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자로 살아가는 건 지긋지긋해
교환학생 생활 중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의 일이었다. 없는 돈까지 내어 유럽까지 날아온 언니와, 여행 전날 기말 시험을 치르고 곧장 짐을 싸든 나는 스위스 그린델발트, 이탈리아 피렌체를 거쳐 로마에 도착했다. 종일 바티칸 시국과 로마 거리를 걸어다니며 군것질을 하고 사진을 찍다가 지친 우리는 해질 무렵, 나보나 광장에서 저녁을 먹기로 결정했다. 생각보다 거대한 콰트로 피우미 분수 앞에서 언니의 사진을 찍어주곤 주위 카페를 탐색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광장은 겨울임에도 인파로 가득했고 광장 주위로는 넓게 천막을 쳐 야외 테이블에 손님을 받는 카페들이 늘어서 있었다. 고민하다가 가장 열성적으로 호객행위를 하던 첫번째 카페로 들어갔다.
호객꾼 겸 서버인 젊은 남자는 우리더러 친구냐고 묻더니, 자매라는 대답에 노골적으로 불신하는 태도를 드러냈다. 니네 농담하는 거지?ㅎ 니네가 무슨 자매야~ 그 말에 발끈한 언니는 테이블에 앉기 무섭게 폰 앨범을 뒤지고 뒤져 오래 전 찍은 가족사진을 그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Look! We are sisters!!!(삐약!!!) 그러자 그는 폰을 받아들고서 사진을 한참 유심히 보다가, 우리 둘의 얼굴을 또 유심히 보다가, 또 고민하더니 그제야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말을 건 것을 계기로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간간이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방금 보여준 사진 중 한 명은 너희 어머니셨던 거냐, 어디에서 왔느냐 정도의 기본적인 화제부터 시작해서 나이, 여기에 오기 전에 어디에 살았고 무엇을 했는지, 로마에서 추천할 만한 곳은 어딘지 기타 등등. 언니는 영어가 서투른 편이었기 때문에 대화는 주로 내가 전담했다. 그래봤자 스몰톡 수준을 벗어나는 건 아니었기에 적당히 즐거운 레스토랑에서의 기억 정도로 마무리…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식사를 마친 후 그가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언니는 담배를 피우며 남자친구와 통화 중이었고, 나 혼자 남아 계산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가 카드를 받아들다 말고 내게, 자신은 곧 퇴근하는데 시간이 되면 저녁에 같이 어울리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말투도 상당히 가벼웠고, 여행 중 현지인과 술자리를 가지는 일이 내겐 잦기도 했던 데다가 여태껏 그와 별다른 사심 없이 대화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으므로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일정이 맞으면 그렇게 하자고 답했다. 연락처를 묻기에 번호 대신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교환했다. 서로 팔로우가 끝나자 그는 Yes! 하고 주먹을 쥐더니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벨로'가 무슨 뜻인지 알아?" "어… 뭔가 예쁘다는 뜻 아냐?" "맞아. 정확히 말하자면 벨로는 이탈리아에서 잘생긴 남자를 부르는 말이고, 예쁜 소녀는 벨라라고 해. 나의 벨라, 넌 정말 아름다워." "……?"
이탈리아인들의 유난스런 플러팅이야 여러 차례 썰로 들었지만, 그렇다고 손바닥 뒤집듯 휙 바뀐 태도가 납득 가는 건 아니었다. 바로 직전까지 그는 상대적으로 담백한 태도였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어, 이 급발진 뭐지…? 방금 그건 정말 캐주얼하게 시간 맞으면 술이라도 먹자~ 정도의 제안 아니었어? 같이 놀자는 말에… 그것도 언니까지 껴서 셋이서 놀자는 말에 오케이 한 게 왜… 이런 태도 변화로 연결되는 거지? 얘는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러지?
