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 your space] ⑤ 정리 수납 서비스 ‘덤인'
에디터. 박종우 사진. 이동웅 자료. 주식회사 덤인
분명히 집 안에 있는 걸 본 옷인데, 오늘 입으려고 보면 찾을 수 없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내가 직접 골라서 산 물건임에도 다른 물건들 사이에 묻혀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일상에서 종종 발생한다.
이같은 생활 속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정리 수납 서비스가 등장했다. 현재 방영 중인 tvN 예능 ‹신박한 정리›에도 정리 수납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컨설턴트가 나와 큰 활약상을 보인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이미 20~30년 전부터 정리 수납 서비스를 전담하는 전문 기업들이 활동해 왔다. 이들은 주로 주거 공간이나 상업 공간 내 물건을 재분류해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업무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최근 일본에서는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가 정리 컨설팅과 정리법 책을 출간하고 2019년에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미국인의 집 정리 컨설팅을 진행했다.
TV 프로그램 소재로 쓰일 정도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는 정리 수납 서비스. 전문가의 손으로 하는 정리정돈과 우리가 막연히 알고있는 정리정돈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정리 수납 서비스는 현재 얼마나 성장 중일까?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한국정리수납협회 회장이자 정리 수납 서비스 전문기업 ‘덤인’을 이끌고 있는 정경자 대표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정리 수납 서비스는 공간 안에 어지럽게 놓인 물건을 분류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버리고, 필요한 물건은 용도와 사용 정도에 따라 위치를 정하는 작업이다. 서비스를 크게 나누자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와 개인 집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로 구분할 수 있는데 추구하는 목적이 각각 다르다. 주택 대상 서비스는 공간은 넓게, 거주자의 생활은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것, 기업
대상 서비스는 업무의 효율을 높이고 매출을 높이는 데 있다.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이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두 서비스는 목적과 방향성이 확연히 다르다.
기업 대상 정리 수납 서비스는 주로 사무실이나 점포 내부를 정리한다. 사무실이라면 종이 서류 정리부터 컴퓨터 안의 서류 파일 정리, 사무 용품 정리 등을 진행한다. 사무실에서 업무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서류를 찾아야 하는 상황. 빠르게 서류를 전달해야 하는데 담당자 본인만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 서류가 어지럽게 놓여있다면 어떨까? 정리 수납 서비스를 통해 업무 담당자가 없더라도 필요할 때 누구나 빠르게 서류를 찾는게 가능하다면, 분명 업무 효율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사소해보여도
업무가 진행되는 과정을 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점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품이 한눈에 보기 어렵다면, 소비자는 원하는 상품을 구매하기 어렵고, 판매자는 제품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리 수납 서비스를 통해 제품을 한눈에 보기 쉽게 재배치함으로써, 상품 판매와 관리를 손쉽게 할 수 있다. 이처럼 기업 대상 정리 수납 서비스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업무 효율과 매출 향상에 있다.
주택 대상 정리 수납 서비스는 영역별로 나누어 진행한다. 주거공간 전체를 진행할 수도 있고, 필요한 영역별로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고객 가족의 생활 패턴과 환경 분석을 마친 뒤, 6~7명이 한꺼번에 집에서 8~9시간 동안 정리 수납 서비스를 진행한다. 해외의 정리 수납 서비스는 2~3명이 하루 이상 작업하는데 비해, 덤인은 하루 안에 모든 정리 수납 서비스를 완료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한국인들의 정서 상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집을 낯선 사람들이 여러 번 드나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정경자 대표가 한국에 맞게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바꾼 부분이다.
정경자 대표는 2003년 덤인을 창업해 업의 기반을 다져왔고, 2011년에는 한국정리수납협회를 설립해 현재까지 약 11만 명의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해왔다.
