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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Nov 01. 2024

눈물, 아니 인공 눈물

어스름 새벽 5시 알람이 울린다.

더듬더듬 폰을 찾아 알람 버튼을 누른다.

눈이 뻑뻑하고 시리다.

더듬더듬 침대 머리맡 독서등을 켠다.

눈을 반쯤 시리게 뜬 다음 침대 옆 책상 위를 더듬어 인공 눈물약을 손에 쥔다.

작은 뚜껑 머리를 똑딱 떼고선

한 방울 한 방울 눈에 떨어트린다.

그제야 나의 눈은 부드럽게 떠지고

흐리던 시야는 태초의 모습으로 밝고 맑다.


인간의 노화는 어디 한 군데 비켜 가는 곳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눈물샘 마저 나이가 들어간다. 

서글프지만 조물주가 하나하나 모든 걸 계산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그저 신비한 신비라 생각한다.


얼마 전 읽었던 책, 김훈 작가님의 <허송세월>의 한 부분이다.

나이를 먹으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져서 시간에 백내장이 낀 것처럼 사는 것도 뿌옇고 죽는 것도 뿌옇다. 슬플 때는 웃음이 나오고 기쁠 때는 눈물이 나오는데, 웃음이나 눈물이 나 물량이 너무 적어서 나오는 시늉만 한다. 안구건조증이 오면 눈이 쓰라리고 눈물이 흐르는데, 눈물이 흘러도 안구는 건조하다. 병원에 가면 눈물 흐르는 눈에 또 인공눈물을 넣으라고 한다.  눈물에 약물이 합쳐져서 눈물은 넘치는데, 젖은 눈이 메마르다. 어째서 이러는지 나도 모르고 의사도 모른다.
- <허송세월> , 김훈

연세 70이 훌쩍 넘으신 김훈 작가님의 노화에 대한 덤덤하면서 위트 있는 일화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책을 읽었다.

나도, 아니 어쩜 우리 모두도 언젠가는 저런 기분으로 살아가겠지.

인공 눈물에 의지한 나의 안구와 눈물샘에도 세월의 덮개가 더 두꺼워지면 나도 저렇게 눈물과 눈물약이

합쳐져 본디 나의 눈물인지 눈물약인지 모를 그리고 눈물이 넘쳐도 메마른 느낌으로 살아가려나.


책상 위에 차곡 쌓여있는 인공 눈물 박스, 그 개수가 줄어들면 안과 정기 검진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달력에 굳이 일정을 적지 않더라도 그 눈물약의 소진이 나를 병원으로 걸음 하게 만든다.

무엇 하나 세월을 그냥 비껴갈 수는 없네.


새끼손가락만큼 작은 이 눈물약 한 병에 불로초의 향기라도 들어있는 것일까?

이 세월의 두께에 떨어지는 인공 눈물의 한 방울은  잠시나마 가는 시간을 멈추어 주는 듯, 

뿌연 세월의 두께를 잠시 맑고 투명하게 해 주는구나. 


인공 눈물 박스가 두어 개 남았구나.  안과에 예약일을 잡으려 전화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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