얼떨떨한 와중에 계산을 마치자 나중에 연락하라며 윙크가 날아왔다. 카페를 나와 길거리를 걷는 내내 어리둥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니까 플러팅 자체보다는 왜 하필, 그 제안을 기점으로 그의 태도가 그렇게 급변했는가가 이해가지 않았다. 내가 승낙한 건 단순한 술자리 제안이었는데, 얘는 왜 내가 그걸 넘어선 다른 것까지 승낙한 것처럼, 그러니까 꼭 작업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런 멘트를 치기 시작한 걸까? 바로 다음 골목에서 들른 기념품샵에서 마그넷을 신중하게 고르면서도 나는 머릿속으론 그와의 대화를 복기하고 있었다. 혹시 그가 그런 종류의 호감을 표현했는데 내가 눈치를 못 챘던 건가? 제안을 할 때 그가 사용한 단어가 그런 의도를 함축한 거였나? 아님 혹시 내가 그런 식으로 오해될 수 있는 말을 했던가?
그러니까 나는, 내가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잘못된 사인을 보내서 그에게 여지를 줘버린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사실 그는 유럽에서 만난 남자 중에서도 가장 젠틀한 편이었다. 그 일이 있기 세 달 전 가을, 개강 직후 밤베르크 대학 건물에선 학생만 참여 가능한 대규모의 파티가 열렸다. 앞쪽에서 DJ의 선곡에 맞춰 되도 않는 춤을 추던 나는 사람들 뒤에 남은 일행을 찾으러 가자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슬쩍 리듬에 어설프게 몸을 맞추며 인파 속을 헤쳐나가던 중, 누군가가 내 손목을 붙들었다. 돌아보니 나보다 덩치가 세 배는 커 보이는 남자가 웃고 있었다. 친구를 찾으러 가야 하니 놔 달라고 거듭 말했지만, 그는 네 친구들은 걔네끼리 잘 놀고 있을 것이니 자기랑 놀자고 억지를 부렸다.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가고, 급기야 예의상 웃고 있던 표정도 무너진 내가 왜 이러느냐고 묻자 "나한테 웃어놓고서 어딜 가. 너도 내가 마음에 든다는 거 다 알아" 하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웃어서라고?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가만히 웃은 게 잘못이었던 걸까? 그럼 무표정으로 지나쳤어야 했던 거야?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카우치서핑을 이용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만만찮게 무례했다. 내가 싫다고 해도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안다"며 멋대로 프리허그를 해주겠다고 다가오던 런던 리젠트 파크의 백남1. 카우치서핑을 통해 간단하게 술을 마시러 만났는데, 나를 인적 드문 어두운 언덕 위로 데려가서는 와인 한 병을 해치울 무렵부터 슬슬 섹스 얘기만 줄창 늘어놓으며 간을 보던 부다페스트의 백남2, 저녁 늦게 자고 가기로 한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집에 도착했더니 역시나 섹스 얘기만 줄창 늘어놓다가 전신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자기랑 자자고 하던 브뤼셀의 백남3. 여럿이 술을 마시는데, 단 둘뿐인 흡연자인 나와 함께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마다 자기는 한국에 가면 섹스를 존나게 하고 다닐 거라며 내 허리를 만지던 밤베르크의 못생긴 백남4.
나는 나름대로 내가 여지를 남기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카우치서핑 앱의 내 프로필, 매 여행 계획 포스팅, 기타 등등 오픈되는 모든 공간에 나는 "파트너를 구하려면 틴더나 가라, 나는 관심 없다"고 거듭 적어두었고, 플러팅을 건다 싶으면 웃으며 슬슬 밀어냈다. 한두 번은 이야기를 들어주어도, 섹스 얘기가 15분을 넘어간다 싶으면 너랑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잘라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취급, 조금만 구슬리면 쉽게 넘어올 여자 취급을 당할 때마다, 에두른 거절에 "아… 너는 아시안이라 이런 얘기 들으면 수줍구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이런 자리에 응해서 나왔다는 게, 그리고 내게 술과 숙박을 제공하는 그들과 불편해지지 않으려고 돌려 돌려 거절하는 게, 정말로 여지를 주는 행위였을까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더 일찍 잘라내지 않아서 얘가 가능성이 있다고 오해하게 만든 건 아닐까. 싫다고 할 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게 잘못됐던 건가. 그 자리에서 정색하는 게 맞는 대응이었을까. 그러니까… 혹시 내가 잘못한 건가?
