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브랜드 협업 공간 ‘데어 바타테’
에디터. 장경림 사진. 최진보 자료. 더.워터멜론 the.WATERMELON
노트북 하나로 뭐든지 가능해진 시대. 딱히 집 밖을 나서지 않아도 물건을 구매하고, 강의를 듣고, 업무를 처리하는 일상적인 행위들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오프라인 영역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공간을 탐색하고, 저장하고, 시간을 내서 찾아간다.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이 주는 편리함과 비대면으로 가능한 일차원적 행위를 넘어, 공간을 통해 총체적인 ‘경험’을 원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 역시 온라인으로는 제공할 수 없는 고객 경험에 집중을 하고 있는 상황.
이런 현상에 발맞춰 오프라인에서 콘텐츠를 큐레이션하고, 공간의 물성을 살려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이들이 등장하고 있다. 요즘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꾸준히 자리 잡고 있는 키워드 중 하나는 ‘브랜드’. 글로벌 기업부터 1인 크리에이터까지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브랜드가 각광받고 있는 시대다. 하지만 대체 브랜드가 무엇인지, 정작 자신은 어떤 브랜드인지 단숨에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다.
누구나 브랜드를 만들 수 있고,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공간을 통해 총체적인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문화 공간 ‘데어 바타테der Batate’가 서울 성수동에 자리를 잡았다. 컨설팅뿐만 아니라 브랜드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일들을 펼치고 있는 더.워터멜론the.WATERMELON의 우승우, 차상우 공동 대표를 만나 데어바타테의 역할과 디지털 시대 속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우승우 브랜드와 관련된 다양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차상우 대표와 저는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회사에 있다가 함께 창업을 했어요. 브랜드라는 게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거고,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브랜드 민주화’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는 회사죠. 이 생각을 기반으로 여러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컨설팅, 커뮤니티, 플랫폼, 콘텐츠 등 하는 일이 다양해요. 말씀드린 비전 아래에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줄 수 있는 브랜드 회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차상우 저희가 하는 일 중 하나가 브랜드 커뮤니티 ‘비마이비Be my B’에요. 처음엔 브랜드 살롱이라는 취지로 큰 브랜드뿐만 아니라 작은 브랜드까지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소규모 모임이었죠. 주말 오전에 모여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작된 일인데, 규모가 커지다 보니 지금은 회원이 5000명 정도가 됐습니다. 커뮤니티 행사를 열기 위해 대관을 하다 보니 다음 모임까지 멤버를 연결할 수 있는 끈이 온라인밖에 없어 아쉽더라고요. 강연이나 모임이 끝나도 사람들 사이의 브랜드 경험을 총체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브랜드가 만나고, 브랜드끼리도 만나는 ‘연결’을 콘셉트로 하여 공간을 기획하게 됐죠. 모든 공간은 브랜드에 대한 온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우승우 맞아요. 정기적으로 커뮤니티 멤버들의 행사가 열리지만 기본적으로 데어 바타테는 네 개의 영역으로 공간을 나눠 전시나 클래스, 브랜드 컬래버레이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원한다면 누구든지 올 수 있는 공간이죠. 저희는 브랜드 컨설팅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 경험을 총체적으로 전달하는 일들을 하다 보니 이 공간도 그 연장선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승우 바타테Batate는 독일어로 고구마라는 뜻이에요. 저희가 브랜드를 다루는 사람이다 보니 공간의 특성과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이름을 짓고 싶었습니다. 공간이 지하에 있고,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장소다보니 처음에 나왔던 단어는 벙커bunker, 베이스먼트basement 같은 게 있었죠. 후보가 나쁘지는 않은데 재미가 없었어요. (웃음) 그러다 회사 이름이 수박(the.WATERMELON)이고, 서비스 중 하나로 아보카도abocado가 있으니 과일이나 채소 중에 찾다가 우연히 고구마가 나왔습니다.
차상우 이 공간은 사람과 브랜드의 연결을 지향하는데, 고구마가 한 줄기에 여러 개가 달려있잖아요. 고구마의 특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죠. 바로 쓰기엔 너무 직관적이라 세계 각국의 언어를 검색했어요. 브랜드를 이야기하는 곳이니 이왕이면 알파벳 B로 시작하는 단어로요. (웃음) 검색 중 라틴어 계에서 Batate를 발견해 정관사 the를 의미하는 der와 붙여 쓰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이 처음 보는 단어라 신선하기도 하고 상징적인 요소로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차상우 고구마로 일관된 콘셉트를 잡자고 했죠. 입구에는 삽을 걸어놓기도 하고, 전시를 보러 오시는 분들께 고구마 칩도 나눠드려요. 이 안에서 오감을 통해 공간을 경험하고, 기억하도록 의도했습니다. 지금은 공간에 어울리는 향도 개발하고 있어요. 우승우 두 사람이 서로의 클라이언트가 되면서 기획을 했습니다. 컨설팅 의뢰를 받아서 하는 일과, 우리 공간을 직접 만드는 과정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가진 리소스를 가지고 구현해야 하는 현실적인 부분이 있는 반면, 확고하게 보여드리고 싶은 부분도 있어서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했습니다. 이전에도 공간 컨설팅을 한 적이 있지만 시공이나 건축 쪽보다는 초기 단계에서 콘셉트를 잡는 정도였어요. 이번 경험을 통해서 저희도 많이 배웠습니다. 120평 규모를 온전히 저희만의 것으로 채워보니 자신감도 생기고요.
