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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관희 Dec 17. 2020

이웃집 토토로

'이웃집 토토로'라는 애니메이션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토토로라는 캐릭터의 인기로 보이는데,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아! 그 뚱뚱한 잿빛 고양이"라며 반색할 수준으로, 어느새 아기 공룡 둘리에 버금갈 만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행여나 토토로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그 생김새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고양이를 닮은 듯한 얼굴이지만 쫑긋한 두 귀는 토끼 같기도 하고, 덩치는 북극곰처럼 거대해 위압감이 들면서도 복슬복슬한 털과 펑퍼짐한 하얀 배가 왠지 모르게 매력적인, 심히 아리송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여러 동물의 이것저것을 섞어 놓아 당최 어떤 동물인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는 고양이다, 곰이다, 다람쥐다, 너구리다, 아니다, 저건 뚱뚱한 토끼임에 틀림없다, 라며 의견이 분분하지만, 사실 이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숲의 정령이라고 한다(애니메이션에 나온다). 다소 특이한 점이라면, 어른들은 토토로를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는 사실. 토토로는 동심의 세계를 탐험하는 어린아이들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그야말로 신비스러운 숲의 정령이다.


나는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웃집 토토로를 처음 감상했다. 당시 선생님이 수업 대체용으로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고 했을 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청각실로 향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초원을 누비는 치타처럼 날렵했고, 공부만 아니라면 화장실 청소라도 감지덕지했던 나는 하늘을 가르는 날다람쥐 마냥 기뻐 날뛰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이 시작되자 기쁨의 열기도 차츰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토토로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우선 만화의 배경이 시골이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벌써부터 따분했다. 주먹다짐을 해서 학교의 짱을 가린다던지, 오토바이를 타고 위험천만한 레이스를 즐긴다던지, 순간이동을 한다거나 두 손에서 에네르기파가 나간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농촌 풍경이라니... 이제 막 청춘의 초입에 들어선 나에게 토토로는 그저 어린애들이나 보는 만화영화에 지나지 않았다.


1분 1초가 지긋지긋했다. 토토로는 보기 싫고, 그렇다고 잠들자니 선생님한테 혼날 것이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는데, 다행히도 나의 뇌세포들이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꿈틀대기 시작했다. 반쯤 감긴 두 눈은 토토로를 보고 있었지만 나의 실질적 자아는 가상세계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뻗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나를 심연의 구렁텅이에서 끄집어내 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리니지라는 컴퓨터 게임이었다.

온 정신을 집중하여 가상세계에 접속한 나는 신명 나게 몬스터를 때려잡았다. 오크를 때려잡고 해골을 때려잡고 돌골렘을 때려잡고, 나중엔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져 토토로마저 때려잡는 상상에 이르렀다. 토토로의 뒤뚱거리는 몸짓이 마치 버그베어라는 몬스터와 흡사하여 때려잡을 수만 있다면 좋은 아이템을 떨굴 것만 같았다.

꾸역꾸역 졸음을 견뎌내다 마침내 영화가 끝났을 땐 여름날의 소나기 같은 카타르시스가 쏟아져 내렸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분명 숟가락으로 굴을 파서 감옥 탈출에 성공한 영화 <쇼생크 탈출>에 버금가는 희열로 기억된다. 그날 이후로 이웃집 토토로는 내 인생에서 가장 따분한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그로부터 토토로를 다시 한번 감상해볼까, 하고 마음먹게 된 건 서른이 막 지났을 무렵이다. 호텔에서 근무하던 시절, 오랜만에 친한 동생과 단둘이 야간 근무에 투입되어 평화로운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별안간 이상한 노래가 들려왔다. 그것은 동생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아루꼬~ 아루꼬~ 와타시와 겡끼~ 아루꾸노 다이스키~"

"그게 뭔 노래냐?"

"토토로 주제가인데 몰라요? 형, 일본어 전공해서 당연히 아는 줄 알았는데"

"지긋지긋한 토토로! 근데 그 노래가 아니잖아, 톳!토로~ 톳!토오로~ 이거잖아"

"아, 제가 부른 건 오프닝에 나오는 곡이에요"


토토로를 본 적은 있지만 그 노래는 생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자 동생은 기어코 동영상을 찾아 틀었다. 아기자기한 애니메이션과 함께 노래가 흘러나왔고 곧이어 눈에 익은 여자아이가 등장했다. 적막하기 그지없던 농촌의 풀밭과 숲 속을 뛰어 댕기던 그 꼬마였다.