아무런 여지도 남기지 않았어야 했나? 근데 그게 가능한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게서 빌미를 찾는 건 부당한 대우임을 인지하면서도. 착각했다면 착각한 그들의 잘못임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자꾸만 나의 행동을 돌아보게 된다.
이것은 전부 떡볶이를 화대라고 해석한 판사가 있는 나라에서 내가 자란 탓으로……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는 더한 일도 있었다. 재작년 5월 경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머리 끝까지 취한 나는 막차를 탔다가 엉뚱한 정류장에서 내렸고, 거의 선 채로 기절할 것 같은 정신을 붙들고 낯선 길거리에서 카카오택시를 예약했다. 그 다음으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가 모르는 중년 남성의 차 조수석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폰으로는 끊임없이 배정된 택시 기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그는 나에게 연신 혼자 사냐, 남자친구는 있냐, 남자친구랑 자봤냐는 질문을 쏟아부으며 원피스 아래로 맨살이 드러난 내 허벅지를 만지고 있었다. "남자친구랑… 섹스 해봤어요?" "나랑 섹스 할래요?" 정신이 들자마자 바로 휴대폰 녹음버튼부터 눌러두고서, 나는 서서히 정신을 차려가는 척 차근차근 빌드업을 시작했다. "언니랑 같이 살아요…(*당시 언니와 따로 살았음)" "남친 있어요…(*없었음)" "그건… 왜 물으세요? 다리 만지지 마세요. 왜 자꾸 다리 만져요… 근데 여기 어디에요?(*이렇게 묻는 동시에 이미 카카오맵을 켜고 있었음)"
몇 차례의 공방이 이어진 후, 나는 아무것도 눈치 못 챈 척 카카오맵을 보며 집 근처로 가는 길을 불러주었다. 지도상의 위치를 지적하며 왜 이렇게 엉뚱한 장소로 가고 있었느냐 묻자, 그는 짜증난 목소리로 자긴 '아가씨'가 취했길래 순수한 호의로 집에 데려다주려 한 것뿐인데 왜 자신을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느냐고 역정을 냈다. 아가씨가 주소도 안 불러줬는데 어떻게 거기로 가고 있었겠느냐고, 주소나 부르라면서. (하지만 상식적으로 정말 "집에 데려다주려" 했다면... 집 주소부터 물었겠지요...?) 나중에 보니 차로 고작 5-10분 거리였던 길을 빙빙 돌아서 가놓고서는 내릴 때가 되어 얼마냐는 나의 말에 만 원이라고 대답하기도 했지. 실제론 택시조차 아니었으면서. 나는 문을 닫기 전 그의 면전에 현금을 내던지고 욕설을 뱉으며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떨리는 손을 붙들고 친구와 통화를 하며 울다가 뒤늦게 경찰 신고를 결심했다. 녹음 자료까지 있으면서도 신고가 먹힐지, 실제로 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집 근방까지 그 차를 타고 왔는데 신고를 한다고 보복을 당하진 않을지 확신이 없었다. 고민 끝에 112에 전화를 걸자 곧 집 근처로 경찰차가 왔고, 그걸 타고 경찰서까지 가서 진술을 했다. 새벽 서너 시를 훌쩍 넘겨 돌아오는 길,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준 경찰관은 헤어지기 전 무뚝뚝하게 말했다. "아가씨를 탓하려는 건 아닌데, 밤에 함부로 술 마시고 여자 혼자 다니는 거 위험해요. 앞으론 조심하세요."
그것도 내가 남기고 만 여지였을까?
- 단 둘이 술을 마셨어?
- 그 사람이 너를 집에 데려다줬어?
