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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D컬렉티브 Sep 08. 2021

‘복고풍’의 시대는 가고,
‘NFT’의 시대가 오고,


# Retro vs NFT


어느 때보다도 레트로(Retro)열풍이 강했다. 1990년대~2000년대의 대중문화가 텔레비전과 인터넷상에 떠오르면서 과거의 콘텐츠가 재발견되는 복고풍의 시대로, 그야말로 붐이었다. 2D게임, 대중가요,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장르를 불문하고 레트로 소비가 이뤄졌으며, 이에 더하여 레트로 감성을 살린 디저트 카페의 인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보지도 않은 시대를 향한 노스탤지어”의 향연까지 이어지면서, LP판으로 음악 감상을 하는 시절이 다시 돌아왔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부터 BTS음악이 LP로 제작되면서, 레트로를 향한 뜨거운 애정은 팬덤으로까지 나아갔다. 2018년 이후로 정점을 맞이했던 레트로가 이제는 '뉴트로(New+Retro)'문화로 신드롬을 일으킨 것이다. 근데, 복고풍의 시대가 끝난 것인가?


노스탤지어에 젖어든 문화적 감수성에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소셜미디어를 하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다. 이를 ‘좋아요!’ 구독 버튼을 누를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이름은 ‘NFT’이다. 생소한 단어이면서, 인터넷상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 Fungible Token)’으로 번역된 N.F.T. 희소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으로 ‘NFT’가 등장했다. 메타버스, 디지털 미디어에 자리를 잡으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근래의 인터넷 트렌드용어가 된 것이다. ‘NFT’의 기반은 블록체인 기술로 디지털 조각, 디지털인증서의 한 유형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초고속인터넷망속에서 유튜브/넷플릭스의 디지털 시네마. 스트리밍 ‘서비스 사용자’이자 ‘미디어 소비자’로 살아가는 우리. ‘NFT’와의 만남도 우연히 아니라면?


# ‘NFT’를 아십니까, 디지털아트의 변수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 2012년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 ‘컬러드 코인(Colored Coins)’으로 ‘NFT’실험은 시작됐다. 그리고 라바 랩스(Larva Labs)가 2017년 이더리움을 근간으로 디자인 한 ‘NFT’, ‘크립토펑크(CryptoPunks)’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와 함께 블록체인 가상게임 크립토키티(CryptoKitties)가 ‘NFT’프로젝트를 통해서 본격적인 ‘NFT’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NFT’가 유독 주목을 끌게 된 계기는 디지털 예술작품, ‘NFT+아트’의 등장에서이다. 3월 크리스티경매에서 비플(Beeple)의 NFT아트. <매일 :첫 5000일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가 디지털 모자이크 이미지가 고가에 판매가 되고, 트위터 생중계로 번트 뱅크시(Burnt Banksy)가 뱅크시 <멍청이 Morons>를 불태우면서 ‘물질적 예술(physical art)’은 제거되고 암호 화페로 ‘NFT’로 판매되었다. 그리고 이 고가의 디지털아트의 판매와 이벤트에 관한 소문은 매체와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NFT’의 시대의 도래


