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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웬디스 레드 May 25. 2022

맨다리의 계절

벗느냐 가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거리에 다양한 다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계절은 봄과 여름 사이 지만, 여름에 가까운 그 어딘가. 낮에는 땀이 송골송골 나듯이 덥고, 밤이나 새벽에는 초 봄처럼 아직은 바람이 찬 무렵이다. 이때 여성들의 옷 차림새는 하루의 그  온도대만큼이나 변화무쌍하다. 긴바지를 입는 이들을 제외하고서는, 몇몇은 최근 유행인 짧은 흰색 부츠를 꿋꿋이 신기도 하고, 다른 몇몇은 살색이나 흰색 스타킹을  걸쳐 신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눈에 띄는 이들은 맨다리를 한 그들이다. 여름이 성큼 다가온 사실을 알리듯이 많은 여자들이 짧은 치마나 바지 아래로 시원하게 맨다리를 드러내고 다니는 시기가 왔다. 그녀들의 패션은 과감하고 시원한 데다 멋져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화려한 그녀들과는 다르게, 한 개인의 종아리 패션 역사는 매우 단조로웠다. 상한 목적의식에 따라 패션  선택지가 제한되었었기 때문이다. 타고나길 하체가 튼실한 체형데, 무언가 수줍은 여성으로 보이고 싶었던 오랜 생각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원피스를 선호했고 바지는 꺼렸던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 왜냐하면 허벅지와 엉덩이에 살이 많은 소위 하체 비만 체형에게, 바지는 입어도 영 태가 안 나는 데다 역으로 우람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다리에 대한 패션으로는, 원피스를 입는데 어울리는 부수적인 옵션만이 남게 되었고, 구체적으로는 오로 신체의 미적인 보완이거나 아니면 아예 의복의 실용성에 치중한 2가지의 목적의 선택지만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리고 바로 겨울용 검은 스타킹 또는 여름용 맨다리였.


  겨울에는 데니아 80 이상의 쫀쫀하고 두꺼운 검은 스타킹으로 보온을 챙기는 동시에 날씬해 보이는 착시효과를 노렸으며, 여름에는 땀이 뻘뻘 나는 날씨에 질려 아예 미적인 부분을 포기하고 시원하게 다리를 노출하고 다녔. 때때로 살색 스타킹을 도전해볼 때도 있었지만 그는 아주 드문 경우였다. 왜냐하면 보통 살색 스타킹은 종아리 피부와 살결을 아주 조금 보완해주는 것 외에는 쓰잘데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워낙 얇다 보니 맨날 건조한 발꿈치에 걸려서 까지거나 의자나 조금만 튀어나온 부분에 걸려 구멍이 났었기 때문에, 형편없는 내구성에 그냥 신지 않기 일 수였다. 게다가 살색 스타킹은 그 색깔의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한 점이 단점이었다. 종아리만 눈에 띄게 거무죽죽한 커피색이 되거나 반대로 허옇게 떠버리는 경우가 많아, 그것을 제대로 신기까지 너무 많은 변수가 피곤하게 느껴졌다.


여름엔 다리라도 시원해야지!

 그래서 살색 스타킹을 던져버렸지만, 한편으로는 맨다리 패션에 대한 회의도 있었다. 아무리 삼복더위가 무섭다고는 하지만 맨다리 노출도 사실 만만치 않게 두려웠다. 특히 사실 예전에는 다리를 공개하는 것이 약점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전에는 신체 중에서  가장 예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부위가 허벅지와 종아리였다. 하지만 더위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헐벗은 다리를 노출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게 단순히 신체의 한 부분만이 아라, 심적으로도 치부였기에, 이숨길 수 없다는 사실이 꽤나 절망적이었기 때문이다. 즉, 여름은 약점을 가릴 수 없는 잔인한 계절이었다.


  더욱이 이 맨다리 패션에는 치명적인 허점이 있었다. 얼핏 생각해보면 치마에 맨다리라 통풍이 잘되어서 시원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머니께 물려받은 의문의 생각, 여자는 배가 따뜻해야 한다는 통념으로 시작하여 언제나 치마 안에 두껍고 딱 붙는 속바지를 입고 있었던 게 원인이다. 실제 속설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타이트한 속바지 조합은 실용성이 영 꽝이었다. 아무리 다리를 노출해도 무언가 내부에 열 가득 차 잘 시원하지가 않았다. 론 어쩌다 의도치 않은 주요 부위 노출로 남들에게 시각적 테러를 가하면 절대 안 되는 건 맞기도 하다. 다만 아이돌처럼 격렬한 춤을 추지도 않는데. 편안하고 헐렁한 속바지를 입었어도 일상생활에서 웬만해서는 보일 일이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는 확실히 지나친 기우가 아니었을까.


 다만 살다 보니 또 이런 두려움과 고민에서도 어느 정도 초연 해지더라. 름이 참을 수 없기 덥기도 하고, 무엇보다 조금씩 바지를 입기 시작하면서였다. 하늘하늘 소녀스러운 원피스를 뒤로 하고, 단이 펄럭 펄럭이는 헐렁한 바지라는 대안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요새는 10년 전과 같이 타이트한 스키니를 잘 입지도 않으니 이 통 넓은 바지 패션은 트렌디한 패션에도 부합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가 이 넓으니 상대적으로 다리도 좀 날씬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하여 맨다리 두꺼운 속바지로 인한 찌듯한 여름 조금이나마 작별을 고하게  . 리고 신체적으로 편안해지니 몸과 마음이 다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벌써 한낮에 30도를 넘는 시즌이 다가왔다. 무더운 여름을 맞이하여 조금 더 전한 종아리 패션을 선보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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