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사기로 마음먹은 뒤, 내가 마주한 첫 관문
이젠 진짜 집을 사야겠다.
마음을 먹은 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매물을 보러 가는 것이다. 그간 드문드문 관심 있는 지역에 매물을 보러 다니긴 했지만, 그땐 ‘계약금 쏠게요’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난 내가 사려고 마음을 먹은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진짜 사야겠단 마음이 들고 나니, 그때 먹은 마음은 두려움에 가득 찬 가짜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얼마까지 쓸 수 있는지 가용 자금을 알았지만, 진짜 이 중에서 정말 어디까지 쓸 건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 마음에 드는 매물이 없었을 수도 있고, 아니 이 것도 변명이다. 그보다도 좀 더 기회의 시간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뤄왔다. 그 기회의 시간이 남았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내가 살 수 있는 아파트의 급지는 점점 낮아져 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결국 난 기회를 날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회가 날아가고 있는 걸 몇 년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마음이 든 것이다. ‘조급함’이란 표현이 맞겠다. 부동산은 심리전이라더니 나 역시 그 심리전에 말려들고 만 걸까.
매물을 보려면 부동산에 전화를 해야 한다. 40대라면 응당 뭐든 다 할 줄 아는 어른인 줄 알았다. 그것도 꽤나 영근 어른. 40대 초입인 나는 여전히 어리숙한 어른이다. 부동산에 전화해서 이것저것 묻기 전에 많은 생각이 나를 압도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생각하면 어쩌지? 뭐부터 말해야 하지? 안 살 것처럼 보면 어떡하지?... ‘
남일이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바보 같은 행동도 없는데,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왜 그리도 어렵던지. 이제 진짜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거는 부동산으로의 첫 전화.
‘제가 0억이 있는데, 사이트에 올라온 이 매물은 전세가 얼만가요?’ 무슨 말을 먼저 시작해야 할지 고민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사장님의 대답과 함께 몇 개의 질문과 답이 오고 간 뒤, 본인이 지금 병원이라며 나중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음. 나 안 살 거 같았나, 나 진짜 돈 있는데. 주변이 시끄러운 거 보면 진짜 병원 같긴 했는데. 아닌가? 귀찮아서 끊었나?...’
첫 전화의 끝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도 어렵던지. 이런 성격의 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연이 닿지 않으면 평생에 볼 일도 없는 사람인데, 단지 서로의 필요에 의해 거래를 하는 사람들인데.. 나는 항상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 그게 늘 그렇게나 고민이었다.
다음 부동산에 전화를 넣는데도 꼬박 하루가 넘게 걸렸다. 뭘 물어볼지 적어보고도, ‘이렇게 말해도 되나, 내가 이런 상황인걸 다 말해도 되나, 물건 보는 걸 예약을 해야 되는 건가, 여기부터 전화하는 게 맞나?..’
때론 생각이 많은 것이 신중함을 넘어 행동력을 저하시킨다. 예전에는 이런 과정의 반복으로 다시 포기의 수순으로 갔었지만 이번에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또 다른 곳에 전화, 또또 다른 곳에 전화를 돌렸다. 차차 전화하는 일이 처음만큼 그렇게 망설여지지는 않게 되었다. 어떤 때는 재미있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전화를 걸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전화를 끊고 나면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얼마예요? 물건 상태 어때요? 전세는 언제 나가나요? 갱신권은 쓴 건가요? 이 물건 언제 볼 수 있나요?’
질문은 사실 뻔했다. 나의 낮은 레벨의 상태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전화만 가지고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애초에 있기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동안의 고민을 끌어내던 많은 생각들은 닥쳐서 행동하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들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엄청난 정보를 사장님이 줄리가 없었다. (물론 고수들은 해내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부동산에 가서 매물보고 서로 대화를 나눠야, 아 이 사람 잠재 고객이구나 라는 인식이 사장님에게 생기지 않겠는가.
몇 번의 전화를 해보니, 사장님 성향과 시장의 온도에 따라 대화의 종류는 나뉘었다. 어느 사장님은 묻지도 않았는데, 술술술 요즘 이렇고 저렇고 어젠 누가 이랬고, 내일은 누가 올 거고 이야기해 주는 분도 계셨다. 반면에 어느 사장님은 지친 목소리로 매수인은 더 깎으려 하고 매도인은 자칫하단 그나마 있던 매물조차 거둔다면서 조율이 어렵다며 아예 물건 보여주기를 거부하는 분도 계셨다. 소위 핫한 지역 사장님들이 대부분 지쳐있었고, 최근 주춤했던 곳들의 사장님들은 대부분 적극적이셨다. 물론 그중에서도 사장님 성향 따라 대응이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투자 전문가도 아니고, 그저 노후 준비 목적으로 자산 헷지를 위한 자그마한 투자로서 하나의 단계를 넘어가고 있을 뿐이다. 전화번호 누르고 통화버튼 누르기와 종료하기까지, 그 단순한 과정의 반복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타인과 통화가 유독 어려운 나에게 이 과정이 알려준 건 부동산 투자의 고급 스킬이 아니라, 두려움은 그저 행동으로만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알 수 있던 사실은, 앞으로 예측할 수 없는 더 많은 두려움과 맞서야 할 테고, 그 과정을 겪어내면서 나도 언젠가 영글어진 어른이 될 거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