우승우 커뮤니티 행사 때 주로 이용하는 공간인데요. 세터 존Setter Zone이라 부릅니다. 멤버를 브랜드 세터라고 부르거든요. 브랜드 세션이나 강연을 하는 공간이고, 실제 브랜드를 대상으로 대관을 하기도 합니다. 지난달 포르쉐 코리아에서 대관해 행사를 진행을 하기도 했어요 . 맞은편에 전시가 열리고 있는 공간은 플레이어 존Player Zone입니다. 면적이 가장 크고, 주차장에서 연결도 돼요. 기본적으로 좋은 기획을 가지고 있지만 공간이 없어서, 있더라도 외진 곳에 있어서 공간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플리마켓이나 작은 행사를 열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에요. 지금처럼 브랜드 전시도 하죠. 앞으로 전시와 플리마켓, 소규모 영화제 같은 활동으로 채워질 예정입니다.
우승우 기본적으로 저희 회사와 커뮤니티의 방향성과 맞는 브랜드를 찾게 됩니다. 내부에서는 ‘브랜드적인 삶 ’이라고 표현하는데, 요즘 책이나 매체에서 자기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색깔이나 콘텐츠가 명확한 브랜드, 작게 시작하더라도 꾸준히 정체성을 보여주는 브랜드를 좋아하고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 저희 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죠. 요즘에는 어떤 브랜드가 재미있고 궁금한지요. 기능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선정 브랜드 카테고리는 크게 네 개로 나누고 있습니다. 대기업, 글로벌 기업, 스타트업, 스몰 브랜드나 1인 크리에이터들. 작은 브랜드가 저희 커뮤니티나 공간을 통해서 소개되고 퍼지게 된다면 저희에게도 의미가 크겠죠.
차상우 처음에 도출한 단어는 ‘브랜드 이니셔티브brand initiative’였습니다. 일차적으로 해석하자면 브랜드 자주성인데요.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회사에 다니면서 생긴 의문이 있었어요. 사업의 주체가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데, 왜 외부의 전문가에 의뢰를 하는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브랜드의 자주성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기업도 그런데, 작은 기업은 더 그렇겠죠. 브랜드 이니셔티브를 직접 주겠다는 생각을 공문화하다 보니 자주성이라기보단 브랜드 민주화라는 단어가 적절해보이더군요. 사실 ‘브랜드 데모크라티제이션brand democratization’의 의미가 아닌데 많이들 물어보세요. (웃음) 큰 기업부터 개인까지 나라는 브랜드가 무엇인지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이니셔티브를 주고 싶은 것이 목표기 때문에 ‘브랜드 민주화’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승우 맞습니다. 흔히 브랜드를 말하면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떠올리지만 이곳은 각 개인에게도 화두를 던지고 경험을 하게 하죠.
차상우 브랜드가 자칫 잘못하면 붕 떠있고, 실체가 없는 개념처럼 느껴지잖아요. 브랜드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그 개념을 땅에 닿게 하고 느끼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창업 전부터 했던 거 같아요. 저희가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생각하고, 스스로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업의 경우 정체성이 명확하다면 제품 제조부터 고객 접점, SNS 톤 앤 매너까지 전부 하나의 정체성에서 비롯되고,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게 되는데요. 개인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어떤 상황에 놓여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막막할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할 수 있다면 돌파구를 금방 찾게 되죠. 내가 잘못된 건지, 상황이 잘못된 건지도 금방 구별할 수 있고요. 자신이 어느 지점에 놓여있는지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업에게도, 개인의 삶에도 적용이 되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업에서 일관되게 ‘나’라는 브랜드를 알 수 있도록 일을 진행하고 있어요.
