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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다 Nov 22. 2022

내 아이가 손목을 그었다 3

심각하지는 않아

아이가 며칠 동안 기운이 없고 우울해보였어. 오늘 잘 달래서 이야기를 해봤는데 상태가 심각해. 그냥 사춘기라고 생각했는데 자해를 해......


 남편은 내 말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애가 손목을 그었는데 심각한 상처는 아냐. 근데 횟수가 많아. 자국이 스무 개가 넘어. 내가 인터넷을 찾아봤는데......자해가 자살을 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고, 자살과 무관하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애는 후자인 거 같아. 상처가 깊거나 심각하지는 않아. 근데 많아.

남편은 미쳤다, 대체 뭘로, 어디를, 제가 뭐가 모자라서, 이런 말들을 두서없이 숨죽여 묻다가 벌떡 일어나서 아이에게 가려고 했다. 아냐, 자기야, 일단 내가 애랑 이야기 해볼게. 일단 주말동안 아이를 잘 달래볼게.


다음날 아이는 한낮까지 잠을 자다가 해맑게 나와서 김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부러 남편과 둘이서만 장을 보러 나와서 집 앞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음료를 시켜놓고 둘이서 한숨만 쉬다가 아이의 상황을 조금씩 설명했다. 러다 문이 막혀왔다. 대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신이 있어서 내가 숨이라도 쉬어. 이런 이야기를 어디 가서 해. 애한테 해가 될까봐 누구한테도 못해. 진짜 당신한테 밖에 못해. 나 숨을 못쉬겠어.

테이블이 4개 밖에 없는 작은 카페에서 나는 누가 들을까봐 소리죽여 속삭이면서 울었고, 남편은 괜찮다고 중얼 거리면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주말동안 집안은 평화로웠다. 큰애는 주말 내내 학원 보강으로 바빴고 막내는 인라인을 타러 나갔다 왔다. 저녁에는 주말예능을 보면서 김밥을 말아서 먹었다. 아이는 밥도 안먹겠다고 하더니 어느새 나와서 같이 텔레비젼을 보면서 김밥을 한 줄 집어 먹었다.

다행이다.


일단 배가 고프면 먹는다. 아침도 점심도 거른 걸로 봐서 입맛은 없는 것 같지만 하루종일 굶으면 배가 고프고, 그러면 밥을 먹긴 한다. 일상적인 생체반응은 이상 없구나, 심각하지는 않아, 주말동안 잘 진정되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아이는 김밥을 한 줄 먹고 나더니 갑자기 과일을 깎아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요거트, 과자, 시리얼, 우유......하루종일 굶었던 걸 만회라도 하려는 듯이 갑자기 아이는 모든 것을 자기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평소에 양이 작았던 아이 같지 않았다.

다음날도 아이는 계속 잠을 잤다. 안해진 내가 아이방으로 들어가서 침대 옆에 살포시 누웠다. 아이는 잠에 취해있었다. 기분은 어떠냐는 내 물음에 아이는 그냥 똑같다고 했다. 똑같이 기운이 없고 그냥 모든 것이 좋지 않다고 했다.

엄마에게 비밀을 털어놨으니 이제 좀 개운해지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는 건 아닌가 보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실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를 웃기려고 노력했다. 언제든 엄마한테 와. 밤이든 낮이든 나쁜 생각이 들고 힘들어지거든 엄마한테 와. 그럼 엄마가 꼭 안아서 재워줄게.


내가 아이 귀에 속삭인 그 날부터 아이는 밤마다 내 방으로 와서 내 품에 안겨 한두 시간 쯤 있다가 자기 침대로 돌아가곤 했다. 나는 아이가 오면 아이를 꼭 끌어안고 뱃속에 있을 때 이야기, 갓난 아이 때 목청 좋게 울던 이야기, 어린이집 다닐 때 웃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서 속삭여줬다. 내 뱃속에서 낳은 내 아기는 커져서 이제 덩치가 나만해졌는데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오려는 듯이 내 품을 파고들었다. 나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등을 쓸어주면서 계속 너를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리고 아이는 그 주말동안 다시 두 번의 자해를 더 했다.








* 자해는 자살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자료들은 자살의 전조증상으로 보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남편이 충격을 받을까봐 상황을 순화해서 전달하고 싶어서 이렇게 이야기 한 것이고 어떠한 경우든 자해는 즉각적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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