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cha Apr 30. 2024

런던 3년 차, How are you?의 의미를 깨닫다

드디어 런던에서 지내면서 느낀 이유 모를 따뜻함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2년 반 넘게 런던에서 지내면서 이유 모를 따뜻함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 정체가 무엇인지 드디어 알게 되었다. 이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미리 이야기해두고 싶다. '런던에서의 삶은 이렇다'가 아닌 '한국에서 오래 살다가 런던 살이를 하고 있는 한국인의 삶은 이럴 수 있다' 정도이다. 또한 내가 아주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러한 점들을 배우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 정체는, 언제 어디서 사람을 만나도 how are you? 혹은 (are) you alright? 하고 물어보는 것. 그다음, 안부를 물어봐 주어서 고맙다고 thanks (for asking) 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상대방에 따라 아주 솔직한 대답을 할지 말지는 자유이지만, 적어도 안부를 물어보는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있다는 점은 분명히 큰 차이를 만든다. 


나도 보통의 경우 상대방이 how are you 하고 물어보면 I'm good, 혹은 not too bad 정도로 대답하고 넘어간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과 이야기할 경우에 how are you는 거의 인사말 정도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대답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렇지만 회사 동료들이나 지인들과 이야기할 때에는 조금 다를 때가 있다. 특히 좋은 일이 있거나 아님 컨디션이 조금 안 좋을 경우 조금 더 길게 대답한다. 몸이 조금 안 좋은 날에  I'm feeling a bit unwell이라고 짧게라도 말하면, 굳이 내가 아프다고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 상태를 짧지만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다. 어제도 아침에 커피숍에서 한 번, 미팅에서 세 번, 매니저와 이야기하며 한 번, 남자친구와 인사하며 한 번, 적어도 6번은 상대방과 how are you? 를 서로 주고받았고, 덕분에 동료 중 한 명이 전쟁 같은 아침을 보냈다는 것을, 또 다른 동료가 두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how are you는 도대체 왜 물어보는 걸까? 항상 궁금했고, 아무도 그 이유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국인 영어 선생님들은 주로 "그냥 영어권에서 인사처럼 하는 거야"라고 대답했고, 영어가 모국어인 영어 선생님들은 "how are you라고 묻는 것이 당연한 문화이고, 조금 더 친절하게 인사하는 방법이야"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 모든 대답이 틀린 대답은 아니지만, 충분한 대답도 아니었다. 결국 이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은 런던에서 살면서 스스로 찾게 되었다. 


How are you?라고 물어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아무리 짧은 대화이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고 해도 대화를 하기 전에 상대방의 상태를 묻는 것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간단한 대화라고 해도 서로의 상태를 짧게나마 공유할 수 있다면, 상대를 조금 더 배려해 줄 수 있고, 위로하거나, 축하해 줄 수 있다. 그 작은 10초 정도의 인사들이 쌓여서 하루에 1-2분 정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들여다볼 수 있는 짧은 순간들'이 생기고, 하루에 1-2분 정도 대화하는 상대와 '서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예를 들어 커피숍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러 갔는데, 직원의 태도가 아주 퉁명스럽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 how are you? 하고 묻지 않는다면 "뭐야 왜 이렇게 퉁명스럽지?"하고 물음표의 상태에서 커피를 사야 한다. 하지만 how are you?라고 물어본다면 직원이 어떻게 대답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이유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적어도 생긴다. 만약 직원이 "I'm alright, but I've lost my wallet this morning"이라고 아침 출근길에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한다면 적어도 짧게 공감하고 직원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how are you? 는 단지 형식적인 인사 정도로 정의하기 어렵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던, 가까운 사람이던, 서로를 들여다보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혹은 서로를 들여다보는 습관으로 인해 생겨난 인사이다. 그리고 이 세 단어가, 런던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나에게 위로가 되고, 따뜻함이 되고, 기쁨이 되고, 슬픔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