가
나뭇가지를 가져와서 땅 파기를 시도한다.
힘없는 나뭇가지는 이내 곧 부러지고
어찌할 방도를 못 찾고 헤매는 서로를 보고 있자니
피식 함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 한파에 꽁꽁 언 땅을 파서
매미를 찾겠다는 부자의 모습에
승후 또한 이미 실패를 예감하고 있었는 듯
“이게 모야 흐흐흐 이게 모야 히히히”
그렇게 뽀얀 입김 서로 마주하다
시린 승후의 손을 호호 불어 나의 온기를 전해준다.
승후의 발길이 드디어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마주 보며 안고서는 짧은 거리지만
이야기를 나눈다.
“승후야 아빠가 군대에서 꽁꽁 언 땅을 많이 파봤는데 오늘은 엄청 꽁꽁 얼어서 땅을 못 팠어”
“매미도 코하고 있으니까 깨우면 안 돼”
“그런데 매미는 꽁꽁 언 땅에서
어떻게 승후를 보러 나오지?”
귀엽게도 땅강아지처럼
두 손을 번쩍 들어 허공을 도화지삼아
나름대로 상상의 그림을 그린다.
“아하! 앞발로 땅을 휘익 휘익하는구나”
“으응 휘익 휘익”
“그런데 꽁꽁언 땅에 매미 손이 아야 할 것 같아,
우리 따뜻해지면 그때 다시 매미를 만나자!”
그렇게 길고 긴 매미와의 사투는
선생님을 뵙고서야 종료되었다.
가끔 승후가 떼를 쓰거나 기분이 언짢을 때면
나는 오늘을 기억하겠노라
바쁘더라도 승후를 이해하는 찰나의 순간이
승후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그리고 미련한 감정에 화를 내는 것보다는
잠시나마 시간을 두고
서로의 감정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오늘도 하나하나
승후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꽁꽁언 땅이 이내 곧 승후의 마음처럼
보드라워지면
그때 우리 꼭 만나자 매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