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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다 Mar 27. 2021

13년 간의 다이어트를 중단하다.


 나의 첫 다이어트는 15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날씬해본 적은 없었지만 뚱뚱한 적도 없었다.  볼살이 통통한 그저 보통 체격의 여학생이였다. 그 당시 '아이돌' 전성시대였고 마르고 예쁜 여자 아이돌들은딱 붙는 크롭티에 스키니진을 입고 미디어에 나왔다. 많은 여학생들이 아이돌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여성의 ‘마름'에 초점을 두게 되었고, 나 또한 그 때 무리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당시 163cm정도에 50kg 초중반이였던 나는, 고구마와 토마토만 먹으며 무식하게 굶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한창 자랄 성장기에 식사량을 확 줄이니 살은 무서울 정도로 쭉쭉 빠졌다. 한 달만에 약 45kg정도까지 빠졌었다. 여름 방학 기간동안 뺐었는데, 이 당시 몇 번이나 식은땀을 흘리며 기절했었다. 눈 감았다 뜨면 침대에 누워있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너무 어렸고, 쓰러진다는 것에 대한 자각조차 제대로 못했었다.


 무리한 다이어트를 오래 지속할 수 없었다. 반 년정도 거의 안먹다시피하며 유지를 하다가, 겨울 방학 때 식욕이 터져버렸다. 날은 춥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눈 앞의 음식들을 주체하지 못했다. 배가 불러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결국 겨울방학 한 달동안 뺐던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이 쪘다. 작아진 교복이 너무 끼여서 숨을 쉬기가 힘들정도였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대학생이 되었다. 혼자 살게 되니 자연스럽게 먹는 걸 제대로 못 챙겨먹었고 살은 빠지기 시작했다. 23살 쯤, 제대로 못 먹고 운동만 많이 했더니 살이 엄청 빠졌다. 그 당시 약 1년정도 생리를 안했다.  그래도 나는 날씬한 내 모습에 만족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직장생활을 하며 또 다시 살이 쪘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폭식, 과식, 음주를 일 삼았고 몸이 많이 망가졌다. 165cm에 50kg 후반까지 살이 쪘었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서, 정신을 차리고 식이조절을 시작했다.


사실 직장 생활로 얻은 위장병으로 인해 많이 먹기도 힘들 지경이였다. 3끼를 다이어트식으로 바꾸니 살이 쭉쭉 빠졌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빠지니 몸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역시나 생리도 멈췄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서 지방이 너무 적어 생리를 안하는 것이라며건강하게 살을 찌우는게 어떻겠냐고 권하셨다. 조금씩 먹는양을 늘렸고 살이 붙었다. 약 1년만에 자연적으로 생리를 하게 됐다.


 웃긴 것은 중학교 이후 이 때까지, 평생 다이어트를 멈춰본 적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살이 조금 붙었어도 50kg 초중반대고, 누가 봐도 통통한 몸도 아니다. 날씬한 몸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다이어트를 한다. 살을 빼고싶어 한다. 계속해서 식이조절을 하고, 식욕을 참지 못해 많이 먹고 죄책감에 괴로워 한다. 또 조금만 배가 부르면 위가 쪼이고 명치가 아프다. 평생 나를 괴롭혀온 만성적인 위염이 나를 또 힘들게 한다.


 최근 2주정도 또 살을 빼볼거라며 간헐적 단식을 시작했다. 역시나, 위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긴 공복시간 후 먹는 음식물들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했다. 잦은 트림과 두통, 구역질 등 위염의 증상들이 또 시작됐다. 하루종일 속이 안좋으면 컨디션도 안좋다. 며칠을 그렇게 지내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한의원을 갔다. 한의사 선생님께 대략적인 증상을 말하고 진료를 받았다. 위가 아프다고 이야기했는데 아랫배의 양쪽을 누르시더니 "어때요?"하고 물으신다. 스친 정도인 것 같은데 너무 아팠다. 너무 아프다고 소리쳤더니, 몸의 긴장도가 너무 높아 아랫배에 꽉 막혀있다고 했다. 아랫배에서 꽉 쪼이고 있으니 위에 있는 음식물이 내려갈리 없고, 횡경막이 제대로 내려가질 않아 숨이 가쁜거라고 하셨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의 3박자가 무너져있다"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들으시더니 본인에게 조금만 너그러워지면 어떻겠냐며 딱 1주일동안만 먹고 싶은 거 적당히 먹고, 운동을 멈추고, 알람 끄고 푹 자라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아무리 말해도 그렇게 안 할거 알아요."라며 정확히 꿰뚫어 보셨다..



 나는 스스로 너무 잘 먹고, 잘 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였던 것이다.원하는만큼 먹지 못하기에 항상 마음 속에는 억제된 식욕이 날뛰고 있었고, 잘 잔다고 생각했지만, 몸의 긴장도가 항상 높아서 질 높은 수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지금도 뺄 살이 없는데 살을 빼려고 애쓰니 몸에서 탈이 난다고 하셨다. 살이 찌면 식사량만 조금 조절하면 되니 우선은 몸의 긴장도를 낮추는게 우선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그렇게 예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무척 예민한 편이라고 하셨다. 한의사 선생님께서 치료 난이도 최상이라며... 몸도 몸이지만 마음부터 치료해야한다고 하셨다.


생각과 몸이 따로 놀면그 사이에서 마음이 몹시 괴롭다.




 내가 그간 괴로웠던 이유는 이처럼 다이어트를 해야한다는 생각과 그것을 따르지 못하는 몸 사이에서 허우적대며 마음을 힘들게 했기 때문임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부로 13년 간의 다이어트를 중단하기로 했다. 배고프면 먹고, 배 안고프면 안 먹고 맵든 짜든 달든, 일단 땡기는 데로 먹어보기로 했다. 남편과 5월에 바디 프로필을 찍기로한 게 생각이 나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생각과 몸 사이에서 힘들었을 마음부터 달래주기로 했다. 더 이상 방치하면 내 마음이 또 어디로 튈지 모르니,


 우리 나라 여성의 약 90%가 다이어트를 하거나 해본 경험이 있다는 조사를 본 적이 있다. 주위에서 다이어트 안해본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다. 아마 이 중 나처럼 마음이 많이 아픈 여성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글쎄, 나는 한 개인의 문제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먹고 싶은 음식 앞에서 끝없이 스스로와 싸우고  미디어 속의 날씬한 그들과 비교하며 투쟁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그거 하나 먹는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으며 살이 찌든 빠지든 여러분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가치로우니. 물론 이건 나 스스로한테도 하는 말이다.


 많은 분들의 몸과 생각과 마음이 가벼워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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