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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May 10. 2022

사주를 봤다


 친한 친구와 유명한 사주 집을 찾았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어 낯설었지만 생각보다 가벼운 분위기에 걱정을 내려놨다. 내 이름 석자와 태어난 시간을 무슨 처방전 쓰는 의사처럼 하얀 종이에 무언가를 휘갈기며 해석을 하더니, 그 결론을 하나씩 읊어주셨다.


내가 15살 때부터 우울증을 앓았던 것도, 20살부터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번 것도, 그 일을 나 때문이 아닌 가족 때문에 했다는 것도, 꽤나 많은 것들을 맞추셨다. 사주란 것이 애매하게 말해서 다 얻어걸리게끔 하는 거라던데, 글쎄, 내가 많이 순진해서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지만, 내 삶이 때려 맞출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하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이르면 29세, 늦어도 33세부터는 재물운이 풀릴 거라는 것. 다만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일이 계속 꼬일 수도 있고 우울증이 지속될 수 있단다. 아무렴, 듣던 와중 반가운 소리였다. 적어도 끝이 존재한다는 것만큼 내게 기쁜 소식은 없었다. 말 그대로 '믿거나 말거나' 식의 막연한 추측일 수 있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이리도 자세하게 좋은 소식을 전달한 적이 없기에, 그냥 근거 하나 필요 없이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이것도 나름 좋은 일이랍시고, 아버지에게 사주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 반응은 대충 이러했다. "너 같이 순진한 애들이 있어 사주 집이 돈을 번다." 그러게, 입담에 속아 고개를 끄덕인 걸지도. 원래 나는 개인적으로 종교도 안 믿고, 허구의 이야기는 잘 즐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의심 가득 안고 사주 집을 찾은 것은, 단지 그것이 거짓말이라도 좋은 소식을 듣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옥 같은 하루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혹여라도 존재할까 해서.


나는 단지 순진한 게 아니라, 순진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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