우승우 아직 어렵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브랜드를 다루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죠. 지난달에 데어 바타테에서 브랜드 세터들이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인상적인 자기 소개가 있었어요. 한 여성분이 이곳에서 전시를 우연히 보고 이솝Aēsop이라는 브랜드를 처음 알았다고, 그래서 정말 좋다고 하셨거든요. 그 말을 들으니 저희가 되려 좋았어요. 사실 이솝은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자주 언급하는 브랜드 중 하나잖아요. 브랜드 민주화가 이런 부분에서도 이루어진 게 아닐까요? (웃음)
차상우 온라인 세계에서는 SNS의 추천 알고리즘에 따라 관심 있는 분야만 계속 추천을 받게 됩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는데도 말이죠. 평소 브랜드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렇지만 자신만의 방식대로 삶을 가꾸고 계신 거죠. 이런 경계가 무너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차상우 에피소드까지는 아니지만, 코로나19로 현재 인터넷 예약을 통해 한 시간에 열 분씩만 입장하고 있어요. 한 번에 많은 분이 오시지는 못하더라도 연령과 성별을 파악할 수 있게 됐는데, 그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는 걸 느꼈어요. 이전에 해오던 커뮤니티의 경우 시즌권 가격에 부담을 느끼거나 30대 중반은 되어야 가는 곳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관심만 표하고 선뜻 참여하지 못하는 분도 있었거든요. 의도한 게 아닌데 문턱을 높게 느끼고 지켜만 보는 분들이 있었죠. 데어 바타테를 연 덕분에 비마이비라는 커뮤니티를 남녀노소 누구나 경험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해요. 전시도 무료거든요. 딸이 왔다가 좋아서 주말에 어머니랑 같이 오신다든지, 부녀나 모자지간에도 많이 오세요. 공간을 통해 문턱을 낮출 수 있게 됐어요.
우승우 커뮤니티 멤버들은 목적성을 가지고 알고 방문하지만, 브랜드 전시나 대관을 하다 보니 ‘서울 전시’라는 키워드로 검색하고 오시기도 해요. 성수동 카페 거리에 있어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어오기도 하시고요. 저희가 기존에 수용하던 분들보다 계층도 훨씬 넓어지고, 다양해졌습니다.
차상우 저희가 쓴 디지털 시대와 노는 법이라는 책에서도 같은 화두로 많은 고민을 했어요. 저희만의 가설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디지털 시대에는 어떤 브랜딩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직접 했습니다. 거기서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어요. 요즘 초등학생은 실제 물건의 정보는 온라인에서 얻지만 구매는 오프라인에서 했고, 그 현상이 고등학생까지 이어졌죠. 왜 그런지 확인을 해봤더니 온라인에서 정보를 얻더라도 구매 행위 자체에 대한 행복감과, 사는 경험에 대한 니즈needs가 어린 친구들에게 많았습니다. 저희 같은 3040세대들은 이미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많이 구매를 해봤고 그것을 경험이 아닌 행위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반면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세대인 친구들은 물건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사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거죠.
우승우 그렇죠. 저희도 데어 바타테를 만들면서 총체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를 인터뷰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들도 오프라인 경험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거든요. 그게 디지털 시대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이고, 오프라인을 브랜딩에 활용하는 법인 거죠. 디지털 시대라고 해서 모든 게 디지털화 되어야 하는지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오히려 온라인이 더 강화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차상우 일례로 어떤 사람과 특정한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대화가 잘 돼서 실제로 가봤는지 물으면 안 가본 경우가 꽤 많아요. (웃음) SNS 검색이나 기사, 사진으로 충분히 공간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하지만 이런 건 온전한 경험이 아닌 가짜 경험이에요. 디지털 세상으로 가면 갈수록 공간에 대한 니즈가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는 행위같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공간을 가는 게 아니라, 경험의 장소로 여기는 거죠. 식당도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가는 게 아니고 먹는 경험을 위해 가게 되고요. ‘도산분식’에 줄을 서서 먹는 이유도 요즘 세대에게 초록색 멜라민 접시에 담긴 떡볶이와 오렌지 주스 병에 담긴 물이 생소하기 때문에 하나의 경험이 되는 게 아닐까요? 이건 인간의 본능과도 연관된 거라 생각해요. 오감으로 느끼고, 만나서 교감을 하고, 경험을 흡수하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에 앞으로 오프라인 공간은 더 강화될 것이고, 이것은 수가 아닌 질적인 강화라고 봅니다.
차상우 사실 공간 하나 만드는 데 고려해야 할 부분이 무척 많아요. 먼지 하나부터 온도와 습도같이 세세한 부분도 전부 신경을 써야 하죠. 그런 것들을 신경 쓰다 보면 공간이란 게 엄청난 투자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든 이유는 ‘누구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저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화룡점정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승우 앞서 말한 이야기의 요약일 것 같네요. 저희가 말하는 ‘브랜드적인 삶’을 살게 하고, 우리 모두가 브랜드가 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랍니다. 브랜드에 대한 온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 생각되고요. 메이커가 되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전시를 통해 느껴보고, 플리마켓에서 팔아보기도 하고요. 이런 지향점을 실천하는 공간으로서 작용하길 바라고, ‘브랜드라는 게 사실은 별거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모두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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