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경 Aug 02. 2020

나의 동창, 은수에게

안녕, 은수야? 나를 기억하니? 너와 중학교 동창이고,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해.

아마 너 역시 기억이 가물가물할 테지만, 그래도 네가 만약 이 일을 기억한다면  한 번은 얘기하고 싶었어.

중학교 2학년 때였어. 네가 누구의 친구였는지, 몇 반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내 친구의 친구였던 너를 알게 됐고 친구로서 너에게 호감을 가지게 됐어.

너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고, 앞머리가 없었고, 머릿결이 좋았고, 날씬했었지.

너의 눈매는 조금 올라갔고 코끝은 동글었고, 두 앞니가 귀엽게 살짝 겹쳐져 있었어.

너의 목소리는 밝았고,  명랑한 성격이었지. 이게 너에 대해 기억하는 전부야.

  

서로 인사를 하고 조금씩 얘기를 나누면서 가까워질 무렵 어느 날, 너는 나에게 체육시간인데 구두를 신고 왔다면서 운동화를 빌려갔어. 새로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운동화였고 그 당시 유행하던 스웨이드 스타일 재질의 검은색 운동화였어. 너와 친해지고 싶었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


그런데 그날, 너랑 내가 그 이후로 쭉 어색해질 수밖에 없게 된 일이 벌어진 거야. 너의 체육시간이 끝나고 나서 내가 나중에 신발장을 확인했을 때 내 운동화는 흙투성이에 너무나 낡고 해어져서 돌아와 있었지.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어. 그렇지만 당장에 너에게 가서 따질 용기는 없었어. 그래도 내가 얼마나 화가 나고 너에게 실망했는지 전하고 싶었어. "은수야, 내 운동화를 어떻게 그렇게 막 신을 수가 있니? 새 운동화인데 정말 너무하다" 이렇게 적힌 쪽지를 너에게 전해줬지.

그리고 너에게 답장이 왔어. "수경아. 미안해. 그런데 , 네 운동화 막 신지 않았어. 정말 조심스럽게 신었는데..."

하지만 너의 마음을 받아주기에 나의 실망감은 너무 컸던 것 같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고등학교도 같은 곳에 가게 됐어. 그리고 넌 여전히 친구의 또 다른 친구로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 우리는 학교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눈이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때 그 일 이후로 인사를 나누거나 말을 하지 않았어. 하지만 너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는 않았어. 그냥 별다른 감정이 없이 쟤는 내 친구 누구의 친구구나 정도로. 사실 내가 관심을 가질 다른 일들이 훨씬 더 많았으니까.


그런데 있잖아. 내가 성인이 되어서야 어느 날 문득 너와의 일이 기억난 거 있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됐어. 내 운동화가 엉망이 된 그날. 내가 붉으락푸르락한 그 얼굴로 교실에 들어왔을 때,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거든. 나와 성만 빼고 이름이 같은 아이였어. 그 아이가 살짝 민망한 듯 웃으며 내 눈치를 보는 듯했어. 그런데 그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몰랐어. 그때 우리 반만 그랬는지 잘 모르겠는데, 노는 아이들이 남의 운동화를 마치 유행처럼 훔치곤 했거든. 민망해하며 내 눈치를 보는 그 아이의 모습이 떠 오른 그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또다른 장면이 머리를 스쳤어. 그 아이가 그전에 나와 같은 운동화를 신었던 모습을 내눈으로 본적이 있었던 거야. 맞아. 바로 그 아이가 내 새 신발과 자기의 낡고 헌 신발을 바꿔치기한 거였어. 지금이라면 금방이라도 눈치챘을 그 일을, 나는 그때 전혀 몰랐어.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야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거야. 


만약, 내가 그때 그 일을 알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 반 다른 노는 친구가 나의 단짝 친구의 운동화를 훔쳤다가 학교 옆 산에서 결투를 였던 걸 잊을 수가 없어. 사전에 내 친구는 그 아이가 바꿔치기 한 운동화를 그 아이 머리에 던지면서 선전포고를 했고 방과 후에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그 광경을 목격했지. 말하자면 응원을 간 거였어. 체육부장이었던 내 친구는 그 아이를 한주먹에 물리쳤는데, 운동화를 돌려받았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아. 아마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겠지만 적어도 너에 대한 오해는 하지 않았을 테고, 어쩌면 너랑 더 친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은수야. 오래전 그때, 친구의 물건을 함부로 쓰는 못된 아이로 치부했던 나를 용서해줄래? 혹시라도 우리가 만나게 될 일이 있다면 웃으면서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 우리에게 있는 공통분모만으로도 어쩌면 재밌는 추억거리들이 이미 만들어져 있을 수도 있잖아. 벌써 네게 용서를 받은 것처럼, 너를 막 알게 됐던 그때의 기분 좋은 설렘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커버사진출처:https://kin-phinf.pstatic.net/20170628_222/1498628746221ph40i_JPEG/0.jpg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