- 다 큰 성인 남자를 너 혼자 사는 집에서 재웠다고?
- 다른 사람도 없이?
- 근데 그 집에 니 속옷이 걸려있었어?!?!
- 걔랑 단둘이 있는 집에서 샤워하고 가운만 걸치고 나왔다고?!
그랬다. 그럴 때도 있다.
하지만 고작 그런 걸 구실로 내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야?
가끔, 종종, 자주, 어쩌면 항상. 나의 말과 행동은 표면적 의미를 넘어서 '여지'의 관점에서 해석되어 버리곤 한다. 내가 아니라고 할 때조차 그 "아니"가 '사실은 그런 마음이 있으면서도 수줍어서 튕겨 보는 "아니"'는 아니었는지 의심받는다. 거절할 때 멋쩍은 마음에 웃고 있었다면 더욱이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짓이 되돌아온다. 나는 여성이니까. 아시안 여성이니까. 그것도 젊은 여자니까. 맨날 아침 일찍부터 화장을 하고 귀걸이를 바꿔 끼우고 공들여 옷을 챙겨 입고 나오는 여자애니까. 낯가림이 심하고 사람을 어려워 하니까. 멋쩍을 때면 배시시 웃곤 하니까. 낯선 사람에게 사근사근 말하려 애쓰니까.
아닌 척 해도 사실은 원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실은 그 아니라는 말조차 좋다는 마음의 반증 아니야?
정말로 아닌데도.
무엇보다 나 역시 나 자신을 검열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술을 마시고 그렇게 인사불성으로 돌아다녀선 안 됐었는데.' '여행 중에 만난 사이라면 더 조심하는 게 맞았는데.' '그때 그렇게 애매하게 굴어선 안 됐는데…….' 아주 잠깐 본 사이어도 그런데, 조금이라도 길게 어울렸던 사람이라면 왠지 모를 죄책감까지 셀프로 떠안는다. 어느 때고 내가 원하지 않을 때면 관계 도중에조차 중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맞는데, 그게 맞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혹여나 내가 여지를 남겨버렸던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든다.
그러니까… 1) 내가 그린라이트를 보내고 있다고 오해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2) 이 사람이 내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건데, 3) 거기에 대고 '배은망덕한 썅년처럼 굴고 있는' 건 아닌지.
사실 객관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나는 결코 그런 태도를 취하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그런 태도를 취한다고 한들 그건 결코 나의 잘못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는 그의 투자 실패인 셈인데 (심지어 나는 절대 빚은 지지 않으니 일방적으로 얻어먹는 일은 결코 없다. 돈도 시간도 노력도 공평하게 쓴 셈이다) 왜 이들은 잘못된 사인을 가지고 멋대로 노력을 투여해놓고선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나는 또 굳이 부채감을 가지고 그의 실패 리스크를 걱정해주고 있는 것일까?
캐롤라인 냅은 알코올 중독을 다룬 자서전 격 저서 "드링킹"에서 여자들이 자주 걸리는 덫에 대해서 쓴다: 술에 취한 채 남자를 유혹해 침대에 도착했을 때, 그제서야 자신이 원했던 건 이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 시점이 되어서는 도저히 No라고 답할 수가 없는 마음, 혹은 방향이 엇나간 과잉된 양심.
