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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다 Nov 18. 2022

내 아이가 손목을 그었다 1

엄마 잠이 와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원래 잠이 많은 아이라 중학생이 되어도 밤 9시 이전에 자는 일이 흔했고, 가끔 주말이 되면 12시간 넘게 자는 일도 종종 있었기에 이번에도 단순히 피곤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좀 시무룩해진 기색은 있었지만 친구와 가볍게 다퉜거나 학원 숙제를 다하지 못했거나 하는 별 것 아닌 일이리라 생각했다. 늘 그렇듯이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라면 엄마에게 이야기 하러 올 것이라고 넘긴 것이다. 그 사이에 아이는 방에 숨어서 커터칼로 자신의 손목을 반복해서 그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엄마인 나의 전부를 할퀴고 지나가는 상처가 되었다.


나는 아이가 셋이다. 초중고에 다니고 있고 남녀가 섞인 자녀들을 키우면서 아이들 모두에게 세심한 관심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도 학원을 가는 시간도 모두 제각각이다. 다같이 모여서 밥을 먹는 일은 가끔 주말에 하루 있는 일이고 식구 다섯이서 매끼니를 다섯 번 차려야 한다.

변명이라면 그래서 나는 몰랐다.


가을이 시작되었다고 했지만 전혀 더위가 가시지 않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평소처럼 자신의 일상을 재잘거리다가 오늘 몸이 좋지 않아서 조퇴하고 싶었다, 그런데 특별히 어디가 아픈게 아니라서 조퇴시켜 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고 했다. 아이는 그 이야기 조차 평소처럼 재밌는 사건을 이야기 하듯이 말했다. 그래서 나도 웃으면서 그래, 아무 곳도 아프지 않은데 조퇴시켜 달라면 선생님께서 시켜 주시겠냐? 하고 웃었다.


그러나 그건 간절한 신호였다. 엄마가 놓친 신호......


다음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몸이 좋지 않아 조퇴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어제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꾀병이려니 하고 가능한 수업을 끝까지 들었으면 좋겠고, 선생님께서 아이를 보시고 아픈 것 같으면 조퇴를 시켜달라고 말씀드렸다. 한 시간 뒤 아이를 보건실에서 재웠지만 많이 힘들어 한다며 조퇴를 시킨다는 선생님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아이는 고작 5분 거리의 학교에서 집으로 20분이 넘게 걸려서 돌아왔다. 피곤해, 나 피곤해서 잘래.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를 붙잡았다. 엄마 커피 한 잔 하러 나가려는 참인데 너 왔으니까 좋은데 드라이브 가서 먹자. 피곤하다며 싫다는 아이를 어차피 점심은 먹어야 한다고 달래서 데리고 나왔다.

급하게 인터넷을 뒤져서 찾은 여중생이 좋아할만한 브런치 카페는 다행히 사람이 적었다. 햇살은 눈부시게 빛났고 신선한 샐러드를 곁들인 빵은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구워져서 버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는 아기가 혀 짧은 소리로 엄마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물어보고 카페 안은 갓 내린 커피의 향기로 가득 메워졌다.

그 안에서 내 아이는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시늉만 하고 있었다.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 앞에 앉아 주문한 수제청을 넣은 탄산주스가 메뉴판의 사진과 다르다며 흉을 보고, 샐러드 위에 얹힌 그릭요거트가 너무 맛있다고 추임새를 넣고, 테이블 위에 장식된 화병이 멋스럽다고 사진을 찍었다. 어떻게든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서 아이를 토닥이고 싶었다.

그래도 결국에는 제법 접시를 비우는 걸 보니 안심이 됐다. 또 싫다는 아이에게 소화되게 잠시만 걷자고 꼬드겨 팔짱을 끼고 바닷가 산책로를 걸었다. 따가울 만큼 쨍한 가을 햇볕 아래서 10분이나 걸었을까......아이가 입을 열었다.


기분이 너무 저조해, 기운이 너무 없어서 앉아있을 수 조차 없어, 학교에서 매일 보건실에 가서 자, 잠만 와, 아무것도 재미있는 일이 없어, 자꾸 눈물만 나.


친구와 싸운 것도 아니고 다른 아무 일도 없다고 한다. 그냥 견딜 수 없을 만큼 우울하고 괴롭고 눈물이 계속 난다고 했다. 친구들이나 가족과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 떠들고 즐겁운 척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람들과 같이 있어도 눈물이 나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고 했다.


다행이다. 아이가 입을 열었다.  범죄에 휘말린 것도 아니고 사춘기를 심하게 겪는 중이구나.

천천히 걸어서 길을 돌아오면서 아이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네가 사춘기라서 그래.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힘든 마음을 한 번은 겪게 돼. 암흑 같고, 지옥 같고 마음이 괴롭고 힘들지만 언젠가 이게 지나가. 다시는 이런 시기가 안온다고는 말 못해. 근데 지금은 처음 겪는 거라 이렇게 힘들지만 다음 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알거든? 그래서 점점 넘기기가 쉬워져. 그러고 나면 주변에 어른들 다 대단해 보인다? 다 이런 감정을 겪고 무사히 살아서 어른이 된거구나, 하고 말이야.

벤치에 잠시 앉아서 바라보는 바다는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오늘따라 유난히 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윤슬이 찰랑거리며 빛나고 있었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내는 소리가 한적한 바닷가에 울리고 있었다.

아이는 햇살에 쪼그라드는 검은 구름처럼 내 옆에서 한껏 웅크리고 있었다. 그 작은 손을 꼭 잡고 파도소리에 맞추듯 가만히 토닥여주었다. 내 작은 아이가 안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사실은 아직 엄마한테 말 안한게 있어. 말하고 싶지 않아. 말하면 엄마가 상처 받을 거야.

말하고 싶구나. 말하고 싶지만 말하기가 어렵구나. 또다시 불안으로 두근거리는 내 마음을 모른채 하며 아이의 어깨를 끌어안아 다독거렸다. 또 한참을 숨죽여 울던 아이는 더듬더듬 울음 섞인 말을 쏟아냈다.


나 사실 자해 해. 혼자 숨어서 방에서 칼로 손목을 그었어. 내가 너무 싫은데, 혼자 있으면 내가 너무 싫은데 어째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소리를 내면서 심장이 발 끝까지 떨어져내렸다. 사춘기이리라 짐작했지만 이런 극단적인 곳까지 와있을 줄은 몰랐다. 누구와 싸운 것도 아니고, 어떤 사이버 범죄에 휘말린 것도 아니고, 그냥 아이는 자기자신과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자해라니...자해라니......

그래도 엄마는 버텨야 한다. 계속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그랬구나, 네가 혼자서 정말 힘들었구나. 그래도 무사히 살아남아 있어줘서 고마워. 엄마한테 말해줘서 고맙고. 다행이야. 너는 지금 터널의 가장 어두운 곳을 지나는 중일거야.  이제 조금씩 괜찮아질거야.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괜찮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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