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첫인상, 강렬했던 경험
나의 이탈리아의 첫인상은 어땠을 것 같아?
상상 속의 유럽, 상상 속의 이탈리아, TV나 영화에서나 보아온, 마치 동화 속 공주님들만 살 것 같은 아기자기한 예쁜 건물들 그리고 패셔너블한 남녀들이 거니는 거리, 그들이 만끽하는 여유 있는 야외 카페테라스의 오후, 그리고 진한 커피와 와인 한잔. 이 모든 것들이 유럽에 대한 나의 프로토타입의 로맨틱한 핑크빛 이미지였다. 내가 그곳을 여행한다니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두근거렸게, 얼마나 설렜었겠어.
그러나 여행을 떠나기 전, 계획 시작부터 각종 검색과 주변 지인들에게서 귀가 따갑게 들은 주의사항은 나의 핑크빛 이미지에 흐린 회색 그림자만 드리우게 하는 '소매치기 조심'등의 이야기였다.
- 가방은 무조건 앞으로 멜 것
- 휴대폰 분실 방지 줄 달아서 연결시켜 다닐 것
- 셀카봉 절대 안 됨
- 야외 식당에 앉을 때, 가방 끈을 다리에 넣어서 풀지 말고 먹을 것
- 여권 사진, 여권 사본 챙길 것
- 옷은 허름하게 입고 다닐 것
- 귀걸이 목걸이도 조심할 것
- 기차 탈 때 트렁크도 훔쳐가니 자전거 체인 꼭 챙길 것
- 그리고 공포스럽게도 베드버그가 있을 수 있으니 약 챙겨갈 것 등
뭐가 이렇게 '범죄도시'같은 나라일까. 여행 정보보다는 '소매치기 안 당하기 위한' 지침서만 잔뜩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회색빛 주의사항은 나의 설레는 핑크빛 낭만으로 가득한 여행을 크게 방해하진 못했다.
이렇게 나는 회색빛과 핑크빛이 공존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나의 유럽에서의 첫 경험은 뭐였는지 알아?
소매치기? 베드버그?
아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문 열기" 였다.
문 열기 미션 수행의 힘든 경험이 이탈리아에 대한 강렬한 첫인상 되어 버렸다.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환승을 한 후, 도착지 이탈리아 볼로냐 공항(마르코니 공항)엔 자정이 거의 다 된 시간에 도착했다. 숙소엔 이미 예약 단계부터 비행기 도착 시간이 늦어 체크인이 늦게 될 것이고 '노쇼'가 아니니 언제든 체크인 가능하게 조치해 달라고 사전에 요청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숙소 주인은 언제든지 체크인에 문제 생기면 24시간 대기하고 있을 테니 언제든 연락하라는 답변까지 받았었다. 거기까진 아주 좋았다.
그런데 숙소를 도착하니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처럼 "열려라 참깨" 문 열기 미션에 부딪혔다.
숙소 사장님은 총 3단계의 문 여는 방법을 자세히 메시지로 보내 주셨다.
1) 숙소 건물 입구 외관 문 여는 방법 - 비밀 번호 입력
2) 건물 3층의 문 여는 방법 - 비밀번호 4자리 입력 후 케이스 안에 든 토큰 열쇠로 열기
3) 숙박할 방문 여는 방법 - 비밀번호 4자리 입력 후 케이스 안에 든 열쇠로 열기
3단계의 문 열기. 뭐 쉽게 생각하자면 한국 아파트에도 주출입문에 비밀번호를 찍어서 들어가듯,
그렇게 여기 이곳도 주출입문과 현관문 등의 여러 단계별 열쇠가 있겠지 생각했다.
그리고 보물찾기 하듯 케이스에 보관되어 있는 열쇠를 비밀 번호로 열고 찾는 그런 시스템인가라며 아주 간단하고 쉬운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숙소 앞에 도착을 하니, 중세시대에서부터 사용했을법한 건물 약 2층 정도의 높이에 두껍고 커다란 나무 문의 압도적인 외관에서 절대 쉽게 열릴 문이 아님을 직감했다.
숙소 사장님의 지시대로 차분히 비밀 번호를 입력하니 "열려라 참깨"하듯 건물의 큰 나무 대문은 의외로 쉽게 열렸고, 신기하게 이 대문은 반 자동으로 비밀번호 입력 후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혔다.
여기까진 좋았지.
그런데 3층에 도착 후, 3층의 문을 열기 위해 케이스 안에서 장난감 같이 생긴 토큰으로 문을 열어야 했는데, 이 문은 도대체 어찌 여는 것인가. 딸깍 소리는 나는데 아무리 당기고 밀어도 문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정이 지나 새벽이 깊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숙소 사장님이 분명 24시간 대기하고 있을 테니 전화를 하라고 해서 전화를 시도했지만 전혀 응답이 없었다.
이러다 노숙이라도 하는 게 아닐까 , 아님 다른 숙소를 알아봐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계속 문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이리 댕기고 저리 밀어보던 찰나 문이 딸깍 열리는 게 아닌가. 가끔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한국인의 '안되면 되게 하라'가 통했던 듯.
그리고 마지막 3번째 문이 우릴 기다렸다.
보물찾기 케이스 안의 열쇠는, 실로 몇십 년 만에 보는 옛날 열쇠였다.
이 반갑지만 낯선 '옛날 열쇠'의 열쇠 구멍은 어느 정도 열쇠가 들어갔을 때 찰칵 걸리면서 열려야 하는데, 분명 뭔가 걸리긴 하는데 아무리 돌려도 또 돌려지지 않았다. 이거 뭐지? 제일 쉬울 줄 알았던 옛날열쇠 미션이 마지막까지 이렇게나 어러울 줄이야.
입구에서 망연자실 30분을 넘게 열쇠와 사투를 또 벌였다.
노숙을 해야 하나, 깊은 새벽 어딜 가나, 피로에 지친 우린 대충 그냥 살짝 반만 안으로 걸치듯 돌리니, 딸깍 문이 열리는 게 아닌가.
아 정말 조금 더 시간을 지체했다면 우린 남은 힘을 모두 쓰고 문을 부수고서라도 들어갈 마음이었는데.
우리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던 걸까.
우여곡절 끝의 문 열기 미션은 그렇게 해서 나의 강렬한 첫인상이 되어버렸다.
(* 이 숙소 문 열기 미션은, 이탈리아 여행이 끝나는 마지막까지 계속되었다. )
녹초가 된 우리는 짐은 대충 풀고 잠부터 청했다.
일단 다음 일정을 위해...
그리고 다음날 힘들었던 만큼이나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강렬했던 인상만큼이나 아름답지 않을 수가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