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임종을 아슬하게 못 지켰던 건, 그해 그날 하필 민방위 훈련으로 병원으로 내달려 가는 길,
20여분 택시 안에서 멈춰 있었던 그 시간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날 점심시간이 끝날 즈음, 병원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순간 난 주저앉고 말았었다.
갑작스러운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는, 치료도 온전히 받을 수 없을 만큼 안 좋으신 상태여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란 의사의 말에도, 설마 그렇게나 갑자기 빠른 시간에 우리와 이별을 할 줄 몰랐다.
회사에서 병원까진 약 한 시간 거리.
점심시간에 전화를 받고 잠시 주저앉았던 순간을 정신 차리고
팀장에게 보고를 하고, 그 즉시 회사를 나와 택시를 탔었다.
병원이 가까워 오는 거리 즈음, 갑작스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렸고 택시는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날이 하필 민방위 훈련 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길거리엔 조용히 움직임이 없었다.
차도 멈췄고, 간간히 지나다니던 행인들도 눈치 빠르게 어디론가 들어가 버렸다.
시간이 멈춰진 거리, 병원이 바로 조금만 더 가면 되는 그 도로에서 있었던
그 20여분의 시간이 내겐 가장 길고 안타깝고 눈물만 흘렀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내 기억엔 아버지의 마지막날이 그해 5월 15일로 (양력)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지인과 대화를 하면서, 연로해진 각자의 부모님의 건강 이야기와 언젠가 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그런 우리의 상황을 이야기하다, 내가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하소연을 푸는데, 그 지인이 폰으로 그해 달력을 다시 검색해 보더니, 그해 5월 15일은 일요일었다는 것이다.
응? 그럴 리가?? 내가 회사에 출근을 했었는데? 일요일이었을 리가 없었지.
그런데 다시 보고 또다시 봤다.
설마 그 똑똑한 스마트폰의 캘린더가 잘못될 리는 없겠지.
정말이지 그해의 5월 15일은 일요일이었다.
그럼 왜 민방위 훈련을 그 뒷날 했을까?
지인 말로는 아마 공무원 등등 휴일엔 근무를 안 하니 아마 그 뒷날 대체 훈련을
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정말 그랬을까? 그랬나 보다. 그랬었나 보다.
나의 그날의 그 순간의 기억은 생생하고 아직도 또렷한데,
아버지 가신날의 날짜 보다 민방위 훈련만 내 기억 속에 박힌 채 지내왔었던 거였어.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아버지 기일을 음력으로 지내왔기에,
당신 제삿날을 잘못 알고 제삿밥을 잘못 드시진 않았겠구나 싶은 마음이다. 나름의 위로일까?
기억이 그렇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그 기억의 오류는 누군가 결정적 증거를 들이대지 않는 이상
내가 기억하고 싶은 그것이 전체인 양 남아 있는 것이다.
기억의 오류
뭐 다 그런 거지.
이제 확실하다. 그해 5월 15일은 일요일이었단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