충격과 혼란 속에서 한편으로는 기묘한 승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내 느낌은 '생각대로 됐어. 내가 이겼어'였다. 그리고 내가 이 게임에 적극적 동참자였음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그를 끌어당겼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홀가분하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을 유혹해서 '예스'라는 답을 받아놓고, 나는 태연하게 '노'라고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캐롤라인 냅, 드링킹)
사실 내게도 그런 마음은 있다. 처음 만나는 이성을 대상으로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는 존재는 아니라는 걸 확인 받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낯선 여행지에서 일어나선 가장 먼저 화장부터 하고, 옷차림으로 평가받지 않는 자리에서조차 꿋꿋이 불편하고 예쁜 옷차림을 고수한다.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다.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게 우리 잘못은 아닌데. 그런 외부적인 요인에 의존해서 자존감을 채우려 드는 게 잘못되었다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내가 바이섹슈얼임에도 하필 이 욕망이 '이성'을 대상으로 한다는 지점에서 이게 얼마나 뒤틀린 욕망인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 마음을 가져놓고서도 나중에서야 'No'를 이야기하는 게 책임져야 할 잘못은 아닌데.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스스로에게 엄격할까?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남길지도 모르는 여지가 무섭다. 그 여지를 명분 삼아 나를 (그게 무엇이든) 줬다가 뺏는 썅년 취급을 할 사람들이 두렵고, 내가 무결한 피해자로 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게 두렵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무서운 것은, 내가 남기지도 않은 여지를 어디선가 멋대로 만들어 주워들고 와선 내게 값을 치르길 요구하는 사람들 하나하나는 아니다. 그들이 내게 가할지도 모르는 잠재적 범죄도 아니다. 그깟 것쯤은 조금도 무섭지 않다.
오히려 내가 무서워하는 건 나의 곁에 머무르는 멀고 가까운 다정한 사람들이다. “너도 조심했어야지.” “그러게 왜 그 밤중에 싸돌아다녔어!” 내 걱정에 화를 내고 질책할 따뜻한 마음씨가 무섭고, 속으로는 내게도 일말의 잘못이 있음을 따지고 남자 쪽의 억울함부터 우려하는 편중된 걱정센서를 가졌으면서도 내 앞에선 상처 주지 않으려 호들갑 떨고 위로할 배려심이 두렵다.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나도 모르는 새 호도되고 있을 것이 두렵다. 그것을 내가 모를 것이 두렵다.
늘 학교에서 얼굴을 맞부딪치며 눈이 마주치면 가끔 인사하거나 웃으며 지나가고도 하는, 아주 멀쩡해 보이는,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해서는 성범죄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행실을 빌미로 그도 잘한 것은 없다느니 과실이 20%는 있다느니 판결을 내리고, "안타깝군요. 별개로 성폭행을 당했을 땐 그 자리에서 녹취하고 신고하는 게 좋습니다. 아닌 말로 꽃뱀 취급당하면 본인한테만 손해니까요"하고 뒤늦게 누구에게인지 모를 청자에게 훈수를 두거나, "사안이야 안타깝지만 그래서 판사보고 뭘 더 해달란 거죠?" "아 맞다 꼴페민국에선 피해자의 눈물이 증거였지~" 조롱하거나, "피해자고 뭐고 솔직히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굴어놓고 나중에는 신고했다? 빼박 무고인 듯" 단정내리고 "중립기어 ㅇㄷ" 하며 피해자의 진술만으론 모르는 일이라 대기하다가도 가해자가 입장을 공개하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바로 태세를 전환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무섭다.
이 모든 게 피해망상이라곤 아무도 이야기할 수 없다.
언젠가 엄마와 엄마 애인과 이야기하다가 안희정 성폭행 사건이 화두로 오른 적 있다. 그의 범죄를 두둔하고 정당화하던 엄마는 여자가 잘못했다고, 처음부터 싫으면 그만두고 나가야 했다고, 그러지 않은 걸 보면 남녀 간에 미묘한 기류가 있었던 것이며, 그러다가 나중에 틀어져서 고발한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엄마 애인인 아저씨는 그녀가 꽃뱀이라고 말했다. 엄마와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도깨비"의 유해성을 두고서 언쟁을 벌인 적도 있다. 내가, "그런 일이 있다고! 나한테도 아저씨들이 찝쩍대고 성희롱을 한다고! 그런 일이 계속 있다고!" 소리질렀을 때…… 엄마는 그 말을 못 들은 척 했지? 고등학생 때 거실에서 휴일을 보내다가 내가 제발 장동민 나오는 예능 말고 다른 걸 보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내 동생은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쏘아붙이지 않았던가? "왜 유난이야, 보기 싫으면 지가 안 보면 되지."