보통 PNG이나 JPEG 및 GIF이미지를 묶어놓은 파일형태 같아 보이는 이 ‘NFT’. 디지털 파일의 복제불가능, 디지털소유권보장, 거래증명으로 유일무이한 대상으로 알려진 이 ‘NFT’가 최고가격으로 판매됨으로써 화제성과 함께 단 번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피그말리온의 조각 신화가 현대판에서 재탄생한 것처럼, ‘NFT’가 예술가의 새로운 창작매체수단이 되어 ‘진짜예술’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것은 그럼, 진짜 예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적 예술만이 ‘진짜예술’이고, NFT아트는 ‘가짜예술’이기에, ‘진짜예술’이 된다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품어야 하는 것인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에 따르면 NFT아트는 거품가격과 가짜예술이라 비판을 하지만, 그 역시도 아이패드로 그린 나무, 꽃을 소재로 한 디지털아트를 판매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패드로 그려진 원본/복제는 또 어떻게 가릴 것인가? 아이패드로 진행한 이 <No.186, 11th April, 2020>같은 경우는 진짜예술인가? 어떤 것도 정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 1911~1980) 이 말을 빗대어 말하자면, “미디어가 우리의 상황이다.” 말하자면, 1964년 미디어를 이해하기 위한 기술옹호론도, 기술비판론도 아닌, 그 자체의 현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미디어의 시대는 이미 1960년대 말 이후로 미디어자본과 데이터축적으로 그려진 하이퍼세계를 넘어서 빅데이터와 디지털미디어의 고도화는 가속화되었다. 과학기술은 인공지능을 도구로 한 예술가, 초지능기계 아이다를 등장시키면서 그들은 기술자인지 혹은 예술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서, 과연 예술가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으로 다시 제기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는 코로나팬데믹 이후로 하이테크의 혁명은 메타버스로의 본격 진입과 나날이 거세지는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실에서 진짜예술과 가짜예술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보통의 디지털 예술작품이라고 하면. 1990년경 웹아트의 등장으로 시작된 디지털아트의 역사이다. 아쉽게도 이 시절에는 대중의 시선을 빼앗지 못했다. 흔히 한국에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주목되는 시기보다 빠르게 정착했다고 볼 수도 있는 디지털아트이지만, 웹아트 그룹으로 알려진 ‘푸른사람들’의 《웹아트를 아십니까》전을 살펴보아도, 디지털의 특정 관심사를 가진 이들 외에 디지털아트는 컴퓨터를 기반으로 창작한 예술가들의 전유물이었다. 실질적으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뱅크시, 앤디 워홀 (Andy Warhol, 1928~1987)의 팝아트와 다르게 디지털아트가 한국에 정착하는 그 과정은 컬렉터, 미술시장, 대중들의 관심은 흔히 말하는 ‘물질적 예술’을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NFT’의 경우는 달랐다. 시간의 격차 없이 동시다발적이었으며, 근래의 일시적인 유행이기에는 소셜미디어의 소비자, 예술가들의 반응이 뉴트로 열풍 못지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실 인공지능 예술가의 등장만큼 ‘NFT’가 예술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우려스러운 시선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멋진 신세계’는 당연한 걱정과 논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들이 존재한다. 디지털 자본의 도구로 경쟁을 부추기는 매개수단이 되는 것은 아닌지, 예술로 지금까지 고유하게 지켜온 독보적인 저작권과 작품의 본질적인 의미와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포스트모던 시대로 다원성이라는 의미는 탈-매체수단의 등장을 중요하게 주목했었는데, 지금은 ‘NFT’의 등장으로 또 한 번 예술창작 매체의 범주는 어디까지 혼합/절충/차용되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고민거리를 제공해준다. 그럼, 이 ‘NFT’가 국내에서 이토록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 NFT아트, 신상의 맛을 먼저 경험한 세대가 되다.


getty


분명한 것은 NFT아트는 “과거에서 재미와 매혹을 찾아가는 과정은 아니다. 재활용과 재조합을 통해 레트로가 향한 문화적 잡동사니의 브리콜라주, 힙합스타일을 추출한 자료실로서의 ‘과거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현재이자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라이브 한 사건이다. 비유하자면, 콜라주적인 조합으로 NFT아트는 “벼룩시장, 중고품가게, 자선바자, 고물상”에서는 볼 수 없는 편의점의 신상도시락이다. 근데 우리가 신상도시락이든 혹은 디저트든 우리가 매번 처음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알다시피 관찰과 촬영이다. 먹어본 후기를 소셜미디어에서의 공유를 하기 전 무엇이 그토록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 왜 이 맛은 달콤하고 맛이 있는지, 나의 입맛에 맞는지 등 자신만의 데이터 축적한 다음에 이를 타인과 공유하고 다시 구매를 할 것인지는 우리의 마음과 선택에 달렸다. 어찌 보면 NFT아트를 ‘진짜 예술’로 수용하는 것도 각자의 생각에 달렸을지 모른다. 새로운 예술매체 수단으로서의 ‘NFT’를 통해서 자유롭게 예술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를 만났다는 것에 더 주목해보는 것은 어떤가?


미디어 소비자로서의 우리의 활동영역은 데이터 공유와 함께 ‘참여문화’를 만들어가는 생산/소비/유통/의 과정으로 디지털공간이 주요 무대가 되면서, 소셜 커뮤니티가 쉽게 형성되는 현실이다. 다시 말해서 ‘NFT’로 새로운 예술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기대해볼 수 있는. ‘관람객-예술가의 공동체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이다. 최근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NFT’에 대한 관심은 ‘NFT에이전시’, ‘엔터테인먼트’가 생기고, ‘디지털 아트 NFT아티스트 공모전’등으로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미스터 미상, 마리킴, 코디최, 전병삼과 같은 작가들의 참여와 ≪NFT빌라≫, ≪THE Genesis: In the beginning≫으로 온-오프라인전시를 통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전통적인 회화, 미디어, 일러스트, 음악 등의 본질적인 형식을 탈피하여 디지털적 전환을 쉽게 할 수 있는 예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NFT아트가 제작되고 있는 중에 있다. 그리고 ‘NFT’의 흐름을 같이하고 있는 임팩트스테이션/무중력지대. 서대문/무중력지대 강남/ NEXT FOR ART가 주최하는 ≪NEXT아트페어≫가 MetaArt마켓 플레이스에서 8월 31일부터 9월 13일까지 열리는데, 이 또한 주목해야하는 ‘NFT아트전시’이다.


