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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 있는 중고책

by 라라

최근 직장에 작은 인사이동이 있었다.

작은 이동이지만, 누군가에겐 자리를 바꿔야 하는 환경의 변화와 업무상의 큰 변화가 될 수도 있다.

그 변화가 내게 찾아왔다.

몇 년 만의 업무가 바뀌는 건지.

이 나이, 이연차에 또 새로운 업무와 낯선 자리로 이동하게 되었고,

먼지 쌓인 책상의 '이삿짐'을 싸다 고이 간직되고 있는 나의 그림 한 점을 발견한다.


보수동 현책방 골목 - 그림 by 라라

<보수동 헌책방 골목>


부산엔 오래된 책방 골목이 있다. 주로 중고서적을 판매하는 곳이다.

나의 어린 학창 시절, 새 학기가 시작되면 이곳에 와서 문제집이며 참고서등을 한꺼번에 사곤 했다.

동네 책방 보다 이곳에 오면 조금 저렴한 도매가로 한 번에 살 수 있었고, 여러 종류의 책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꽤나 있었고, '책구매'를 핑계 삼아 삼삼오오 친구들과 함께 근처 시내 구경도 덤으로 할 수 있었던 추억의 장소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책방 골목으로 유지 중이다.

케케묵은 뽀얀 먼지 쌓인 고전 도서부터, 옛날 잡지들, 두꺼운 사전들, 대학 전공책, 문제집 등 여러 종류의 책들을 즐비하게 쌓아 놓고 파는 서점들이 골목골목 가득한 거리.

예전만큼 북적거리는 골목의 느낌은 아니지만 켜켜이 쌓인 중고 서적들의 책냄새 먼지냄새를 맡으며 걷는 낭만을 잠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저 수많은 책들은 언제부터 저 자리에 있었을까?

누가 저 책을 읽었고 또 다른 '독자'를 위해 이 중고 서점에 진열되어 있을까?

다시 저 책을 사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래도 언젠가 누군가에겐 "쓰임 있는" 물건이 되리라 저 자리에 오래도록 포개져 있는 책들이 아닐까!


쓰임 있는 중고책


나는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가.

왜 이토록 오래도록 책상을 지키고 앉아 있는가.

마치 중고서점의 오래된 책처럼 "언젠가" 찾아주길 바라는 것처럼 버티고 앉아 있는 모양이다.

누가 '오래되고 낡은 나를 또 쓰겠는가'라는 생각으로 가늘고 길게 버티며 지내온 시간들인데,

감사하게도 이 나이, 이 연차에 새로운 업무가 내게 떨어졌다.

물론 자의와 타의가 반반 섞인 인사이동에 의한 변화 이긴 하지만,

그래도 '오래된' 나에게 주어진 선택과 변화에 마치 "쓰임 있는 중고책"이 된 기분이다.


책상 정리를 하면서, 나의 <보수동 책방 골목> 그림을 책상 앞에 두었다.

그림을 보며 쓰임 있는 중고책이 되었으니, 책장 한 구석에 웅크려 있지 않고 보다 더 열심히 먼지 쌓이지 않게 또 '버티어'보리라 다짐해 본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 - 그림 by 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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