박원순의 성범죄 사건을 두고, 견딜 수 없었다면 그냥 일을 그만두고 나가면 되었던 것 아니나며 어리둥절해 하던 지인의 목소리에서, 전에 온 손님의 흉을 보며 "싸보이게 입었다"고 품평하던 단골 카페 사장님의 말에서, 누가 봐도 피해와 가해가 명백한 사안 앞에서도 유독 여성 피해자 앞에서만 "중립기어"를 부르짖는 고파스와 에타의 수많은 댓글에서 나는 앞으로도 수십 수백 번 거듭 받게 될 상처를 예감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신경 쓰는 사람이다.
나는 끊임없이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인터넷 뉴스에서 댓글란을 살피고, 고파스의 여론을 염탐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분석한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고 그런 사람들에 어떻게 맞추어 살아가면 될지 알고 싶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흘러 들어온 무신경함과 비난과 배제와 경멸의 문장들이 어느새 나의 목소리를 덧입고 내 안에서 나를 검열할 때, 나는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실제론 그 말들이 내게 조금의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내 피해의식일 뿐이라고, 그러니 그냥 무시하면 사라진다고 흘려 넘길 수 없다. 그것들은 그 자리에 있으니까.
세상의 가장자리로 밀려나지 않으려면, 상식적인 인간으로 사회에 맞춰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는 말들이 그 자리에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데, 무시하는 건 문제를 외면하는 것일 뿐. 물론 좀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타인의 목소리가 스며 들어오는 구멍을 반틈 막아두기는 해야 할 것이다. 타인의 목소리에 휘둘리고 자기 검열에 애쓰기보다는 좀 더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도 필요하겠지. 필요할 것이다. 필요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목소리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온전한 내 목소리라 선 그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성범죄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소리들에 그만 귀를 기울이고 싶어도 세상이 다 그렇게 말하는걸.
온세상이 한 목소리로 여성을 비난할 때 나 혼자만의 노력은 충분하지 않다.
정말로 충분하지 않다.
지난해 1월의 마요르카는 한겨울임에도 초여름처럼 사근사근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 위로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나는 사흘을 내리 해변에 앉아 혼자 파도 치는 것만 보며 하루를 보냈다. 심심해지면 손으로 긴 치마를 걷고 맨발로 물에 들어가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느꼈고, 투명한 비취빛 파도 아래에서 예쁜 조개껍데기를 모았다. 파도의 그림자를 찍으려 애쓰다가 돌아와 손가락으로 모래 위에 글씨를 쓰고 발치에 젖은 모래를 끌어다 두꺼비집을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주민들은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고 대마를 피우고 개를 산책시키며 무심하게 지나칠 뿐이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았다.
열여섯 살때부터 나는 쭉 바다 앞에 살았다. 해수욕장은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대학에 들어간 후 이사 간 본가에선 방 안에서도 선명한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심심할 때마다 바닷가를 걸었다. 혼자 해수욕장에 앉아 파도 치는 것만 보다가 돌아오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마요르카에서처럼 마음 가는 대로 굴지는 않았다. 혼자 맨발로 바닷물 앞에서 깔짝대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 흘겨보고 수군거릴 사람들이 잔뜩 있을 것을 아니까, 나의 중, 고등학교 동창, 나의 가족부터가 그들 중 하나임을 아니까. 그래서 그러지 못했다.
어디에서나 갈 수 있고 그 어느 장소보다도 자주 들렀던 바다이지만 그 시선만이 달랐다. 네덜란드의 해변에서도 한국의 해변에서도 누리지 못했던, 튀는 행동을 해도 주목받지 않고 수군거리는 이 하나 없는 자유. 한 번도 그런 걸 의식하지 않고 살아본 적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돌아간 한국에서는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없으리란 것도, 오직 이곳에서만 이토록 자유로우리란 것도.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자유가 필요해.
그런 관대함과 그런 무심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