"아루꼬~ 아루꼬~ 와타시와 겡끼~(걷자~걷자~나는 건강해~) 아루꾸노 다이스키~ 돈돈 이꼬오~(걷는 게 너무 좋아~ 계속 계속 걷자~) "



꼬마는 음악에 맞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어린 꼬마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걷는 모습이 얼마나 앙증맞은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 뒤를 이어 애벌레가 꿈틀대며 등장하더니, 여치가 저벅저벅 걸어 나가고, 아기 토토로가 새싹으로 만든 우산을 쓴 채로 지나갔다.

부드러운 색채를 입은 영상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반복되었는데, 귀여운 캐릭터들의 역동성과 경쾌한 하모니가 묘한 중독성을 불러일으켜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끝내는 헤벌레 웃으며 정신줄을 놓는 상황에까지 이르자 동생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형, 저 좀 봐봐요"


동생은 나를 향해 웃으며 제자리에서 걷기 시작했다. 달밤에 체조라도 하듯 양팔을 앞뒤로 휘저으며 힘차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아루꼬~ 아루꼬~ 와타시와 겡끼~" 검은 정장에 검은 구두, 밤이 깊어서 얼굴엔 검은 수염자국이 진하게 도드라진 동생은 영상 속 캐릭터를 따라 하고 있었다(심지어 인상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결국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큭큭큭, 뭐하는 짓이냐"

"저도 저기 나오는 캐릭터 같지 않아요? 아루꼬~ 아루꼬~"

"큭큭큭, 안 어울려, 그만해"


검은 스포츠머리에 검은 정장에 검은 수염자국을 달고 있는 남정네와 이웃집 토토로라니...

나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생은 놀이동산에 온 어린아이처럼 노래를 따라 부르며 제자리걸음을 계속했다. 꼬마가 지나가고, 애벌레가 지나가고. 여치가 지나가고, 아기 토토로가 지나가고, 마침내 그 뒤를 이어 모니터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 동생이 씩씩하게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는, 참으로 묘한 풍경이었다.


"토토로 엄청 좋아하나 보네"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에 제일 좋아해요"

"근데 토토로 따분하지 않아?"

"따분하긴요, 저는 토토로 볼 때마다 엄청 기분 좋아지던데"


동심을 느껴본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나는 그런 이질적인 공간 속에서 잠시나마 동심의 세계를 떠올릴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어색한 듯 익숙한 그 세계는 아직 포근한 온기를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내면에 잠들어 있던 동심의 씨앗이 싹을 틔운 그날 이후, 나는 이웃집 토토로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 졌다. 그리고 화창한 오후 어느 날. 설레는 마음으로 이웃집 토토로를 감상했고 알 수 없는 감정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결국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그 눈물은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단비처럼 달콤한 눈물이자 두텁게 쌓인 눈을 녹여낼 만큼 따뜻한 눈물이었다. 나는 울고 있었지만 웃고 있었다.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잿빛 세상이 형형색색의 화사한 색채로 물들어 가는 것을 지켜보며 회환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동심의 세계로 통하는 입구가 점차 사라져 간 것은 아마 토토로를 처음 감상했던 중학교 시절, 그때였을 게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느라, 새로운 문물을 소화해내느라, 뒤를 돌아볼 여유 없이 성장해 왔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그 결과 동심의 세계는 영영 돌아갈 수 없는 환상의 세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어른이 된 어느 날 '동심의 세계'란 말을 들었을 때 퍼뜩 그 이미지 떠오르지 않았다. 머나먼 미지의 세계 속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뿌연 안개를 끌어안는 기분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마치 후진을 할 줄 모르는 초고속 비행기처럼 눈앞에 펼쳐진 목표들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해 온 어른일 뿐이었다. 바쁜 삶일수록 만족스러운 어른. 동일선상에서 한 발짝 앞서가야만 안도하는 어른. 자신의 내면세계가 칙칙한 잿빛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내가 살아온 삶이 올바른 인생의 표본이라 여겨왔던 어리석은 어른일 뿐이었다.


모든 어른들은 한때 어린이였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어른은 거의 없겠지만. <어린 왕자 중에서>


가끔은 어른들과 함께 힘차게 날아오르는 토토로를 상상해본다. 빈칸 하나 없이 살아온 세월들 사이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거슬러 풍요로움과 따뜻함이 살아 숨 쉬는 동심의 세계 속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상상 말이다.

새로운 마음의 눈으로 새롭게 펼쳐질 세상을 느껴보고 싶다면 한 번쯤은 이웃집 토토로를 감상했으면 한다. 어린아이들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숲의 정령 토토로지만, 어쩌면 우리 어른들의 눈가에도 어른거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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