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질 줄을 모르고 드리울 적에 봄은 한없이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다.
구름이 천장을 가득 메울 적에 하늘은 그대로 푸르게 있을 줄 알았다.
햇살이 따갑게 떨어질 적에 나는 영영 젖지 않을 줄 알았다.
책가방을 메고 어머니의 배웅을 받아 학교로 나설 때도,
이제 어른이라며 소주의 쓴 맛을 처음으로 느껴볼 때도,
어설픈 손짓으로 넥타이를 메어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도,
시계 초침이 흘러가는 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다.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달력만 넘기는 나의 모습이란 참으로 초라하여
물때 잔뜩 낀 거울로 비치는 나의 얼굴이란 참으로 안타까워
눈 감고 일어나면 돌아갈 수 있을까,
영원할 수 없는 모든 순간이 나를 비웃고 지나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