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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월 Feb 25. 2022

선택의 기로

뽀얀 연기와 더 뽀얀 눈

 몇 번을 고치고 고친 글이다. 어쩌면 영영 발행 버튼을 누르지 않을 글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뽀얀 연기를 한번 내뱉는다. 묵직하게 눌린 가슴을 해방시켜 주지 않을까 싶어 혐오스러운 그림과 무서운 글귀가 적힌 작은 종이 상자에서 새하얀 작은 막대에 불을 붙인다. 콜록 기침이 나지는 않는데 불을 끄고 나서는 찰나에 주변이 핑 돈다. 어지러이 걸어가는 모습에 사람들이 힐끔 거린다. 


 그렇게 뽀얀 연기를 뿜어 내던날, 그날은 더 뽀얀 눈이 내려왔다. 소복하게 쌓이는 눈 싸락을 보며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하늘을 바라보는 기회를 내려다 주는 듯했다.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며 뽀드득 한발 한발 나아갔다. 어떤 길은 누군가가 이미 지나간 길, 그렇지 않은 길들도 지천에 많았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좋을까. 옳고 그름은 없다. 어느 것이 '더' 좋을까.  

 

 그래, 아무리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올 겨울은 유난히 변수가 많았다.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가정에서는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직장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나려고 했다.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아도 흘러가는 대로 갈 수는 있는데 자꾸 스스로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 같다. 스스로를 자꾸 사지로 몰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간단히 싫은 변화를 참고 가만히 버티어 안정적인 것을 선택할 것이냐,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세웠다. 누군가 이미 잘 닦아둔 길을 가면 내 신발 바닥은 깨끗하겠지만, 뽀얀 눈은 밟을 수 없다. 다른 선택으로 나아간다면 눈이 녹아 신발 바닥은 더러워져 있겠지만 새로운 눈을 뽀드득 밟으며 갈 수 있다. 어느 쪽도 극단적으로 나쁜 결과는 없다만. 마음이 어렵다. 이렇게 마음이 어지러운 적이 있었던가. 올 겨울은 뼈에 눈이 마주하는 것처럼 시리다. 이제 이런 생각을 공유할 소중한 이가 한 분 없다는 것이 더욱 시리다. 


눈이 한번 더 오기 전에 선택을 해야겠다. 그리고 발행 버튼을 눌러야겠다.


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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