제가 2002년에 캐나다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그 당시에도 정리 수납 전문가들은 미국, 유럽, 캐나다 등지에서 이미 오랫동안 인정받아온 전문직이었어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일본, 미국, 유럽에서 정리 수납 서비스가 존재하는 걸 알게 되니, 우리나라에서도 이 서비스가 조만간 필요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어요. 우리나라도 구매 패턴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과거에는 옷 하나 사려면 옷가게에 직접 가야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으로 구매해요. 버튼 하나만 누르면
티셔츠 다섯 벌, 속옷 열 벌이 세트로 집으로 오죠. 그러다 보면 집에 물건이 너무 많아져요. 집에 물건들이 많이 채워지다 보면, 사람들은 물건을 구입할 때만 돈을 쓰는게 아니라 물건을 정리할 때도 돈을 쓸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리만 전문적으로 해 줄 전문가가 필요한 거죠. 정리 수납 서비스 산업이 우리나라에도 자리잡을 날이 곧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맞아요. 당시 선진국들에는 이미 있었어요. 그리고 제 생각이지만, 대부분의 트렌드가 미국과 유럽에서 일본, 한국, 중국 순으로 전달된다고 봐요. 정리 수납 서비스도 마찬가지였어요. 미국, 유럽에도 있었고 일본에도 이 서비스가 워낙 발달해있었죠. 한국에 올 차례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정리정돈은 누구나 할 줄 알잖아요. 일반인의 정리정돈과 전문가의 정리정돈이 확실히 다르다는 걸 강조해야 했어요. 그래서 ‘시스템 정리 수납’이라는 단어를 만들어서 쓰기 시작했어요. 단순히 지저분한 공간을 치우는 걸 넘어, 정리의 ‘시스템’을 만들어 준다는 의미였어요. 어느 공간에 어떤 물건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한다는 체계가 잡혀있다면, 전문가가 떠난 뒤에도 시스템에 맞춰 혼자서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겠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전문가의 역할이죠.
‘업테리어Upterior’는 제가 만든 말이에요. 인테리어의 가치를 업그레이드한다는 의미에서 업테리어라는 말을 만들었어요. 정리가 잘 되지 않으면 아무리 비싼 인테리어라도 그 가치가 떨어지잖아요. 정리 수납 서비스를 업테리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인식되도록 만들었죠.
원래 맞벌이 부부가 가장 많았어요.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죠. 정리가 제대로 안 되서 집에서 쉬어야 할 때 자꾸 옷과 물건 찾는데 시간을 쓰게 되다 보니, 차라리 전문가한테 맡기고 쉬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연령대 폭이 넓어졌어요. 혼자 사는 젊은이들도 늘었고요. 자신이 잘 하지도 못하는 일에 하루종일 시간을 쏟느니 차라리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자녀들이 부모님 집을 정리해달라고 의뢰하는 경우도 많아요. 자신들이 바쁘다보니 대신 저희한테 부탁하는 거죠. 요즘엔 고객 구성이 훨씬 다양해졌어요.
고객 중에 따님이 어머니 집을 정리해달라고 의뢰가 온 적이 있었어요. 당시 어머니는 일종의 저장 강박증*을 앓고 계셨던 것 같아요. 자식들을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니 자식들과 관계된 물건들을 모으는 데 집착하셨어요. 그렇다 보니 처음에 저희가 정리하러 갔을 때는 아무것도 못 버리게 하셨어요. 그러다 오후쯤 돼서 집이 어느정도 정리되는 게 보이셨는지, 나중에는 어머님 본인께서 버려도 된다고 직접 물건들을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집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는 걸 보니, 정리 수납이라는 게 한 가족의 삶을 바꾸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하는 저희들도 만족도가 높고, 고객들도 만족도가 무척 높아요.
*저장 강박증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어떤 물건이든지 버리지 못하고 저장해 두는 강박장애의 한 가지.
확실히 느끼고 있죠. 예전에는 아예 이 일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얼마만큼 돈을 지불해야 하는지 이해도 없었죠. 그냥 가사도우미 한두 명이 와서 집 청소 해주는 줄 알았다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웃음) 그런데 저희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들이 점차 많아지다보니 인식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 서비스를 가족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한다거나, 자식들이 부모님에게 선물해요.
