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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Apr 18. 2022

당신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만 힘든 거 아니잖아요.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모두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이 있다. 살면서 얼마나 힘든 일이 많으셨나요, 태어난 것에 감사하나요, 앞으로의 삶에 기대가 많으신가요. 비교적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날은 아무나 팔목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살아간다는 것이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막연하게는 알고 있는데, 아직 제대로  근거는 없어서.   눈으로 분명한 근거를 찾아야만 조금은     있을  같아서.


그러니까, 사실은 그 질문들의 대상은 타인이지만 그 목적은 나 자신인 것이다. 살면서 얼마나 힘드셨나요, 라는 질문은 '나만 힘든 거 아니죠?'라고 묻는 것, 태어난 것에 감사하나요, 라는 질문은 '나만 감사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은 아니죠?'라고 묻는 것.


가족과,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과, 대화를 무수히 나눠봤지만 그들이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아왔는지 파악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굳이 스스로가 힘들었던 경험을 토해내며 상대방을 괴롭히고 싶지 않을 테니까. 잘만 먹고 있는 술맛을 쓰게 만들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러므로 '나만 힘든 것은 아니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아도, 그것은 단지 구전에 의해서만 성립된 결론일 뿐인 것.


이때 내가 말하는 '삶이 힘들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가치를 비교하는 순간'을 말한다. 푼돈 500원을 용돈으로 받은 7살 아이가 먹고 싶은 두 개의 아이스크림 앞에서 절박한 고민을 하듯. 사는 게 나을까, 차라리 죽는 게 나을까.


나는 사실 주위 사람들이 회사에서 혼나거나, 취직에 실패하거나, 애인과 헤어지거나, 이런저런 안 좋은 일이 생겨 '우울하다'고 하면 당연히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는 의미인 줄 알았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평생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으니까. 별일 없어도 툭하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안 좋은 일이 가끔 생기면 더 심하고.


그런데 몇몇 친구들과 얘기해보니 그건 아니더라. 나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우울하다는 게 죽고 싶다는 거 아니었어? 겉으로 이렇게 내뱉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몇 번이고 놀랐다. 나만 그런 거였구나.


그래서 나는 주위 사람들의 감정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서라도. 나의 우울증이 그릇된 것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굳이 정신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상태라는 걸 깨닫기 위해.


브런치 제안 이메일도 좋고, 아래 쓰인 이메일도 괜찮다. 비록 당신의 얼굴은 모르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짧게라도 들려준다면 한 글자 한 글자 감사히 곱씹어 삼키겠다. 누구나 환영한다.




*당신의 우울했던, 힘들었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려주세요.

*이메일 : wlstjd21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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