지금도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의 소셜네트워크에서 ‘NFT’에 관한 검색을 하다보면, 다양한 디지털이미지와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어떤 NFT아트든 개인의 취향에 맞는 디지털 작업에 좋아요!를 누를 수 있다. 그리고 이 NFT아트를 구매하고 싶다면, ‘NFT온라인미술시장’에서 쉽게 접근하여 온라인거래가 가능하다는 사실.


# 디지털 콜라주의 반전시대, NFT아트가 쏘아올린 ‘공’


getty


‘NFT아트’. 디지털+콜라주(형식)이 만나 혼합형미디어로 반전시대를 만나게 한 지금, 온-오프라인공간에서의 ‘무한확장’과 ‘범람’은 디지털 아트의 새로운 전환점이자, 새로운 창작과정과 방식으로 예술가들의 활동을 더욱 폭넓게 열어갈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되었다. ‘물질적 예술’이 가진 특유의 아우라가 반영된 디지털 이미지, N.F.T. 가상공간에서의 ‘본다는 것의 의미’에 변화를 주고, 메타버스의 가상세계와 만나, 디지털감각과 경험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센서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작품, 전시를 만나기 어려운 요즘, VR, 뷰잉룸으로 예술을 경험을 하고 있다. 온라인/디지털 공간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의 기지개를 피고 있는 예술계. 사실 온-오프라인의 경계는 이제 ‘절대적’일 수 없으며, ‘연결(connection)’이라는 고리로 소셜네트워크는 어느 때보다도 활성화 상태에 이르렀다. 다만, 온라인에서의 예술가들의 활동은 작품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제한된 전시와 미술관, 갤러리, 혹은 비영리공간, 옥션경매에서 진행하고 홍보되는 환경과 작품판매 수수료율, 특히 작품의 가격은 문의를 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불투명 구조의 시스템으로 제한되어있다. 이에 반해서 NFT아트미술시장은 있는 그대로 솔직하다. 작품판매시장으로 이미 알려진 Opensee, Rarible, Superare, KnownOrigin, Atomic Assets, 클립 등에서 작가등록과 함께 작품을 바로 찾아보고, 작품가격을 알아볼 수 있는 구조가, 그 투명성을 드러내며 온라인 미술시장이 ‘NFT’를 통해서 확장되어가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토큰거래내역으로 블록체인의 최근거래내역의 투명성. 그토록 우리가 원하는 투자자본의 이동경로가 어떻게 거래증명되고 진행됐는가를 볼 수 있다는 것. 주목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뱅크시의 말처럼, “NFT는 온라인에서 누구나 사고파는 것을 허용해야한다.” 이 ‘누구나’라는 말은 자유로우면서 평등을 보여주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한마디가 아닐까?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미술시장이 되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NFT아트의 미래는 마니아층의 컬렉터들과 소비자들이 생길 가능성을 제시한다.


소셜미디어에 능숙한 이 세대에 새로운 예술을 갈망하는 커뮤니티이자 신(新)창작매체수단으로서의 전통적인 예술매체의 범주의 확장이 넓어진다는 것, 디지털세상에서‘만’ 접속할 수 있는 특유의 매체수단, ‘코드’가 아닌가? 디지털문화와 미디어에 익숙한 세대의 신진예술가가 이제 이 ‘NFT’를 통해서 어떤 작품으로 창작하고 제작하게 될 것인지, 우리는 주목해보자. 그리고 소비자로서는 또. ‘NFT’ 만이 가진 이 특별함. 이제는 개인의 디지털공간속에 소유되고 저작권을 가지게 되는 이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미술작품을 소장할 것인가 생각해본다면. 어떤 신진예술가의 NFT아트를 유심히 살펴볼 것인가? NFT아트의 미래는 우리가 디지털아트의 현장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 속에서 여실히 드러날 것이며, 혹은 ‘공감’을 통해서 새로운 매체의 향연을 지켜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는 나만의 감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세상이다. 새로운 것이 주어진다면(사물) 당신은 어떤 시각으로 그 사물을 바라볼 것인가? 새로운 미술이라는 이름하에 주목을 이끈 NFT아트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참고자료


사이먼 레이놀즈, 레트로 마니아: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 작업실유령, 최성민 옮김

CryptoPunks - Larva Labshttps://www.larvalabs.com

“Burnt Banksy's Inflammaory N.F.T. Not-Art”, Newyorker Magszine, 2021/ 5/17/


김 선/ 비평가




* 무중력지대서대문/임팩트스테이션 주최로 진행되고 있는 

<넥스트아트페어>2021.08.31.(화) ~ 2021.09.13.(월)/ 

넥스트 아트페어 (nextartfair.kr) NFT아트 칼럼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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