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PD를 꿈꾼 이유
회사에 취직할 때, 꼭 필요한 자기소개서. 빠지지 않는 항목은 바로 지원동기다. 굳이 왜 이곳에 들어오려는지 적어야 하며 라디오 PD가 되려는 이유도 빠질 수 없다. 나는 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을까. 막연하게 라디오 방송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럼 왜 좋아하게 되었을까. 여기에 대한 명확한 기억은 없다.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들었던 심야 라디오의 감성이 좋았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불어 아무 조건 없이 “ 괜찮아”라는 말을 건네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교내 방송국에 들어갔다. 당시에도 PD가 아니라 엔지니어로 들어갔다. “ 기술이 있어야 밥 먹고 산다”는 어른들의 말이 아른거려 선택했다. PD인 친구의 일들이 부러워 보이면서도 막상 해볼 용기는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6시에 생방송으로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다. 혼나면서 배웠던 콘솔을 통해 아나운서의 멘트와 음악은 캠퍼스에 울려 퍼졌다. 옆에 창문을 열어두었는데 봄과 여름 사이에 따뜻하고 선선한 날씨였다. 맑은 하늘과 불그스름한 노을 그리고 바람. 스피커에 흘러나오는 음악과 신나게 따라 부르는 학생들. 그때 나는 일면식도 없는 타인들에게 음악으로 멘트로 어우러진 라디오 방송으로 만나고 있었다. 몇 해 전 라디오를 통해 내가 받았던 위로처럼 말이다.
사실 입사를 위한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진심보다는 번지르르한 포장지에 더 신경을 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대로 적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라디오 PD가 되고 나서도 방황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원하던 금덩이를 가졌지만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라 실망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다 코로나19에 걸리고 생각했다. “ 지금이 그렇게도 싫은가”. 라디오 방송일이 힘든 게 아니라 회사생활이 고되었다.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었지만 나는 하나로 보았다. 그러니 좋은 것도 싫게 보였다. 더불어 지금에 안주하고 적당히 만족할까 봐 무서웠다.
아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꾸준하게 쓸 수 있을지 고민도 많았지만 기우였다. 그간 흰 종이에 생각을 옮겨담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무섭고 두려운 것도 많은 나의 보기 싫은 단면의 모습을 보았다. 아주 조금은 스스로에게 솔직한 시간이었다. 적어도 타인에게 잘 보이려는 생각으로 쓴 건 아니기에. 자네 나그네의 시리즈 1 <나는 라디오 PD다>는 이를 끝으로 마무리한다. 그동안 글을 쓴 나에게도 보아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P.S
시리즈 2는 곧 돌아옵니다!
* 사진출처
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