기업에서 고객에게 서비스 이용권을 선물하기도 해요. 일부 아파트 건설사에서는 입주민들에게 서비스로 제공한다고 해요. 이렇게 정리 수납 서비스 자체를 선물처럼 이용하는 경향도 있어요.
처음에 사람들이 물건이 필요해서 구입했는데, 나중에는 물건에게 공격받아요. 처치곤란한 물건이 집에 쌓이는 만큼 스트레스가 쌓이죠. 예를 들어 예쁜 화분을 하나 구입해서 식물을 키우면 처음에는 좋지만, 잘못 키워서 죽어간다면 화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요. 깨지기라도 하면 정리하기도 어렵고. 옛날에는 이런 정리가 전부 엄마의 역할이었는데, 요즘엔 달라지고 있죠. 그러니 전문가가 필요한 거고요.
사람들이 점차 자기가 못하는 정리를 힘들게 하느라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반찬을 사먹거나 밖에서 음식을 사먹는다는 건 아주 몹쓸 일이었어요. 김치를 사서 먹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죠. 전부 다 집에서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나보다 음식을 훨씬 더 잘 만드는 전문가에게 맡겨서 사먹는 게 자연스러워요. 정리 수납 서비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시대가 달라지고 트렌드가 변하고 있죠. 나는 내가 잘 하는 걸 하고, 내가 못하는 건 전문가가 하는 거죠.
코로나19가 한창 심각했던 초창기에는 고객들이 아예 저희가 집에 오지도 못하게 했어요. 그땐 정말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오히려 정리 수납 서비스를 더 많이 받으려고 하세요. 온 가족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니 그만큼 눈에 띄고 신경 쓰이는 것들이 많아지잖아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그만큼 집을 더 넓고 깨끗하게
사용하고 싶어진 거예요. 그리고 요새 저희는 정리 수납 서비스와 함께 방역 서비스도 추가로 하고 있어요. 고객들 반응도 더 좋아졌어요.
최근 들어 공공기관을 통해 장애인 및 저소득층의 주거 환경 개선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많이 와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주거
환경이 청결하지 않으면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그리고 이분들은 집이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사는 데 너무 불편함을 많이 겪게 돼요. 아파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나서 집에 왔는데, 집이 지저분하면 병원 치료가 사실상 큰 의미가 없어져요. 주거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계속 병원을 왔다갔다 해야 돼요. 이분들의 집을 정리하고 시스템을 구축해서 주거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요청이 오는 게 요즘 들어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에요.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워진 지역 소상공인 점포의 주방 관리를 도와달라는 의뢰도 있어요. 전염병으로 인해 주방의 위생과 식품 관리가 굉장히 중요해졌는데, 정리나 위생 관련 전문 지식이 없다면 하기 어려운 일이죠. 이 또한 최근 새롭게 발견한 저희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에요.
덤인이 내년 6월에 세텍SETEC에서 정리 수납 박람회를 세계 최초로 개최하게 됐어요. 박람회와 함께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을 초빙해 국제 컨퍼런스도 진행할 계획이에요. 만일 그 때까지도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심각하다면,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미국, 캐나다, 중국에도 덤인 지점을 내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해외에 저희 시스템을 내보내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이 있어요. 아이들을 위해 정리법을 알려주는 동화책도 출간했고, 중국 출간을 위해 번역 중이에요.
처음부터 이 직업이 가사도우미 같은 단순 청소 서비스로 오해받으면 어떡하나 많이 고민했어요. 그래서 이 직업을 고도로 전문화하고 싶었어요. 책을 쓰고 박람회를 여는 것도 이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높게 평가하고 자부심을 갖게 만들고 싶어서였어요. 저희는 그저 옷 정리하고 그릇 정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질서를 잡고 공간의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들이니까요. 정리 습관으로 사람들에게 삶의 변화를 주는 게 저희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책 자세히 보기 https://magazine.brique.co/book/vol-5/
<브리크 brique> 더 많은 사진과 원문 보러가기 : https://bit.ly/3mExUZ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