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멋진 엄마가 될 거라 생각을 했었어
나는 멋진 엄마가 될 거라 생각을 했었어.
좋은 생각과 좋은 말만 하고,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것만 입히고,
바른 교육을 하며,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엄마.
항상 웃어주고 예쁜 말을 하며 아이와 잘 놀아주고 요리도 멋지게 하는 엄마.
유치원이나 학교 행사에 우아하고 예쁘게 차려입고 아이의 눈에 세상에서 최고로 예쁘고 자랑스럽게
보이는 엄마.
나는 그런 엄마가 될 거라 생각을 했었어.
어느 날 꿈을 꿨었지.
길을 가고 있었는데, 정말 너무나도 눈이 부시게 환하고 커다랗고 동그란 보름달이 뜬 하늘을 보게 되었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꿈속에서도 그 달빛이 얼마나 눈이 부셨던지, 눈이 저절로 감길 만큼 커다랗고
눈부신 보름달이었단다. 나는 눈을 꼭 감고 두 손 모아 기도 했었었어.
"예쁜 아이를 갖고 싶습니다"라며 그 달을 보며 빌었었지.
아직도 생생한 꿈이야.
그 꿈을 꾸고 난 며칠 뒤, 너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그 꿈은 태몽이었던 거야.
그래서 너의 태명을 '보름이'로 지었었지.
보름달처럼 크고 달덩이처럼 이쁜 아이이길, 자라고 어른이 되어 보름달처럼 세상을 훤히 밝히며,
이 세상 사람들이 너를 바라보는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널 임신하고 엄마는 제일 처음 산 책이 '삐뽀삐뽀 119' 였단다.
예비 엄마, 초보 엄마들의 교과서와 같은, 백과사전만큼 두꺼운 책이었어.
임신에서 출산까지,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 단계별 특징들, 그리고 아플 때의 증상과 처치 방법 등을 알려주는 책이었지. 엄마는 형광펜으로 그어가면서 하나하나 머릿속에 넣으려고 노력했어.
그리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엄마'에 대한 지침서, 자계 계발서, 에세이, 교육에 관련 책들을 시간 나면 읽으며 엄마 되기를 준비하며 공부했단다.
태교를 한다며 십자수도 놨었고, 클래식 음악도 들었고, 좋은 글만 보고 좋은 것만 보려고 했었어.
2005년 무더운 여름, 네가 태어났단다. 아주 작고 머리가 새까맣고 눈은 잘 뜨지 못했던 그 얼굴. 아직도 엄마는 기억해. 2.9kg의 조금 작았지만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 건강한 사내아이였지.
그날의 그 기쁨을 뭐라 형용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그 어떤 기쁨과 환희의 단어를 다 조합해도 그 순간을 적절히 표현할 말이 존재할까 싶어.
아픔? 아팠지. 온몸이 뒤틀리는 아픔이었어. 그런데 네가 머리를 내밀고 나오던 그 순간은 그 모든 아픔은 기쁨과 행복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어.
꼬물꼬물 소중했던 너의 모습. 아직도 엄마는 어제 일처럼 너무나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단다.
산부인과 병실, 산후조리원의 소파 색깔, 너를 감쌌던 신생아포, 배냇저고리, 모유를 먹이려 애썼던 시간.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가 습득했던 지식은 현실에선 그렇게 유용하지 못하 단 걸 깨닫기 시작했어.
책대로 크는 아이는 없더라.
책대로 하는 엄마도 없더라.
그렇게 좋은 엄마의 모습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생각하고 그려왔었는데, 이론과 실전은 너무나 다르다는 걸 하루하루 체감을 했었어.
책대로라면 이때쯤이면 넌 이렇게 행동을 해야 했고,
이때쯤이면 너는 이런 말을 했어야 했고,
이때쯤이면 책만큼의 키와 몸무게로 자라날줄 알았지.
엄마도 그때쯤이면 너의 그런 행동에도 웃으며 함께 즐길 줄 알았고,
엄마도 그때쯤이면 너의 그런 말에 타이르며 좋은 말을 할 줄 알았고,
엄마도 그때쯤이면 키와 몸무게의 증감에 그렇게나 예민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테지.
배달음식으로, 라면으로, 간편식으로 밥을 때운 적도 허다했고,
매번 새 옷을 입히기에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에게 사치 같아 보였고,
좋은 책만 읽히겠노라 했지만 만화책도 책이라며 읽게 해 줬고,
게임만은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나의' 휴식'과 '편의'를 위해 그 어린 너에게 엄마의 휴대폰을
던져 준 적도 있었지.
좋은 말만 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가졌던 너에 대한 높은 기대치에 비해 예상치 못한 행동들에 참을 수 없는 화를 낸 적도 많았고, 그로 인해 넌 많이 울기도 했지.
동생이 태어난 후, 어린 동생에 더 신경 쓴다고 너를 조금 덜 안아 준 적도 많았지.
회사일로 바쁘단 핑계로, 엄마의 사회생활과 취미생활로 인해 밤늦게 들어간 적도 많았고,
자고 있을 때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 다시 자는 너의 모습을 뒤로 한채 출근한 적도 있었지.
좋았고 행복했고 웃던 날들도 많았지만
서로 싸우기도 했고, 울며 불며 토라지도 했고, 서로를 원망 한 날도 있었지.
책은 책대로, 너는 너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그렇게 성장했어.
그렇게 우린 우리만의 서로의 책의 지침이 된 것 같아.
책대로 크진 않았지만 온전한 나의 아들로
책대로 하진 않았지만 열심히 노력했던 너의 엄마로.
사랑의 표현에 투박한 너이지만
옅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그 마음은 엄마는 알 것 같아.
명절이라고 집에 온 너에게
엄마 그래도 최선을 다해 소고기도 굽고 냉동실에 쟁여둔 굴비도 구워 오랜만에 없는 솜씨를 발휘했어.
어때, 맛있어?
엄마는 아직도 엄마 수업 중인가 봐.
아직도 서툴고 모든 게 처음처럼 느껴지지만 항상 너에겐 좋은 엄마이고 최고의 엄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